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의 대가는 컸다. 터널에 끝은 있겠지만 좀처럼 보이질 않았다. 심지어 무엇이 끝을 의미하는 것인지조차 몰랐다.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직면하는 새로운 시작이 끝일지, 전소하고 재도 다 날아가 해방되는 것이 끝일지, 수없이 헷갈렸다. 전자를 택하기에는 너무 멀리 왔고, 후자를 택하기에는 다 태워버릴 자신도 없었다. 애초에 내게 선택지가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신이든 무엇이든 끝내줘야 끝나는 일로, 무력했다.
어려서부터 일탈은 해본 적이 없었다. 사춘기조차 없었다. 차라리 어릴 때 이것저것 사고도 치고 시행착오를 겪어봤더라면 제 때 철이 들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면 원래 본성에 나약함이나 결함이 있었는데 여태껏 몰랐다 뒤늦게 알게 된 것인지 의심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이토록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거라면 혹시 운명은 아닐까 자기 합리화도 해봤다. 내가 약해져 있는지 스스로도 몰랐을 때, 일탈은 그렇게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잡았으니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었다. 지금 돌아간다고 해도 과연 다른 길로 걸어갈 수 있을까, 딱히 자신이 없다.
일탈은 짧았지만 영원 같았다. 예정된 끝을 떠올리면 불안도 있었지만 그를 상쇄할 정도로 몰입했다. 긴 후과에도 그 순간은 분명 행복이었다. 무엇이든 아쉬울 때가 딱 좋을 때라는데 모든 것이 넘쳐 흘렀다. 좀 더 아낄 만큼 내 그릇이 크고 단단했다면 과정과 결과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예정에 있었던 끝이었지만 예상보다 상실감은 컸다. 그래도 나는 삶의 습관처럼, 나답게 최선을 다했다. 노력했고, 포기도 해봤고, 다시 느슨하게 마주하기도 해봤다. 그러다 성에 차지도 않고 감당도 안 돼서 종지부도 찍어봤다. 무언가 너무 갖고 싶은 걸 포기하려면 미워해보는 방법도 있으니까.
그러나 좀처럼 끝은 찾아오질 않았다. 이후로는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할 부분이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내 생각과 짐작일 뿐이었지, 실체는 알 수 없었다. 처음부터 존재했던 게 아니었을 수도, 도중에 신기루로 변해버린 것일 수도 있었다. 슬픔, 포기, 의심, 화, 인내, 미안함, 희망, 원망... 공식화된 것 같은 감정의 궤도가 사계마다 번복됐다. '가지 말라는데 가보고 싶은 길이 있다' 같은 류의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읽을 사람 없는 편지를 써보기도, 좋아했던 음악을 닳을 듯 들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사이클을 반복하다 보면 발전도 있을 법 한데, 놀라울 정도로 쳇바퀴 안이었다.
노력만큼 얻을 수 있는 것 말고는 허황된 욕심을 부려 본 일도 없는데 이상하게 포기가 안 됐다. 심지어 쌍방향도 아니라서, 목적지도 잃은 욕심이었다. 그걸 버리지 못한 죄로, 남들이 보면 그다지 부족할 게 없는 삶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수면 아래 백조의 발처럼 침잠하지 않기 위해 매 순간 고군분투했다. 삶의 전반마저 삐그덕댄다면 스스로를 경멸하게 될 것 같았다. 다행인 건 급한 성격을 타고 났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마라톤에 강한 편이라는 것. 물론 뛰는 만큼 성과가 보이는 일은 전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머물러 있을 수는 없으니 그저 잘하는 것을 했다.
터널이 얼마나 더 남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오늘도 궤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것을 매일 아침 눈 뜰 때마다 알았다. 그래도 그 궤도를 도는 것은 내 몫이니 피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떨어지는 바위를 계속 밀어올리다 보면 벌도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끝이 나리라 믿었다. 비록 상황은 변하지 않더라도, 나의 결점과 의심, 두려움을 그대로 껴안아 내가 더 나아진다면 돌파구가 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디에 터놓을 만한 사연이 못 됐지만, 본 적도 없는 익명의 연장자가 해준 이야기는 꽤 위로가 됐다. "너무 많은 감정 소모를 했어요. 어떻게 보면 스스로를 학대한 것도 있을 거예요. 정말 고생 많았어요. 하지만 당신은 버티다 보면 반드시 강인한 뭔가를 얻게 되는 사람입니다. 이 때까지 너무나 애쓴 것, 어떠한 방식으로든 반드시 돌아오게 돼 있으니 이제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