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란테스트기와 산부인과에서 내준 숙제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봤지만 여전히 아이 소식이 없자 남편은 내게 같이 병원에 가보자고 했다. 그때 우리 나이 스물아홉, 서른둘이었다.
남편이 얘기한 병원은 일반 산부인과가 아니었다. 자연임신이 어려워 의학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아가는 난임병원이었다.
"난임병원에 가자고?"
처음 그의 입에서 난임병원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마음속에서 속상함과 원망, 반발심이 들끓었다. 그의 제안이 마치 임신이 안 되는 이유가 나 때문이라고 탓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남편은 아이를 얻을 수만 있다면 내 몸이 망가지는 건 상관없는 건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언론에서는 매년 출생률이 최저점을 찍고 있다며 국가소멸위기라고 하는데, 남편의 지속적인 설득으로 오게 된 난임병원은 언론에서 말하는 곳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그곳에는 너무나 간절히 부모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병원 내에 앉을 자리가 없었고, 선생님을 뵙기 위해선 한 시간 이상 대기는 기본이었다.
내 이름이 불려졌다. 그곳에서내가처음 만난 사람은 의사 선생님이 아닌 상담 선생님이었다. 상담 선생님은 푸근한 얼굴로기본적인 인적사항부터 은밀한 사적인 영역까지 물었다. 그러고는30~50대가 대부분인 난임병원에서 보기 드문 이십대라며 반가워했다.
상담을 마치고, 남편과 이런저런 검사를 받았다. 우리는 나이도 젊고 건강하기 때문에 별 문제없을 줄 알았는데, 검사 결과 나는 난소 나이가 실제나이보다 10살이나 많았고, 남편은 정자의 운동성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동네 병원에서 '정자의 운동성이 좋다'는 결과를 받았던 남편은 나보다 더 충격을 받은 듯했다.
검사결과에 적잖이 놀란 우리와 달리 선생님은 화통하게 웃고 계셨다. 당시 우리 몸은 자연임신이 어려운 상태였지만 선생님은 내 나이가 스물아홉이니 어떤 시술을 하든 임신 확률이 높을 거라며 긍정적으로 보셨다. 선생님 말씀이 맞았다.
나는 스물아홉 끝자락에 찾아간 난임병원에서 시험관 시술 1차 만에 세상에서 가장 귀한 첫 아이를 만났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에서도 아이가 안 생겨 고민이긴 하지만 '난임병원까지 가야 하나?' 싶은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병원 앞에 비공식적으로 붙은 '난임'이라는 명칭 때문인지 왠지 그곳에 간다고 하면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비칠까 겁도 나고, 배에 자가주사를 맞고 채취를 해야 하는 등의 시술 과정이 힘들다 보니 꺼려지는 점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처음에는 다들 배란테스트로 자연임신을 시도해 보다가, 산부인과에서 난포주사를 맞고 숙제를 하다가, 한의원에 갔다가 그다음에 난임병원에 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게 성공하는 케이스도 많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시술의 적기를 놓쳐 아이를 갖기 더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의사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난임병원 방문의 적기는 여자 나이 기준 35세 미만이면 결혼 1년, 35세 이상이면 결혼 6개월 동안 임신이 안 될 경우기 때문이다.
'시험관 시술 1차 만에 임신하는 법'으로 다양한 콘텐츠가 생산되던데, 먹는 것 운동보다 중요한 건 바로 나이였다. 난소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신체 나이가 젊다면 임신 확률도 높았다. 즉, '갈까 말까, 가도 될까?' 고민하는 그 시간에 내비게이션 켜고, 운전대 잡는 게 내 아이를 만나는 가장 빠른 길인 것이다.
난임병원은 이상한 병원이 아니었다. 최첨단 기구와 촘촘한 진료체계, 게다가 비뇨기과가 함께 있는 '임신 전문' 고급 산부인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