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빵 한입

by 쑤쑤

아침에 문득 냉동실에서 꺼낸 호빵 하나를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예전에 먹었을 때 유난히 맛있었던 기억이 있어서 아무 의심 없이 한입을 베어 물었다. 그런데 첫 한입에 팥이 없었다. 빵만 있었다. 퍽퍽하진 않았지만 내가 기억하던 그 “정말 맛있는 호빵”의 맛을 느낄 수 없었다. 묘하게 마음이 식었다. 호빵이 맛이 없어진 건 아니었지만 감탄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몇 입 더 먹으니 팥이 가득 찬 부분이 나왔다.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맞아, 이 맛이었지. 여전히 팥도 많고 맛좋은 호빵이었다. 다만 처음 베어 문 자리가 달랐을 뿐이었다.


그 순간, 사소한 깨달음 하나가 마음에 남았다. 처음 마주하는 장면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결정한다는 사실 말이다. 팥이 많은 부분도 그렇지 않은 부분도 같은 호빵인데 첫 단면이 기억을 바꿔 버린다. 이 생각은 자연스럽게 사람에게로 이어졌다. 처음 마주했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처음 알게 된 그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말의 온도, 시선의 방향, 나를 대하는 태도가 그랬다. 그래서 나는 그를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하게 됐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그에게도 서툰 부분이 있고 부족한 부분이 있고 가끔은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것 위에 처음의 그 따뜻함이 겹겹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부족한 모습마저도 ‘이 사람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만약 순서가 달랐다면 어땠을까. 만약 내가 처음 경험한 그의 모습이 무심함이었거나 차가움이었거나 상처 주는 말이었다면 사실은 따뜻하고 성실하고 깊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기도 전에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을지도 모른다. 팥이 가득한 부분을 먹어보기도 전에, 빵만 있는 첫인상으로 호빵을 평가해 버린 것처럼 말이다.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나 여러 얼굴을 가지고 산다. 한 사람 안에는 따뜻함도 있고 차가움도 있고 성숙함도 있고 미숙함도 있다. 이런 모든 면이 모여 한 사람이 된다. 다만 어떤 면을 먼저 만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의 방향이 달라진다. 첫인상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 아니라 이후의 모습을 이해하는 기준이 된다.


그래서 ‘인연은 될 사람끼리 이어진다’는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단순히 운명처럼 이어진다기보다 서로의 좋은 단면을 먼저 알아볼 수 있는 시간과 위치에 함께 서 있었던 것이 아닐까. 같은 호빵이라도 어느 쪽을 먼저 베어 무느냐에 따라 기억이 달라지듯 팥이 많은 부분을 먼저 베어 물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따뜻한 모습을 먼저 알게 되어 참 다행이다. 덕분에 나는 이 사람을 쉽게 단정 짓지 않고 오래 바라볼 수 있었고 여러 면을 천천히 이해할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같은 호빵이라도 어떤 한입으로 시작하느냐에 따라 기억이 달라지듯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모습으로 시작하느냐에 따라 관계의 온도가 달라진다. 아마도 그날의 첫 온기가 지금까지 우리의 관계를 데워 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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