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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철 Sep 03. 2020

시란, 맑은 피를 돌게 하는 심장이다

       

오래전, 시 공부를 함께 했던 분이 나에게 묻는다.

“아직도 시를 쓰고 계십니까?”

그 순간, 심한 충격으로 시간이 멈추었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시냐?’의 다른 표현으로 들렸다.

그분은 이미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한 분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문학을 떠나 생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자문자답이 시작되었다.


내가 그렇게 한가로운 사람인가.

삶에 여유가 있어 글을 쓰는 걸까.

몰락한 꼰대 선비 흉내나 내는 걸까.

그 질문이 나를 충격에 빠트려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문학 관련 책과 시집이 서재를 가득 채우고 문학 관련 행사에 틈틈이 다녔다.

늦은 나이에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해 졸업까지 들어간 비용을 생각하니,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밥과 돈이 나온다는 생각으로 시 공부를 한 것은 아니다.

노벨 문학상을 타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진 것은 더더욱 아니다.

시인으로 등단해 잘난 척하고 폼이나 잡으려 한 것도 아니다.

그 정도의 인물도 아니고, 시인이라고 해서 특별한 대우를 해주지 않는 게 현실이다.  

글을 쓰는 것이 굶으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가족의 생계가 우선이다.


그럼, 왜 그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면서 여기까지 왔는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내게 죽음은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 것인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노동조합의 기나긴 파업 종료로 정신과 경제적으로 힘든 날이 있었다.

공공기관은 개인 사업주나 사용자가 아닌 정부를 상대로 싸워야 한다.

싸워야 한다는 표현이 뭐 하지만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정부는 협상 상대로 나서지 않고 소속 기관장에게 지시만 내린다.

역대 공공기관이 파업으로 원하는 것을 쟁취했던 적이 없다.

'동트는 새벽'으로 시작하는 '단결투쟁가'를 하루에 스무 번도 부르고, 상경 투쟁 시는 노숙으로 밤을 보내기도 했다. 투쟁의 열기와 상관없이 아무리 옳은 주장을 해도 이미 승패는 정해져 있었다.

권력이라는 거대한 바위에 부딪혀, 깨진 파편들이 수없이 나뒹굴고, 공권력 행사로 1,600여 명의 노동조합원이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파업 기간 중 1명의 조합원이 돌아가셨다.

4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기나긴 84일간의 파업이 끝을 맺었다.


장기 파업으로 경제적인 궁핍에 정신은 피폐해졌다.

마음속 모래성이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에 흔적 없이 사라지고, 젊음의 패기와 도전 정신이 사각의 견고한 콘크리트 벽에 갇혔다. 꺾인 날개를 겨우 추슬러 출근을 한다.  

어제까지 어깨 걸고 노동가를 부르던 1,000여 명의 조합원이, 사측의 치밀한 회유와 압력으로 탈퇴서를 제출하고 노동조합을 떠난다. 승리에 도취한 경영진은 살생부를 작성해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나선다.

제주에서 수도권으로, 수도권에서 경상 전라로 하루아침에 원거리 발령을 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질긴 놈이 이긴다!’ ‘죽을 수는 있어도 질 수는 없다!’

쓸쓸한 건배사로 하루하루를 버텨 낸다.


노조원과 비노조원 간의 반목도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직장이 총성 없는 전쟁터가 되었다.

믿었던 동료가 노동조합에 탈퇴서를 제출한다. 사람이 무서웠고 출근하기 싫었다.

이대로 주저앉고 싶었고 술로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신문에서 문예창작학과 학생 모집이란 광고를 접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문학과 시 공부는 시작되었다.  

시를 배우면서 좋은 문우들과 내 인생 최고의 스승도 만났다.

시 공부는 인생을 올바르게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수행승이 도를 닦듯이, 한 계단 한 계단 자기 마음을 닦아 나가는 것이다.

서두르지 말고 참선을 하듯이 하라! 등등 주옥같은 말씀들을 많이 들었다.

그때부터 마음은 안정을 되찾았고 살아가는 의미가 부여되었다.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왜 지금까지 시를 쓰고 있을까.

역으로, 시가 있기에 오늘도 하늘을 보고 있다.

시가 없었다면 직장도 그만두고 가정은 파탄이 났을지도 모른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내가 누구인지,

이름도 없이 후미진 도시의 골목을 배회하다,

무연고자의 주검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시는 심장이다.

역동적인 맑은 피를 돌게 하는 심장.     


사회는 세분화되고 정보의 홍수 속에 떠밀려 간다.

정제되지 않은 정보의 홍수에 휩쓸려 다니다,

자아를 잃어버리고,

주어진 삶을 무의미하게 보내서야 되겠습니까?

맑은 피를 돌게 하는,

새로운 심장 하나쯤 가슴에 품고,

새로운 세계 속으로 빠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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