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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노바스코샤의 가을

민재 미첼 mj mitchell

by 민재 미첼 MJ Mitchell

26. 노바스코샤의 가을


노바스코샤에서는 <처서 (8월 23일)>가 지나면 어김없이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처서가 처서답다. 한국에서 살 때는 입춘이니 입추니 하는 절기에 별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춥디 추운 2월 초에 ‘입춘’이 있고 한창 더운 8월 초에 ‘입추’가 있으니 그저 계절을 ‘예고’해주는 정도라고 생각했고, 지금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시풍속으로만 이해했었다. 그런데 캐나다에 와서 살다 보니 다른 건 몰라도 찬바람에 모기 입이 돌아간다는 처서만큼은 이곳 계절과 꼭 맞았다. 처서의 사전 풀이는 '일 년 중 늦여름 더위가 물러가는 때’이다. 처서 즈음이면 우리 동네에서 더위가 진짜로 꼬리를 감췄다.

한국에서는 처서에도 열대야로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지겠지만 우리 동네에는 찬기운이 돈다. 그래서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 ‘처서’의 뜻은 ‘추위에 모기 입도 돌아간다니까 나도 입 돌아가기 전에 두꺼운 옷을 준비해야지’ 하는 뜻이 되었다. 내 기준으로 노바스코샤의 가을은 <처서>부터 시작된다.

처서가 지나면 나뭇잎의 색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한국에서 단풍이 제일 빨리 찾아온다는 설악산 정상에 단풍이 들기 시작할 때면 우리 동네에도 단풍이 든다. 우리 동네가 좀 더 빠른 해도 있었고, 설악산 대청봉 단풍이 빨랐던 해도 있었다. 국기에도 단풍 나뭇잎이 그려져 있을 정도로 캐나다의 단풍은 유명하다. 단단풍나무 Sugar Maple 수액을 끓이고 졸여서 만든 메이플 시럽은 캐나다의 특산물 중 하나다. 캐나다 하면 무조건 메이플 시럽을 떠올릴 정도로 유명하지만 정작 나는 메이플 시럽을 별로 안 좋아한다. 내가 사는 동네 도로 이름도 단단풍나무 Sugar Maple길이다. 이뿐 아니라 우리 동네에는 Norway Maple, Silver Maple 길도 있다. 다들 아시다시피 캐나다의 닉네임은 <단풍국>이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캐나다로 단풍 구경을 오기도 한다.

나 역시 가을만 되면 알록달록한 단풍을 볼 생각에 설렌다. 그러나 아무리 단풍국이라도 내가 사는 대서양 연안은 가을에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단풍 구경에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는 없다. 게다가 허리케인이 나뭇잎을 다 쓸어 가 버리기라도 하면 그해 가을은 나뭇잎이 반쯤 뜯긴 엉성한 단풍을 봐야 한다. 그래서 진정한 캐나다의 단풍 숲을 보려면 퀘벡이나 온타리오 같은 내륙 쪽으로 가길 권하기도 하지만, 내 남편은 노바스코샤 북동쪽에 있는 케이프 브레턴 섬의 단풍이 퀘벡의 단풍에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남편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언젠가 단풍철에 케이프 브레턴 섬을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Three Churches - ver 1

내가 사는 노바스코샤는 북대서양 연안의 반도이다. 해마다 적도 부근에서 발생한 허리케인이 미국 동부 해안을 따라 이곳까지 북상하기도 한다. 매해 가을이 시작되고 나뭇잎의 색이 물들어 갈 즈음이면 어김없이 허리케인이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은 카리브해에서 발생하는 허리케인이 노바스코샤까지 올라오다가 위력이 약해지기도 하지만, 이따금 이곳에도 큰 타격을 입히곤 한다. 얼마 전에 불어 닥친 허리케인 <피오나>가 그랬다.

피오나가 오기 일주일 전부터 노바스코샤 기상예보는 연일 허리케인에 대한 경고를 했었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허리케인이 될 거라고 했다. 우리 부부는 허리케인을 맞이할 준비를 서둘렀다. 빵, 우유, 과일, 컵라면, 후라이드 치킨, 각종 샐러드와 과자 등 며칠을 버틸 수 있는 비상식량을 넉넉하게 사 왔다. 그리고 캠핑용 렌턴과 배터리, 양초를 챙기고, 큰 통에 물을 받아서 부엌과 화장실에 준비해 두었다. 음식물 쓰레기통과 야외 데크 위에 있던 테이블과 의자를 창고에 넣었고, 바비큐 그릴은 밧줄을 이용해서 데크에 꽁꽁 묶었다. 지붕 둘레의 배수구와 집 둘레의 배수로가 막히지 않았는지도 모두 점검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 깨밭이었다. 이제 막 깨꽃이 피기 시작했으니 씨를 받기 위해서라도 깨밭을 지켜야 했다. 나는 서둘러 깻잎을 땄다. 들깨가 광합성을 할 수 있게 최소한의 잎들만 몇 개 남기고 바람에 저항을 받을 만한 큰 잎들은 모조리 따서 냉장고에 보관했다. 남편은 허리케인이 깨밭을 살려두지 않을지도 모르니 마음의 각오를 하라고 말했다. 나는 피오나의 자비와 은혜가 내 깨밭에 충만하기를 빌고 빌었다.

