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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우정은 사랑과도 같다.

어떤 관계의 회고록.

by 장희은





‘어떤 우정은 사랑과도 같다’는 구절. 책 ⌜쇼코의 미소⌟에 나온 구절이다. 주인공이 멀리 떠난 쇼코를 떠올리며 내뱉은 독백을 나는 S가 내 곁을 떠났을 때 떠올렸다. 우리는 우정이란 단어로 서로의 사랑을 바라봤고, 응원했고, 질투했으며 끝내 이별했다. 우정과 사랑의 중첩을 이해하기에 그때는 너무 어렸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성숙한 이별을 하기에도, 우린 너무 어렸을 거다.





곁에 누구도 없다고 느꼈을 때 S를 처음 만났다. S는 나와 친해져야 할 이유를 찾지 않았다. 그저 아무런 이유도 동기도 없이 어느날부터 매번 혼자 다녔던 하굣길을 같이 해주었고, 심심했던 방과후 일상을 채워주기 시작했다. 나와 같이 놀고 싶다며 솔직하게 다가온 S는 나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서로의 사생활 역시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너무도 다른 가정환경이었던 서로를 호기심 어리게 바라보며 서로를 옆에 두고 각자의 연애, 각자의 짝사랑을 하며 서로의 취향을 알아갔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S와 나, 그 사이에는 질투가 껴들었다. S는 나를 또 다른 연인으로 생각하는 듯 연락이 뜸할 때면 내게 망설임없이 서운함을 비추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S를 달랬다. S와 친한 이성 친구가 나에게 다가올 때면 S는 어렴풋이 질투를 내비치며 둘 사이를 응원해주지 않기도 했다. 질투가 껴들기 시작했던 관계. 그 관계에서 나는 힘들어하며 끊임없이 달랬고 나의 노력으로 멀어졌던 사이는 다시금 가까워지곤 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매번 힘들게 반복했지만 나는 S와의 관계를 끊을 수 없었다. S가 나의 유일한 친구였기 때문일까? S가 나를 힘들게 할 수록, 나는 S가 나를 사랑한다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너무나도 달랐던 성향과 각자의 사랑에 대한 크고 작은 질투를 거치며 지쳤으려나. 짝사랑과 첫사랑, 안정적인 사랑과 인간적인 사랑, 그리고 초월적인 사랑까지. 여러 형태의 사랑을 경험해온 내가 과거를 보았을 때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일방적 이별의 이유였다. 정말 한 순간 아무 말도 없이 내 모든 연락을 끊은 S를 몇 년이 되도록 곱씹었다. “그냥, 모르겠어. 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마지막으로 S가 내게 건냈던 말을 되짚어본다. 내가 받은 상처와 비례하여 너는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듣고 싶지 않았다. 듣는 순간 내 자신을 더 혐오하게 될 것 같아서. S와 달리 솔직하지 못했던 나는 끝내 물어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S의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S를 다시 만났다. 내 모든 연락을 끊은지 1년 만에 들린 소식에 용기내어 찾아간 장례식장이었다. S는 그새 키가 컸고, 이따금 눈에 비추던 불안과 집착도 없어진 듯 했다. “나 연애 시작했어. 알고 있어?” 찾아간 장례식장에서 본 S는 또 다른 사랑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런 S가 안정적이고 행복해보였다. 둘은 오랜만에 만나 서로 근황을 물으며 서로 아무렇지 않게 시덥지 않은 말들을 나눴다. 대화는 매우 어색했지만 반가웠다.


함께 잠깐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타기 전, S는 무거운 마음으로 서 있는 나에게 먼저 팔을 벌렸다. 나는 장례식장 앞에서 S와 가벼운 포옹을 나누었다. 그렇게 S를 안았을 때, S와의 접촉이 너무 어색하게 다가왔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나를 안아주던 S도 울고 있었다. 서로 안아주며 흘렸던 눈물은 서로가 그제서야 나름의 이별의 형식을 갖추려 했던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늦었음에도 제대로 된 이별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 뒤로 밥 한 번 먹자고 이야기했지만 누구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던 것을, 나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였다.


결국 절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S를 이해하게 되었던 순간은, S와 나의 관계를 우정이 아닌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죽어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던 누군가를 이해하게 되는 것. 그게 사랑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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