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여인들은 지금의 여인네보다 아주 깊은 사랑을 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어느 새 결혼을 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지만 그 옛날 이름 모를 여인이 불렀던 “연가”를 나는 부르지
않았다.
「무쇠로 황소를 지어다가, 쇠로 된 나무가 있는 산에 그 소를 놓아, 쇠로 된 풀을 다 먹는다면
당신과 기꺼이 이별을 하겠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나는 이 좋은 세상에 살면서 왜 이런 시를 쓸 수 없는지.’를 생각한다.
‘어쩌면 그네들은 초가삼간에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온전히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아마도 예쁜 아이들도 낳았겠지.
추운 겨울
어설프게 꿰맨 가죽옷을 입고도 남편을 사랑하고, 풍족하지는 않지만 아이에게 몸소 음식을 만들어 주고,
춧불처럼 희생하고도 모자라 손발이 다 해지도록 사랑을 했으리라.
그런데 지금의 나는 멋진 옷과, 돈만 내면 먹을 수 있는 풍족한 음식과, 손수 불을 지피지 않아도 따뜻한 집에 살면서, 때때로 시집을 잘못 와서 고생이라며 궁색한 변명을 하기 일쑤이다.
맹수로부터 생명을 위협받던 그 시대도 지금처럼 삭막하지는 않았을 텐데.
우리나라 최고의 자리인 나랏님부터 거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판단할 아무런 잣대는 없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나의 이름은 공무원이고, 아무개의 아내로 불려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공무원이면서 아내라는 이름이 내게는 그리 녹록하지 않음을 느꼈을 땐, 난 이미 두 아이의 엄마라는 이름이 추가되었고, 어쩔 수 없는 숙명의 인생살이가 시자되었음을 직감했다.
놓을 수 없는 끈은 내게 버겁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나를 지탱시켜 주는 또 다른 힘이 되었다.
공뮌[공무원을 비꼬아 줄인 말] 생활을 하면서 붙여진 이름이 참 많다.
그중에서도 나를 제일로 슬프게 하는 말은 “철밥통”이다. 나도 가정에서 아내라고 불러지는 남편이 있고, 엄마라고 불러주는 사랑하는 아이가 있고, 금지옥엽 길러 주신 부모님이 있는데도 말이다.
나는 가정에서 아내, 엄마로 불려지는 이름이 좋고, 부모님으로부터 나의 이름을 사랑스럽게 불러주는 음성이 참 듣기 좋다.
그런데 막상 결혼 후 남편을 다 잊어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나쁜 의도가 아니었겠지만- 나를 이해하고, 편이 되어 줄 사람이 어느 모임에서 다른 사람과 어울려 이 나라의 모든 공무원이 융통성 없음을 논할 때 참 속상했다. 한번은 “김일병” 총기 난사 사건 때문에 언쟁하다 울어버린 적도 있었다.
지금도 그때 함께 했던 지인들은 전설처럼 이야기를 하나 가슴 한구석에 서운함이 남아 있다.
그렇게 남편이 말할 때는 사랑해서 결혼한 나도 똑같은 “철밥통” 아내일 뿐이다.
비록 나에게 말한 것은 아니더라도 아내의 직업에 대해 무심코 한 말이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철밥통에 대해서는 나도 누구보다 할말이 많지만, 아내로서, 엄마로서, 참아가며 살고 있으니 남편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도 아내라는 이름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어느날 업무적으로 한 남자분이 계장님을 찾아 오셨는데, 나를 보고 “후배 아내”라고 말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랬다. 내가 후배 아내도 될 수 있고, 아무개 마누라, 여편네, 조강지처(?)라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자조의 웃음이 났다.
“후후. 그래도 철밥통 아내보다는 다 낫다.”
남편으로 인해 지위상승해서 아무개 “사모님” 소리 듣는 것도 원하지 않지만 직업으로 인해 불려지는 나쁜 이름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고려시대 무신정변이 일어난 것도 무신에 대한 비하 발언 때문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살아가는 모양새지, 사람이 바뀐 것은 아니다.
한나라를 잘살게 하는 것은, 대통령도 아니고, 국회의원도 아니고, 장관도 아니고, 더더구나 공무원도, 군인도, 경찰도 아니고, 다만 바르게 살아 가는 한사람 일 뿐이다.
어떤 일에 종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어떤 사람인지를 묻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그것이 나로부터, 나의 사랑하는 남편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고려시대 한 여인네가 사랑하는 정인을 보내고 싶지 않아 애절하게 불렀던 “정석가”가 지금부터는 나의 노래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