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아동센터에서 만난 은이의 세계는
대학에 입학한 후, 3년째 근무하고 있는 동네 지역아동센터에서는 많은 아이들을 만난다. 지역아동센터는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아이들이 등원하는 곳이다. 다문화 가정, 차상위 가정, 다자녀 가정 등의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방과 후에 학습을 하고 돌봄을 받는 곳이다. 그곳에서 3년 동안 선생님으로 근무한 이유에 특별한 봉사 정신은 없었다. 국가에서 진행하는 ‘대학교 청소년 멘토링’ 근로 사업으로 최저 시급보다 더 높은 시급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선택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시는 엄마의 센터에서는 부정 근로를 예방하고자 했던 이유로 근로할 수 없었기에 차선으로 선택한 다른 지역아동센터였다.
“담당 선생님.. 은이가 울어요.”
근로를 시작하고 처음 당황했던 순간이었다. 내가 은이를 울렸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은이가 내 앞에서 울었다. 은이는 학습 발달이 느린 장애를 가진 아이였다. 그래서 방과 후 학습 시간, 특별히 따로 학습을 봐주기로 했던 시간이었다. 5학년인 은이에게 두 자리 수의 빼기를 가르치는데, 은이는 일의 자리 수를 넘어 십의 자리 수를 빼는 법을 몰랐다. 첫 문제부터 차근차근히 알려주려고 했지만, 은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답답하기는 나도 매한가지였다. 숨을 고르고, 다시 차근차근 알려줘야지 결심한 순간 터져 나온 은이의 울음이었다. 은이의 울음은 소리가 없었다. 소리 없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울음이었다. 눈물마저도 참으려고 안간힘을 다 했는지, 콧물도 줄줄 흐르는 울음이었다. 소리 없는 울음에 은이가 울기 시작한지도 모르고 뒤늦게 알아챈 나는 눈물 콧물이 뒤범벅된 은이를 보고 당황해 담당 선생님께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때 알게 된 사실은, 은이의 울음은 꽤 잦았다는 것이었다. 이후로 학습이나 친구와의 놀이가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울던 은이에게 휴지를 가져다주고, 멀리서 지켜봐 주며 은이와의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은이는 잔뜩 일그러뜨리며 울었던 표정만큼, 웃을 때도 얼굴의 모든 근육을 사용해 힘껏 웃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날이 좋아서 센터 아이들이 학습을 끝내고 모두 밖으로 나가서 노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의 놀이 활동을 담당하는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우르르 나갔고, 여러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들이 없어진 센터에는 고요함이 찾아왔다. 학습을 담당하는 선생님과 나는 밖에 나가지 않기로 결정한 은이와 함께 남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 학교에서 친구가 놀렸어요.”, “선생님 있잖아요, 허기워기가 좋아요, 저는.”. “그래서 속상했어?”, “허기워기가 뭐야?” 나에게 신나서 말을 거는 은이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다가 학교에 관해서 묻는 다른 선생님의 말에 자연스럽게 선생님과의 대화로 옮겨갔던 순간이었다.
“선생님! 저 이것도 출 줄 알아요!”
갑자기 들려오는 은이의 큰 소리에 대화를 멈추고 은이를 본 순간, 은이는 SNS에서 챌린지로 유행하던 춤을 따라 추기 시작했다. 정말 뜬금없는 은이의 춤. 감정을 드러낼 때 얼굴의 모든 근육을 다 동원했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몸 구석구석의 근육들을 사용하는 은이의 춤. 잘 추지는 못했지만 어디서 봤던 춤이었는지는 알 수 있을 만큼의 몸짓과 흥얼거리는 음계의 정확도는 대화를 나누던 나와 선생님이 최근 그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해 웃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너무나도 고요한 센터의 오후, 다른 선생님들은 업무를 보느라 바쁘고, 아이들은 밖에서 뛰어노느라 바빴던 그 시간에 할 일이 없어 그냥 앉아있었던 나와 선생님은 그렇게 은이의 춤사위를 보면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때 내 얼굴은 은이가 마음껏 웃었던 표정처럼 모든 근육을 사용했던 것도 같다.
