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유구유언 20화

우아한 죽음?!

-그땐 이미 내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잖아.

by 이태승

응0: (길가에 할아버지가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얼마 전, 병원에 갔는데, 80대 정도로 보이는 노부부가,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서로를 부축/의지하면서 간신히 걸어오시는데, ‘야, 난 그렇게 된다면, 그냥 죽는 게 나을 거 같아.’

태승: 그렇게 된다는 게, 뭘 말하는 거니?

응0: 자기 몸을 자기 스스로 잘 움직이질 못하는---.

태승:---(할 말 잃음)---.


‘죽음’이란 말을 이렇게 쉽게(?) 하다니! 커피숍에서 만나자마자, 서로 안부를 묻기도 전에, 친구 입에서 나온 말이다.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다. 그래서 부담 없이 ‘툭’ 던진 말일 게다. 음료를 주문 후, 계속 이어 갔다. 일부러. 내가.


태승: 그래도 ‘죽음’이란 게---어찌 자신 뜻대로 결정할 수 있겠니?

응0: 아냐, 병원에서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사는 것보다, 그냥 죽는 게 나아.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가끔 해. 우릴 돌봐줄 자식도 없으니, 알아서 잘 생각하라고.

태승: ---.


남 말 같지 들리지 않았다. ‘아픔, 고독, 죽음’ 멀리 있지 않다. 2012년 12월 말이다. 아래 배 뒤쪽에 아기 주먹만 한 ‘물혹’ 제거 수술을 받았다. 개복 수술했다. 명치 부근에서 배꼽 아래까지 길게. 수술대 위의 마지막 기억이다. ‘약 들어갑니다.’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죽을 수도. 그 후론 기억 없다. 차가운 수술칼이 내 배를 ‘스~윽’하는 느낌이, 기억 저 건너 어느 한 편에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뭘까?! 기억 저 건너 어느 한 편!


그해의 겨울은 추위가 혹독했다. 몇십 년 만의 폭설과 기온 하강이다. 입원해 있는 동안, 마취가 풀려 깨어있을 때의 아픔과 그리고 새벽의 외로움, 고통이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니다. 한가지였다. 제발, 아프지만 않았으면.


2020년 7월 말이다. 세 번의 야간 응급실행 끝에, 결국 수술했다. 또 개복이다. 명치 부근을 이번엔 ‘가로’로 찢었다. 쓸개 제거 수술이다. 수술대 위의 마지막 기억이다. ‘약 들어갑니다.’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죽을 수도. 그 후론 기억 없다. ‘기억 저 건너 어느 한 편’도 없었다. 만일, 이후 깨어나지 않았다면! 난?!

완성됐다. 드디어 내 안에 ‘십자가’가 새겨졌다. 아주 크고 깊게. 얼마나 ‘십자가’를 잊고 엉터리로 살았으면, 하나님께서 강제로 새겨 넣으셨을까. 난, ‘王(왕)짜 복근’이 더 좋은데, ‘십자가’라니. 그렇다고 ‘王(왕)짜’ 만들어 달라고, 아래에 길게 가로로 두 줄을 더 만들어 달라는 건 아닙니다. 절대로. 오해 마십시오, 하나님! (내 중심 아시는 주~님---).


[남편이 장례식장에 다녀오면서, 아내에게 전화했다. “여보, 그 사람 정말 안됐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서, 돈도 모으고, 자식들도 잘됐고, 이젠 살만하다 싶었는데, 그렇게 갑자기 허망하게 가다니! 우리도 ‘죽을 준비’ 해야 해”! 집에 도착한 남편은 뜻하지 않게, 아내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죽’을 실컷 먹었다]. 가끔 부부 사이에 죽음에 관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 남는 죽, 버리지 않으려면.


혹, 죽음에 관해 대화하다 보면, 대부분 ‘우아한 죽음’을 꿈꾼다. 대소변 가리지 못하면서, 고통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을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죽음이 뇌와 가슴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우아한 죽음’을 꿈꾸는 이유다. 그런데, 어디 그런가! 그런 ‘우아한 죽음’은 별로 없다. 스콧 니어링 같이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100세쯤, 죽음을 감지하고 받아들이면서 일부러 곡기를 끊고, 사랑하는 아내의 곁에서, 우아하게?!


무슨 말이 필요하랴! 우아한 죽음?! 어떻게 하면 될까? 우린 매일매일 산다. 돈 때문에 열심히 산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화장실 때문에 살고, 화장실 때문에 죽는다. 화장실을 집 밖에서 집 안으로. 한 개에서 두 개로. 두 개에서 세 개로---. 화장실 개수를 늘리려고 살다가 죽는 거다. 죽도록 일한다. 일하다 죽는다. 결국은 잘 죽기 위한 돈을 벌다가 죽는 거다.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죽는 거다. 그 잘나 빠진 ‘우아한 죽음’을 위해!


막상 현실은? 처참하다. 죽기 전 ‘우아한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없다. 이미 육체와 정신은 사그라지었다. 자신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육체의 장애와 그리고 자신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인지장애는 ‘이미’ 벌써 내 몸 깊숙이 박혀 있다. ‘우아한 죽음’은 없다. 그게 현실이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찾아가나, 정승이 죽으면 안 간다.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잘 살아야, 잘 죽는 거다. 정녕 살아 있을 때, 죽음을 잘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정작 ‘죽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연민을 나누며,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거다. 그게 ‘우아한 죽음’이다. 죽음! 정말 어려운 주제다. 내 깜냥에 꺼내기 감히 어려운 주제다. 신께 묻는 까닭이다. 석가모니, 예수가 이 땅에 온 이유이기도 하겠다.


2022년 5월 21일 뉴스다. 서울시 정책 중, <병원 안심 동행 서비스와 생활 관리 서비스>가 있다. 외로움 관리와 사회적 고립 예방을 위한 AI(인공지능) 서비스도 있다. 비용도 저렴한 편이다. 노인 가구와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문제 등을 돕기 위한 서비스란다.


응0아! 네 말이 옳다. 너는 ‘우아한 죽음’을 말한 거겠지. 내가 그때 잠시 오해했다. 미안! 너희 부부는 자녀가 없으니, 더 준비를 잘해야 한다는 말이었겠지. 그랬구나! 그래, 이제 좀 알겠다. 그래도 걱정은 하지 말자. 국가적 서비스도 좋아진다고 하니. 무엇보다도 너는 정말 잘 살았잖아! 혹, 네가 죽음에 이를 때면, 네 주변엔 그야말로 인산인해일 거야. 사랑하는 사람들로 꽉 찬. 내가 그 자리에 있을지는 모르겠어. 그땐 이미 내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잖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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