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이어진 시간

by 석현준

우리에게 일 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는 줄로만 알았다. 최소한 내일이라는 시간은 남아서 우리를 기다리는 줄로만 알았다.


우리가 바라보던 것들은 항상 달랐다. 나는 죽음이었고 너는 생명이었으니. 서로 정반대의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고 넌 세상에 치여서 모든 걸 내려놓고 싶다고 말했으니 어쩜 우리는 서로를 동경해왔던 것 같아. 완벽한 일상의 너, 유유자적이던 나, 우린 그렇게 만났지. 서로 동경하던 쪽을 바라보다 눈이 맞았던 것 같아. 우리는 정반대였으니 말이야.

그렇게 널 만나서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했어. 아니 처음엔 새로운 시작이었지. 어둠 속에 있던 날 밝은 빛으로 끌어드려준 너였으니까. 모든 게 행복했고 행운 같았다. 평생에 다시없을 행운이었지.

그런 행운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너와 만나고 사계절이 지나가는 동안 우리는 너무 많이 바뀌었어. 이렇게 바뀔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나는 어느새 빛이 되어있었고 너도 분명 빛으로 자리 잡았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꼭 속에서 곪아가고 있던 것처럼 서서히 아파가고 있었지.

건강검진차 병원에 들렸을 때 의사로부터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대학병원으로 가보라고...

심장이 요동쳤다 입으론 괜찮을 거라고 너를 안심시키고 있었지만 쥐고 있던 주먹은 땀으로 흥건했다. 병원으로 가기 전날엔 아예 잠을 자질 못했지. 눕기만 하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대학병원에서 오랜 시간 동안의 검진을 마치고 상담하는 중에 의사는 몇 번이고 머뭇거리다 너를 밖으로 보내고서야 내게 조용히 말을 했지.
"환자분이.... '시한부'이십니다."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런 내가 원망스러웠다.

한참을 아무 말 못 하다가 얼마나 시간이 남았냐고 물었다.
"1년이요."
착잡하게 손가락 하나를 올려 보였다.
그 자리로 진료실을 박차고 나왔다.

몇 번이고 네가 무엇이 잘못되었냐고 물었지만 그냥 웃으며 아무 일도 없다고 말했다. 그래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아무것도...

빛으로 살던 나는 다시 어둠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너와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빛이 어둠 속으로 드러 가면 어둠은 사라진다. 그래서 우리의 주위는 항상 밝았다. 빛났고 화려했다.

그러다 몇 달이나 지났을까. 가끔씩 머리가 아프다는 네 말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그러면 너도 눈치챌 테니까. 괜찮아, 아직 네겐 6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으니까.

엉터리처럼 시간을 보냈다. 아주 전에 내가 살았던 것처럼 자고 싶을 때까지 너와 영화를 보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났다. 바뀐 것이 있다면 네가 있다는 것 이런 생활을 네가 즐긴다는 것뿐이었다.

이토록 찬란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도 점점 시간에 무감각해져갔다. 그래도 분명 그때로부터 1년이었으니까. 분명 우리에겐 시간이 남은 줄로 알았다... 정말 그랬을까?

어느 날 아침 넌 1년이 되기도 전에 죽었다.

분명히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엔 당연히 내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이렇게 무심할 거라곤 생각 못 했다.

그런 나는 어쩔 수 없는 너와의 작별을 요구받았다. 잊을 수 없는 장소에서.
아직도 너의 향기로 가득한 집에는 네가 있을 것만 같은데.

길고 긴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가면 네가 방 겨 줄 것 같아서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착잡한 복도에 주저앉았다.

널 잊지못하는 내가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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