배우고 받아들이는 게 조금 늦은 은이는, 많은 친구들과의 관계가 조금 어려운 은이는 가장 잘하는 게 있었다. 최선을 다해서 울고 웃는 것. 그리고 최선을 다해 몸을 쓰는 것. 은이의 춤사위가 잠깐 다른 곳으로 흘러갔던 나와 선생님의 시선을 다시 끌어오고 싶었던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은이는 하고자 하는 것을 아주 멋지고 재밌는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은이는 그런 아이였다. 뜬금없을 때 당황하게 하고 뜬금없을 때 웃게 만드는 아이였다. 어느덧, 은이가 중학생이 되어 새로운 중학교에 입학하는 날이 다가올 때까지 나는 곧잘 웃으며 적응해 나가는 은이를 바라봤다.
“요즘 은이가 학교에도 안 나간대요.”
중학생이 된 은이가 센터에 나오지 않는 날들이 많아지고, 담당 선생님께 들었던 말이었다. 은이가 중학교에 입학한 후, 학교 생활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고 했다. 자세히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또다시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는 것이 은이에게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가끔 센터에 얼굴을 비추는 은이를 보며 이전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인사를 주고받는 것 밖에 하지 못했다. 어느새 은이의 표정은 점점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힘껏 울던 표정도, 웃던 표정도 더 이상 은이에게 보이지 않았다.
센터에 가지 않는 날, 오후에 센터 대신 차를 타고 학교로 가던 길이었다.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고, 액셀을 밟고 차를 끌고 가면서 은이의 중학교를 지나가는 그 짧은 순간, 차창으로 은이가 보였다.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에 은이는 세 명의 어른들에게 둘러싸여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서 있던 은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고, 겁에 질린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 은이에게 다가가는 어른의 손. 아마도 은이를 돌봐주는 또 다른 기관의 선생님들이었을 것이다. 은이는 그 손을 필사적으로 피했다. 그 짧은 순간, 마주한 은이의 모습은 그랬다. 잠깐의 순간 마주했던 은이의 표정은 학교에서도, 돌아온 집에서도 계속 생각이 났다. 과거 자주 울던 은이의 모습. 너무나도 오랜만에 마주한 은이의 모습이었다. 은이를 둘러싸고 있던 세 명의 어른들은 은이의 세계에서 얼마나 커 보였을까. 얼마나 가까워 보였을까. 얼마나 일그러져 보였을까. 은이의 시선에서 나는 그저 한 발자국 멀리 떨어져 보고 있던, 종종 말을 걸었지만 그 마저도 길게 이어가지 못하던, 그 순간 차를 타고 지나가던, 수많은 어른 중에 한 명이었을까.
센터에서 다시 본 은이는 저녁 시간에 밥을 먹지 않고 피아노 앞에 앉아있었다. 피아노 학원에서 배웠던 멜로디들을 조용하게 치고있는 은이에게 다가갔다. “선생님도 이거 칠 줄 아는데.”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우는 표정도, 웃는 표정도 볼 수 없었던 은이가 나를 봤다. 은이의 옆에 앉은 나는 소싯적 배웠던 피아노 실력을 되살려 연주를 했고, 은이는 또 자기가 칠 수 있는 피아노 선율을 치며 더 쳐달라고 했다. 언젠가 수다를 떨며 이야기를 나누던 은이와의 대화를, 그날 피아노 선율로 대신했다. 살면서 피아노를 배우길 잘했다, 했던 아주 적은 순간 중 한 순간이었다. 피아노를 친 후, 은이는 안 먹겠다는 밥을 받아서 먹었다.
학습이 끝나고 먼저 집에 간 은이의 세계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센터에서만 보던 울던 모습, 춤추며 웃던 모습은 은이의 일부였다. 어느 날, 센터가 끝나고 은이의 동생과 함께 집에 가던 길에서 어떤 트러블이 있었는지, 은이를 등지고 가는 동생 뒤로 가만히 서 있던 은이의 모습도 그 일부였다. 그리고 중학교 앞에서 울 것 같이 서 있던 은이도 있다. 다음 주, 센터에 가면 또 은이를 보게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은이는 센터에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은이를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은이의 세계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생각이 든다. 은이의 얼굴은 어느 순간 내 세계에 박혔다. 은이는 내 세계에 들어왔지만 나는 은이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할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때 피아노를 쳤던 짧은 순간도 은이의 세계에 남아있을지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나는 은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은이의 곁에 머무를 뿐이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다고 느꼈을 때, 그날따라 은이의 세계와 내 세계를 생각하면 자꾸 슬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