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혜의 결핍에 관한 한 사람의 기록 -
인간은 대부분 ‘모른다’는 말보다 ‘안다’는 표현에 더 익숙해진다. 삶의 궤적이 길어지고 어깨 위에 지고 가는 경륜의 무게가 늘어날수록, 우리는 이 짧은 두 글자에 더욱 강한 확신을 부여한다. "나는 안다"는 이 선언은 생존을 위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영혼의 성장을 가로막는 단단한 벽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서도 우리는 온전히 청취하지 못한다. 입 밖으로 말이 나오기도 전에 마음속에서는 이미 상대의 의도, 그 결론, 그들의 체험을 나의 것으로 재단한 답을 정해두는 법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문장을 빌려 나 자신의 사념을 되새길 뿐, 진정한 의미의 경청은 드물다. 이 확신이 커질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視野)는 놀랍도록 조금씩 좁아든다. 스스로가 현명하다고 자처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겪는 비극이 바로 이것이다. 길 위에서 마주친 낯선 풍경 앞에서 "이미 보았던 곳"이라 단정하고 발걸음을 돌려버리는 이와 같은 모습이 우리에게서 발견된다. 새로운 깨달음의 가능성이 발밑에 있음에도, 익숙한 확신에 매몰되어 그것을 외면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모른다’는 고백은 겸손의 미덕이 아니라 지적 능력의 부끄러움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모르는 것을 알지 못하는 척, 심지어는 안다고 억지를 부리는 기이한 습관을 갖게 되었지만, 배움은 그 문턱에서 시작된다. 모든 앎의 시발점은 모름의 인정이라는 용기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사회는 침묵하는 무지를 아는 것으로 오해하는 이상한 관행을 학습시켰다. 그러나 삶의 가장 귀한 수확은 항상 미지의 영역에 있으며, 그 영역으로 들어서기 위한 유일한 통행증은 "나는 그것을 모른다"는 담백한 인정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은 닫힌 문을 여는 데 필요한 ‘인정의 용기’에 관한 한 사람의 기록이며, 스스로의 무지를 마주했을 때 비로소 시야가 넓어지고, 삶의 방향이 새롭게 정돈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사람들은 아는 척하는 자세를 취할 때 관계의 창문을 스스로 닫아버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우리는 대화 속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맥락만 발췌하거나, 상대의 감정을 내가 겪은 과거의 사건에 꿰맞추어 그들의 고유성을 지워버리곤 한다.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기 전에 자신의 경륜을 꺼내어 상대의 말을 빠르게 규정하고 판단하는 습성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누군가 오랜만에 힘들게 꺼낸 고민 앞에서, 내가 이미 그 문제의 정답을 아는 양 스마트폰 화면을 먼저 확인해 버리는 순간, 상대의 기대는 무너지는 것이다.
도서관처럼 지식은 머리에 계속 쌓이지만,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는 이해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정보의 양이 늘어날수록 우리의 정신은 분류와 단정에 익숙해져, 사물을 입체적으로 보려는 노력을 중단하게 된다. 경험치가 높아질수록 세상에 대한 자기 확신은 단단하게 굳어지며, 그 고정된 믿음은 새로운 가능성을 관찰하는 시선을 방해한다. 마치 오래된 안경에 낀 먼지처럼, 익숙함이라는 찌꺼기가 우리의 시야를 흐리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다"는 태도를 취하는 순간, 배움의 걸음은 정지한다. 스스로가 세운 지식의 벽 안에서, 관계는 미세하게 파열되는 현상이 자주 목격된다. 이 벽은 타인에게는 진입 장벽이 되고, 자신에게는 정체의 감옥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앎을 통해 자유로워진다고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불완전한 앎이 가장 강력한 족쇄가 될 수 있음을 간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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