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 쓴 마음

by 석현준

난 누군가요?
난 살아야 하나요?
누구라도 좋으니 결론을 내려주세요



난 누군가요?
너무도 슬픈 영화를 보아도 누군가의 장례식에서도 나는 울지 않았습니다. 울 수 없었다는 말이 내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네요. 그냥 누군가가 내게 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난 슬퍼할 수 없었습니다. 어리던 내게 생긴 강박은 참 오랜 시간 동안 시달려왔고 힘들어했습니다. 그것마저도 혼자서 감수해야 하는 줄 알고서 말이죠. 눈물이 차올라도 꾹 참아왔죠. 기뻤던 날을 생각하며 행복하고 꿈만 같았던 기억들을 겨우 되살리며 나 자신을 숨겨왔습니다. 그런 아름다운 기억마저도 내겐 얼마 없었던 나는 매번 똑같은 꿈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다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나 자신의 그대로를 바라봐 주고 내 마음의 갈피를 찾아주신 고마운 분이었죠. 그런 사람들은 모두 일찍 떠나더군요. 여러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빛나던 그분은 밤에 빛나는 별이 되었습니다.

울지 않던 내게 찾아온 상실감은 무지 큰 마음에 상처를 남겼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마음은 점점 이상 현상을 만들어 냈습니다. 있지도 않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고 그들은 계속 나를 불러왔습니다. 그중엔 선생님도 계셨죠. 아주 얇은 문 하나를 두고서 나를 불러왔습니다. 마치 세상의 모든 행복이 문 뒤에 있는 것처럼 나를 불러왔습니다.

미치도록 넘어가고 싶었습니다. 이런 세상의 모든 것들을 등지고 떠나도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들어가긴 쉽지만 나올 수 없는 덫이란 것을 알았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미끼는 너무나도 크고 찬란해 보였습니다. 그냥 그렇게만 보였던 것이겠죠? 진짜는 아니었을 거라고 나를 다독여봅니다.

그런 마음으로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긴 잠에 들기 전 휴대전화를 보았습니다. 나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게 SNS 계정을 삭제하려고 들어간 곳에서 의도치 않은 하다 문구를 보게 되었습니다.

'널 똑바로 바라봐'

흰 배경에 한껏 갈겨쓴 글씨체로 찍힌 사진을 오랜 시간 동안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스쳐보낸 시간들이 떠오르고, 내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 묶여있는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독하게 냄새나는 곰팡이를 품고 살아왔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모른 체 그것을 키워주고 있었다는 생각에 온몸엔 소름이 돋았고 속은 메슥거렸습니다. 헛구역질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더욱 살고 싶었습니다. 이런 삶이었어도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도 해가 뜨거운 날이어도 다시 내가 되어보기로 했습니다. 겉껍질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나 자신으로 살아보려고 합니다. 눅눅한 마음이 아닌 뜨겁고 포근하게 살아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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