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잡한 소독약 냄새가 담긴 병실 속에서 겨우 있는 당신의 손을 잡는다. 아직은 남아있는 온기에 슬며시 눈물을 닦는다.
뻔뻔해지렵니다.
당신에게 받은 것에 비해 내가 줄 수 있는 건 너무 보잘것없어 보여서 이젠 받기만 하렵니다. 당신이 책임지세요. 날 망쳐놓은 당신이 날 끝까지 책임지셔야 합니다.
좋아했습니다.
미칠 것처럼 당신을 생각했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당신과 함께할 미래를 상상했습니다. 뜨거운 불길 속에서 날 구해준 그때부터 당신을 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치 계획된 운명처럼 당신에게 이끌렸습니다. 검은 연기가 앞을 가렸지만 이따금 천장에서는 파편들이 떨어졌지만 당신과 함께 있어 안심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밉습니다.
당신을 좋아게 된 후부터 당신에게서 불냄새가 날 때마다 소름이 끼쳐 옵니다. '오늘은 또 얼마나 큰불 속을 비집고 살아나왔을까? 혹시 내게 말 못 할 상처가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혀서 내게 안기는 당신에게 어정쩡한 미소를 내보일 수밖에 없는 내가 밉습니다. 뉴스에 큰불이라도 났다고 하면 안절부절못한 채 날 걱정시키는 당신이 밉습니다.
모두 잊을 겁니다.
당신과 함께한 추억, 물건, 장소조차도 잊어버릴 겁니다. 내가 당신을 위해서 눈물을 삼킨 건 알고 있나요? 그날 밤 노심초사한 마음으로 밤잠을 설치며 당신을 위해 중얼거린 기도는 들렸나요?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을 때 내 마음을 알기는 할까요? 전화를 받고 달려간 병원에서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는 당신을 보고 있는 내 모습을, 이전의 모든 것을 잊을 겁니다.
기다립니다.
사랑했고 고마웠기에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날 구해준 것처럼 당신도 누군가가 구해 줄줄 알았습니다. 뜨거운 불속에서 면체를 벗고 잠시 웃어준 당신의 미소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데 왜 잠에서 깨어나지 않나요?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근육들이 녹슬어가고 있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나요? 일어나세요. 깨어나세요. 하얀 이불을 박차고 내게 달려와 안아달라는 말입니다. 이젠 제발 날 살려주세요. 다시금 불구덩이 속에서 날 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