Three Churches - ver 2

드디어 피오나가 노바스코샤에 도착했다. 허리케인에서 열대성 폭풍으로 세력이 약해졌음에도 엄청난 폭우와 강풍을 퍼부었다. 세상에는 바람과 비만 존재하는 것처럼 하루 종일 비와 바람이 가득했고, 그 위력은 밤까지 계속되었다. 바람이 얼마나 사정없이 온 세상을 뒤흔드는지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지어진 지 30년이 된 우리 집은 바람이 세게 후려 칠 때면 삐거걱하는 소리를 냈다. 처음 캐나다에 이사 왔을 때는 집이 흔들리는 소리가 너무 생소했고 무서웠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는 인생의 대부분을 콘크리트로 지어진 아파트에서만 살아 봤으니, 나에게 집이란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목조주택은 바람에 흔들리고 소리도 났다. 물론 물건이 움직일 정도로 흔들리는 것은 아니고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때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하늘에서 커다란 소방 호스로 물을 뿌려대는 것처럼 비가 쏟아져 내렸고, 강력한 바람은 세상 만물의 멱살을 잡고 사정없이 흔들어댔다. 낮에 정전이 되었는데 밤이 되어서 잠시 전기가 다시 들어오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우리 부부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언제 다시 정전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차라리 일찍 잠들어 버리자는 심산이었다. 퍼붓는 비가 창을 때리는 소리와 바람이 세상을 뒤흔드는 소리와 이따금 집이 삐걱대는 소리에 몸을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비바람은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하늘은 푸르렀지만 온 동네가 정전이었다. 뒷집 정원의 큰 나뭇가지가 부러진 체 비스듬히 걸려 있었고, 앞마당 뒷마당 할 것 없이 부러진 잔가지들과 나뭇잎들이 가득했다. 단풍이 들기 시작한 나뭇잎들은 바람에 갈가리 찢기고 말았다. 전기가 없으니까 뉴스나 인터넷을 볼 수 없어서 더욱 답답했다. 게다가 통신사의 장비까지 피해를 입었는지 모바일 데이터도 먹통이었다.

가여운 내 깨밭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깨들은 모조리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앞줄부터 차곡차곡 쓰러져서 켜켜이 쌓여있었다. 쓰러진 깨를 세우고 뿌리에 흙을 덮어 발로 눌러보아도 다시 쓰러졌다. 몇 개 붙어 있지 않은 깻잎은 진흙 투성이었고 이제 막 피기 시작한 하얀 깨꽃은 짓이겨지고 일그러져서 애처롭게 보였다. 나는 상태가 심각해서 도저히 살릴 수 없는 것들은 아예 줄기를 잘라내 버렸다. 나머지는 지지대를 세워서 씨가 영글 때까지 살려보기로 했다.

오후에 우리 부부는 차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여기저기 쓰러지고 부러진 나무들이 보였다. 길에 쓰러져서 교통에 방해를 주는 나무는 시에서 나온 인부들이 장비를 동원해서 치우고 있었다. 거리마다 부러진 나뭇가지가 가득했고 쓰러진 나무가 집을 덮친 크고 작은 사고가 곳곳에서 보였다.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아서 조용했는데, 클레이톤 파크 Clayton Park에 있는 맥도널드의 드라이브 쓰루 drive through에는 수많은 차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너도나도 햄버거를 먹기 위해 끝도 없이 긴 줄을 선 것이다. 우리는 늘어선 긴 줄에 아연실색하고 햄버거 사 먹기는 포기하고 집으로 갔다. 집에 비상식량을 많이 사두었는데도 맥도널드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날 밤 전기는 들어왔는데 인터넷은 여전히 먹통이었다. 인터넷 회사에 연락해 보아도 언제 복구가 될지 모른다고 했다. 피오나는 노바스코샤,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PEI, 뉴펀들랜드에 큰 상처를 입히고 사라졌다. 노바스코샤에서는 약 41만이 넘는 가구가 정전이 됐다. PEI는 약 8만이 넘는 가구가 정전이었다는데 이는 전력회사에 가입한 PEI고객의 95%에 달하는 수치라고 했다. 서부 뉴펀들랜드는 강풍과 파도의 피해가 다른 어떤 곳보다 심각했다. 바닷가의 집들이 거대한 파도에 쓸려 통째로 떠내려 갔고, 떠내려 가지 않은 집들은 지붕이 뜯겨 나갔다. 마을은 물에 잠겼다. 사상자도 생겼고 많은 사람이 집을 잃었다.

