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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삭 속았수다

그래도 휴먼

by 검마사

"폭삭 속았수다"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한동안 화젯거리였다. 폭삭 속았수다는 제주도 방언으로 수고했다는 의미라고 한다. 아이유, 박보검 주연의 이 드라마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평범한 소시민의 이야기를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풀어간 작품이다. 평소 드라마를 즐겨 보지 않는 나였지만 이 드라마를 안 볼 수는 없었다. 워낙에 평이 좋았기 때문이다. 며칠에 걸쳐서 몰아 본 결과 나 역시도 폭삭 속았수다의 세계관에 푹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힘든 일상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대놓고 때로는 은밀하게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이 우리의 삶을 닮았다.


드라마를 보면서 떠오른 여러 사람이 있다. 블로거 Y는 삶의 굴곡이 매우 심한 이웃이다. 오프에서 그녀를 처음 봤을 때는 곱게 자란 귀공녀 느낌이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남을 돕기를 좋아하는 그녀였기에 밝게 자랐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녀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밝은 모습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어떤 아픔과 고통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사람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는 지금도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속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엄살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내부의 어둠이 너무도 크고 깊기에 억지로 꾹꾹 누르고 있는 것이다. 봉사활동을 하고 남들의 일을 응원하고 도우면서 밝은 에너지로 어둠을 상쇄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일은 늘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자신만의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을 겪을 때마다 그녀는 내면의 어둠에 먹히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누구보다도 밝을 수 있는 그녀이지만 웃음의 한편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과거의 일들이 아직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 털어놓고 싶어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엮여 있는 탓에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현실에 가슴 아파한다. 남들에게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없는 과거사에 외로운 밤을 견뎌내야만 한다. 말로 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밝은 미래를 꿈꾸고 있다. 그녀를 사랑하고 응원해 주는 가족과 글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제 과거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면 백과사전 분량이 나올 거예요"라고 말하며 씁쓸한 미소를 짓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언젠가는 시원하게 털어버릴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과거의 과오를 잊지 않고 어떻게든 수습하려는 그녀이기에 언젠가는 모든 것을 시원하게 털어버릴 날이 올 것이다. 괴로움을 잊기 위한 술이 아닌 즐기기 위한 술을 함께 마시고 싶다. "폭삭 속았수다"라는 말을 그녀에게 해주고 싶다. 앞으로는 꽃길만 밟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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