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어떻게 나이 들어갈까?
어르신들이 지난 얘기만 반복하시는 게 예전엔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알겠다.
상상하거나 계획할 ‘미래’가 없다고 느껴지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보게 되더라.
하지만 나는 끝까지 미래를 이야기하고 싶다.
설령 내일 관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나는 내일을 말할 것이다.
하다못해 관 뚜껑 디자인에 대해서라도.
소용없는 과거보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기대하면서 살고 싶다.
어릴 때 우리는 ‘커서 뭐가 되고 싶은가?’에 대해 타인에게 많은 질문을 받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미래를 고민한다.
그 질문 안에서 우리는 상상하고 기대하고 불안해하며 성장한다. 미래라는 시점을 그릴 수 있는 건 인간이 지닌 독특한 능력이자, 삶을 이어가는 동력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시점이 되면 아무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타인도 나 자신도.
미래에 대한 생각을 끄고 관성대로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지난 일보다 앞으로를 상상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자주 퇴직 후의 일상을 상상해 본다.
마치 여행하듯 하루하루를 사는 나를 떠올린다.‘
그게 내가 바라는 노후의 모습이다.
바다와 해산물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동해안 바닷가를 따라 2년에서 4년쯤 머무는 삶을 그려본다.
오늘은 마산, 다음은 부산,
그다음은 해남이나 강릉.
가끔은 일본의 조용한 소도시에서 한 계절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
인생의 전반기를 학교와 회사에 매여 살았다면
후반기는 노마드처럼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요즘은 틈만 나면 지도를 본다.
작고 낯선 도시들을 따라가며
‘여긴 시장이 있을까, 병원은 얼마나 가까울까,
이 집에선 바다가 보일까?’
그런 상상을 한다.
아직 정해진 건 하나도 없지만,
지도 위에서 나의 머릿속은 꽤 분주하고 계산적이고 생생한 기분으로 가득하다.
마치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처럼.
첫 도시는 마산을 생각 중이다.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다.
그게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고
나를 새로 꺼내쓸 수 있는 곳.
게다가 마산엔 바다가 있다.
조용하고 낡은 항구 도시 특유의 정서가
이상하게 나를 끌어당긴다.
문득 영화 <바닷가 마을 다이어리>에서의 한 대사가 떠오른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평생이 걸린다.’
스스로에게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좀 더 평화로워지는 걸 느낀다.
무엇이 되기 위한 과정이 인생 전반부의 대부분이었다면, 후반부에는 이제 ‘나’를 만나야 하지 않을까?
기다릴 것도, 바랄 것도 없이 하루를 버텨내는 삶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느끼는 설렘과 긴장감을 안고
매일을 새로 살아가는 시간.
나는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