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다

by 석현준

넌 겨울을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나도 좋아하기로 했다.

아니 그냥 난 겨울 보단 네가 좋았던 것 같다.

너와 함께 있는 것 자체로 너무 좋았다.

그러던 어느 겨울밤, 함박눈 속에서 네가 죽었다.


네 유품 속에는 편지한 장이 있었다.

편지에는 내가 사라져도 울거나 아파하지 말라고 쓰여있었다.

이때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어이없기도 했고 실감이 나지 않아서. 며칠이 지나고 네가 곁에 없다는 것이 현실에 와닿을 때쯤에는 난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는지도 모르게 방 안에서 조용히 숨어 살았다.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너의 죽음이 내게 점점 와닿아서 죄책감이 날 옥죄어왔다. 혼자서 힘들게 끙끙 앓고 또 앓았다.

이제는 조금 나갈 마음이 생겼을 때 몇 번을 고민하고 방문 밖으로 나갔다.


몇 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때처럼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앞이 잘 안 보일 정도로 많이 내렸다.

뿌옇게 보이는 앞을 조금씩 걸어가고 있는데 저 앞에선 누군가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딱 너 만한 키의 누군가가 내게로 걸어왔다. 내겐 일말의 희망이었다.

나도 그쪽으로 뛰었다. 그 자리엔 네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또 뛰었다. 추위 때문에 얼굴이 빨개지도록 널 향해서 뛰었다. 한 시간쯤 그랬을까 뜨거운 눈물이 얼굴을 타고 떨어졌다. 차가운 눈에 눈물들이 쉬지 않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도 아무 감정도 없이 그저 공허하게 텅 빈 공터에서 혼자 주저앉아 울었다.


널 너무 보고 싶었지만 도저히 널 잡을 수도 가까이서 볼 수도 없었다. 그저 뿌연 너의 형체만 내 곁에 있을 뿐이었다.

죽어서도 함께 하자고 말로는 쉽게 말했지만 진짜로 내 곁에 남아있는 것이 더 괴로웠다.

너에 대한 한탄도 못하고 그저 묵묵히 널 그리워하며 평생을 살아야 해서.

이젠 추위도 느껴지지 않고 그저 너와 함께 있고 싶었다. 널 보고 싶었다.

더 이상은 없었다.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밑을 내려다보는데 까마득하게 높았다. 심장은 이제 터질 듯 뛰기 시작했고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생각으로는 벌써 뛰어내렸어야 했는데 난 계속 뒷걸음질을 치며 계단 쪽으로 향했다. 사실 내 마음은 살고 싶었다. 미치도록 살고 싶었다.


너에 대한 슬픔과 살았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눈물이 그 치질 않았다. 그래서 울었다. 며칠 밤낮을 울었다. 그렇게 너 없는 첫 번째 겨울이 지나갔다. 다음 겨울에도 잠깐의 애도였을까. 눈물이 조금 나왔지만 그렇게 지나갔다. 3번째, 4번째, 5번째..... 수도 없는 겨울이 지나간 지금 함박눈이 내리는 날엔 네가 생각난다.

나는 아직도 추운 겨울 속에서, 액자 속에 활짝 웃고 있는 너를 보며 말한다.

"보고 싶다."

너에게서 나던 겨울의 향이 콧가에 사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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