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
“어디가 아파?”
그가 물어왔다. 어디가 아픈지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 답할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기 때문이었다.
“왜.. 말하기 좀 그래?”
계속해서 물어오는 그. 그 순간에도 나는 다리를 꼰 채 욱신거리는 다리 사이를 느끼며 며칠 전부터 소변을 볼 때 피가 나오던 순간을 떠올리고 있었다. 면역력이 떨어질 때마다 시달리던 몸살, 그리고 몸살과 함께 오는 방광염을 다시 마주했던 순간이었다.
‘유약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표현했다. 그리고 걱정이 된다고 했다. 자신이 유약한 사람이라서 나를 지켜주지 못할까 봐.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나를 만나 자주 아팠다. 그리고 나를 만나기 전에도 자주 아팠다고 했다. 몸이 아픈 걸 말하는 건지, 마음이 아픈 걸 말하는 건지, 혹은 둘 다인 건지. 나는 추상적으로 다가오는 그의 아픔을 스스로 구체화시키는 것에 노력을 쏟았다. 그의 입에서 떨어져 나오는 아픔이라는 단어를 조각하며 그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그에게 힘이 되어 주겠다고. 내가 지켜주겠다고. 그간 내가 얼마나 연약한 사람인지 수백 번 당해놓고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그렇게 사랑을 결심했다.
그래서 누군가가 보면 웃길 수도 있는 사랑을 해왔던 거다. 역시 소화기관이 좋지 않았던 나는 조금만 과하거나 부담이 되는 음식을 먹으면 바로 소화가 되지 않아 소화제를 까먹지 않는 한 챙겨 다녔다. 소화제를 챙기지 않은 날에는 편의점에서 소화제를 사 먹고 꼭 한 알이 남았었다. 그렇게 집에 한 알만 남은 채 쌓인 소화제들이 즐비했다. 그날도 소화제를 들고 나오지 않은 날이었는데 속이 얹히고 말았다. 편의점에서 급하게 소화제를 사려고 했을 때, 그는 나에게 두 알을 먹고 난 뒤 나머지 한 알을 달라고 말했다. 그때, 자신을 유약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그의 손에 나머지 한 알의 소화제를 올려주며 웃어버렸다. 그렇게 꽤 종종, 우리는 각자의 소화불량을 함께 했다. 서로의 건강을 살뜰히 챙기며 말이다.
“왜..? 말해주면 안 돼?”
내 앞에 있는 그는 어느 때보다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던 것은 내 염증에 대해 무지했던 지난 이들의 영향이 컸다. 처음으로 입 밖으로 꺼냈을 때, 충격을 받는 듯한 표정과 미안하다는 사과. ‘너 때문이 아니야’라고 말했어도 각자의 방식대로 짐작하며 불안해하는 눈빛.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더욱더 뾰족하고 불안하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내가 그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단순히 증상이 점점 심해졌기 때문이었다. 약을 받아서 먹기 시작하며 그에게 말을 꺼냈을 때, 그때 새어 나왔던 내 작은 한숨에, 그는 괜찮을 거라고 답했다. 한 마디의 위로에 보답할 수 있는 정도의 미소를 짓는 나에게 그는 말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나도 전에 종종 그랬었거든. 스트레스 많이 받을 때마다.” 세상에.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여러 방면으로 더 다양하게 아파본 사람이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그. 나보다 먼저 아파봤다는 그의 말은 이상하게도 그 어떤 말과 표정보다 큰 위로로 다가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위로보다는 더 큰 안정감이 찾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 내가 그를 좋아하는 확실한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그는 나보다 더 먼저 아파본 사람이어서. 그래서 나는 그를 좋아한다.
또 하나의 새로운 이유를 그에게 말했을 때,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이유라고 말하면서 활짝 웃었다. 재밌어하는 그의 앞에서 머쓱하게 따라 웃으며 더 말을 꺼내지 못했지만, 정말 진지하게 한 말이었다. 나보다 먼저 아파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털어놓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느꼈다. 살면서 처음 극심한 불안을 느꼈을 때, 그는 이미 그 고비를 넘어온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낯설게 겪는 내 병을 겪어온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낯선 상처를 이미 회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은 그를 만나면서 내가 그를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그를 지켜주겠다고 다짐했던 내가 어쩌면 그보다 훨씬 유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었다.
살면서 겪는 아픔들은 그때마다 낯설게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가 겪는 아픔도, 그에게는 낯선 감각들일 것이다. 그 이후로, 종종 불편함을 호소하던 그는 소화 기관에 염증이 생겨 새로운 약을 처방받아 회복해 나가고 있다. 내가 낯선 감각들을 마주했던 것처럼, 그는 또다시 낯선 감각들을 마주하고 치료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 그를 옆에서 보며 다시 한번 생각한다. 또다시 강해지고 있구나,라고 말이다. 그리고는 몰래 피식하고 웃는다. AI가 요약해 준 그와 나의 통화 내용 속 주된 관심사가 건강이라는 것을 떠올리면서, 나는 다시금 그를 응원하게 된다. 누군가 개복치 같은 둘을 보고 재밌다는 듯이 웃을 때도 같이 웃는다. ‘우리는 강해지고 있는 중이야.’ 생각하며 안는다. 아픔을 사랑하기. 가장 아파 본 사람은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서로의 아픔을 사랑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