우리 동네는 하루 만에 전기가 들어왔다. 그러나 다른 동네에는 3, 4일 동안 정전 속에 살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터넷이 복구되기까지는 3일이나 걸렸다. 다행히도 우리와는 다른 인터넷 회사를 이용하는 친절한 이웃이 와이파이를 공유해 주어서 잠시 세상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내 방 창으로 보이는 뒷집 단풍나무는 폭풍에 잎이 뜯기고 찢어져서 영 볼품없는 쑥대머리 꼴이 되었다. 온 동네 나무들이 거의 비슷한 모양새였다. 찢긴 잎의 색이 고와서 더 처량해 보였다. 아름다운 단풍을 보려면 큰 일교차와 청명한 날씨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폭풍이 단풍을 쓸어가지 않는 날씨일 것이다. 아무리 단풍이 고와도 폭풍이 와서 나뭇잎을 다 떨구어 버린다면 단풍국에서도 단풍 보기가 어렵다. 가을 문턱에 불어오는 폭풍은 나뭇잎에 대한 물리적 피해는 물론이고 단풍놀이를 기대했던 마음에도 피해를 끼쳤다. 폭풍이 야속하기만 했다.

Three Churches - ver 3


캐나다의 가을에서 가장 큰 행사는 역시 추수감사절 Thanksgiving이다. 같은 북미에 있어도 미국과 캐나다의 추수감사절은 날짜가 서로 다르다. 추운 캐나다가 더 빠르고 미국이 조금 늦다. 캐나다는 10월 둘째 주 월요일이고, 미국은 11월 넷째 주 목요일이 추수감사절이다. 추수감사절에는 역시 칠면조 구이가 있어야 한다. 시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우리 가족의 추수감사절도 제법 명절다웠다. 오랜만에 먼 곳에 사는 친척들을 만날 수 있었고, 맛있는 음식과 끊이지 않는 웃음이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도 없고 시어머니도 뇌출혈로 투병 중이다 보니 우리 가족의 추수감사절은 이제 예전만 못하다. 나는 이번 추수감사절 즈음에 송편을 만들어 먹었다. 내 입에는 역시 칠면조보다 송편이 딱이었다.

시댁은 가을에 장작을 준비했다. 남편도 가서 도와야 할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트럭 가득 사온 장작을 지하에 차곡차곡 쌓아 정리했다. 겨우내 포근한 거실을 만들어 줄 귀한 땔나무들이었다. 이처럼 노바스코샤의 가을은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가을이면 말과 소와 양들은 신선한 자연식을 즐기느라 바빴다. 긴 겨울 동안에는 실내 축사에서 건초와 사료만을 먹어야 한다. 축사에 들어가기 전에 마음껏 신선한 풀을 뜯어먹으니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과수원에서는 사과와 배 수확이 한창이고, 밭에서는 크고 노란 호박이 황금빛으로 익어갔다. 핼러윈에 팔려 나갈 호박들이었다. 노바스코샤의 가을은 습하고 짧다. 가을인가 싶었는데 어느새 겨울이 코앞이었다.

단풍나무와 호박

한편 내가 기억하는 한국의 가을 풍경은 이렇다.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논이 펼쳐져 있고, 길옆에는 빨간 고추를 말리고, 노란 은행나무와 붉은 담쟁이가 오르는 돌담, 그리고 대문옆에 내놓은 화분에는 활짝 핀 색색의 국화꽃이 있는 풍경이다. 캐나다에 비해 아담함 나라여서 그런지 한국은 미니어처 같은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캐나다에서는 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도 똑같은 풍경뿐인데 한국의 풍경은 변화무쌍하다. 도시와 산과 강과 들과 바다가 오밀조밀 어우러져 있다. 작고 아담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미니어처 같은 매력이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아름답다고 소문난 ‘단풍국’에 살아도 내 고향 한국의 앞산, 뒷산의 단풍이 그립다. 특히 논이 없는 캐나다에서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들녘은 사무치게 그리운 풍경이다. 고향의 가을 풍경은 포근하고 풍요롭게 기억된다. 이민 생활이 길어질수록 더욱 아름답게만 기억된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면 그에 맞추어 살아간다. 인간은 자연의 변화에 거스를 수 없다. 그래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이든, 어디에서 살든 호모 사피엔스의 삶은 비슷비슷하다. 추수를 하고 겨울을 준비하는 세상의 모든 가을 풍경이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역시 고향의 가을 풍경이 제일 아름답고 제일 그립다. 고향을 떠나 사는 이민자에게 고향의 가을 풍경은 멀고 아득한 꿈만 같다. 단풍국에 살아도 한국의 단풍이 사무치게 그리운 가을이다.


글-민재미첼 그림-조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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