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짧은 단면.
<풀잎들>을 보고 뒷마당을 본다. 작은 화단에 심어진 풀잎들은 저마다 온 힘을 다해 자라나고 있는 중. 그곳에는 생명이 우글거린다. 가만히 지켜본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바보처럼 묻는 질문에 넌 골똘히 생각한다.
"기술 발달로 평균 수명이 늘어서 그런 거지. 새로운 탄생이 많아진 게 아니라 죽음이 미뤄진 거야."
끄덕끄덕. "그래서 난 가엾게도 오래 살게 됐네." "그건 또 모르지, 오래 살 수 있을진." ..어, 그래. 너 말 참 예쁘게 한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 하나. 나를 아는 사람보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고 나도 마찬가지로 그들을 모른다. 내가 세상을 모두 알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불가능이겠지. 혼잣말처럼 내뱉는 비관이 익숙한 듯 들은 채도 안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뒷마당을 보며 턱을 괸다. 여린 풀잎들과 아직 피지 못한 꽃들이 바람에 맞서 서로를 꽉 잡는다. 뿌리를 맞대어 버텨낸다. 꺾이지 마. 이름 모를 생명들은 그곳에서 생을 다 하고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다. 예쁘다.
"야, 넌 나 절대로 잊지 마라. 죽을 때까지 기억해 줘. 명령이야." 내 말이 황당하다는 듯 쳐다본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다 죽어도 세상은 아무렇지 않잖아. 그럼 좀 슬플 것 같아. 한 명이라도 기억해 준다고 하면 그래도.. 살 맛은 날 것 같으니까.. '풉.' "웃어? 완전 진지한데." 나도 모르게 입술이 나온다. 버릇이다.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웃기만 하는 것도 네 버릇. 심술이 나 흘겨보다 고개를 돌리면 그제야 말을 꺼낸다. 내가 널 어떻게 잊어. 또 잔뜩 심술 났던 마음은 몰래 신이 난다. "그럼 넌 내가 죽은 다음에 죽어야 돼. 나보다 먼저 죽으면 안 된다. 알겠지?" 약속. 서로를 잡아주려 애써 엉겨 붙던 풀잎들의 작은 뿌리처럼, 우리의 작은 약속도 손가락을 통해 만나 서로를 잡는다. 꼭. 우린 그렇게 꽤 오랫동안 손가락을 꼬아 엄지를 맞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