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가을은 유난히 색채의 깊이가 짙은 계절이다. 창밖 단풍나무 잎들은 제 몸속의 모든 붉은 기운을 끌어모아 마지막 힘으로 타오르는 듯 보였으니, 그 농밀한 빛줄기는 얇은 창을 관통해 탁자 위 투명한 용기의 수면을 길게 가로지르는 광경이다. 창가를 스치는 바람이 아주 잠깐 그 표면을 흔들고 지나간다. 유리처럼 맑은 액체 위로는 햇살과 함께 마당의 낙엽 냄새가 희미하게 비치곤 하는데, 이 잔물결 속에서 오래된 음악의 마지막 음표가 천천히 가라앉는 듯한 정적이 감도는 중이다. 한때 뜨거웠던 찻물의 열기가 공간 전체에 머물다가 서서히 식어가는 모양새였다. 미지근해진 시간이 고요 속에서 용기의 숨을 이어주는 것만 같다. 우리는 눈앞의 큰 사건에 시선을 빼앗기기 쉽지만, 삶은 하루의 방울로 수위를 올리는, 지극히 조용한 작업이 아닌가.
그릇을 채우는 과정을 외부의 평가나 눈부신 결과로 계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도리어 그 액체가 용기 속에 머무는 동안, 수많은 물방울이 스스로 뒤섞이며 아래로 침잠하는 그 느린 ‘정지’의 시간 속에서만 우리의 존재는 비로소 깊어지는 것이다. 맑은 그릇과 쏟아지는 빛, 그리고 그 안을 조용히 통과하는 오랜 날의 흐름이 지금부터 이야기할 모든 풍경의 밑그림이 될 것이다. 오늘, 그 바닥의 미묘한 동요까지 들여다본다.
세월의 흐름은 그 누구의 개입도 허락하지 않고 우리 얼굴에 고유한 그림자를 새겨 넣는 법이다. 눈꼬리에 드리워진 엷은 주름과 입가에 자리 잡은 희미한 선들이 바로 그 명확한 증거가 되어준다. 그것은 피부 아래를 지나간 날들의 깊은 기록이며, 그 얼굴이 통과해 온 구체적인 날들이요, 매 순간의 기쁨과 고난을 인내했던 살아있는 지문이다. 젊은 날의 마음은 오직 ‘나는 미래에 무엇을 만들까’라는 질문만을 쫓아갔다. 하지만 오랜 날이 축적된 지금, 우리는 ‘나는 지난 여정을 어떤 마음으로 걸어왔나’라는 다른 방향의 질문 앞에 멈춰 서게 되는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외적인 성공이나 물질적인 목록 바깥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겠다. 대답은 뜻밖의 순간, 장면 속 태도에서 중심이 불쑥 드러나기도 한다. 강한 바람이 돌의 표면을 매끄럽게 깎아내듯, 세월은 우리의 가장 예민하고 날카로웠던 부분들을 부드럽게 다듬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과거의 나와는 확실히 다른 사람이 여기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시간이 데려온 결과처럼 보이지만, 실은 내가 걸어온 방식이 남긴 증거이기도 하다. 그 길고 부드러운 흐름이 빚어낸 얼굴은 팽팽한 고집 대신 따뜻한 이해의 시선을 머금고 있는 것이었다.
얼굴의 표정은 수많은 기억의 조각들을 품고 있다. 누군가를 향해 웃었던 순간의 기억이나, 혼자서 깊은 시름에 잠겼던 밤의 흔적이 이마와 볼을 따라 선명하게 분포되어 있다. 함께 지나온 감정의 지도가 조용히 펼쳐지는 셈이다. 그것은 서로에게 건네고 받은 감정들이며, 타인의 고통 앞에서 흘린 눈물들이 그 지형을 만든 것이다. 얼굴은 한 사람의 인격이 수집한 기록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의 얼굴은 빠르게 ‘무엇이 될까’를 꿈꾸던 시절의 불안 대신, ‘지금 이대로의 나’로 충분하다는 평화로움을 담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과연 그 평온은 어디에서 기인했을까.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