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띵까띵까, 뉠리리야 노는 이유.
네 분(아버지, 어머니, 장인, 장모님) 부모님이 모두 별세했다. 친구들 부모님이 병환 중에 계신 분이 많다. 연세가 팔십 후반부터 구십이 넘으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사정이야 조금씩 다르지만, 부모님을 향한 친구들 걱정이 많다. 조만간(?) 별세하실 거라는 사실 자체는, 매우 안타깝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애타며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병환 중에 계신 부모님이 고생하시는 거다. 그런 부모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경제력, 배우자를 비롯한 다른 가족과의 관계 등 현실적 문제들이 즐비하다.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삼십 대 중반쯤(1995년?)으로 기억한다. 인천시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친구(조덕0)가 퇴근 후에 학원으로 날 보러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친구가 내게 물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동물이 뭔지 알아?’
‘---음---’
‘소가 제일 불쌍해. 평생 일만 하고 죽고 나선 모든 걸 다 주잖아.’
‘---(고개를 끄덕이며), 말 없음---’
‘두 번째로 불쌍한 동물은 뭔지 알아?’
‘---음---’
‘남자(남편)야, 아버지!’
‘---말 없음---’
혹여 있을지도 모르는 ‘나이 어린’ 독자를 위한, TMI(쓸데없이 너무 많은 정보)다. 지금은 소를 대부분 공장식 축사에서 사육한다. 주로 살을 찌우기 위해, 먹이만 주고 일을 시키지 않는다. 더러 넓은 풀밭에서 방목도 하지만, 그때도 소에게 별다른 일을 시키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소가 농사짓는 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논농사든, 밭농사든 소가 없으면 농사는 거의 불가능했다. 쟁기질을 포함한, 힘을 쓰는 거의 모든 일을 소가 했다. 평생토록 소는 일만 했다. 그리고 죽고 나선, 모든 걸 다 주었다. 살은 살대로, 뼈는 뼈대로, 내장은 내장대로, 가죽은 가죽대로 심지어 피는 피대로, 버릴 것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사람에게 모든 걸 다 바치고 이 세상을 떠났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니, 친구가 말한 내용에 대해 저절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여자-어머니)가 돈 벌고, 가사도 하고, 육아도 하는 등의 힘든 삶을 지내고 있는 사람도 상당수가 있음은 당연히 인정한다. 내 엄마도 그런 분 중, 한 분이셨으니. 그냥 남자들끼리 웃자고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길 바란다.
2022년 7월 7일, 친구(정연0)와 함께 경기도 안성에 다녀 왔다. 또 다른 친구(오광0)가 올 초에 구입한, 텃밭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넓은 300평 밭이 있는 전원주택이다. 감자, 옥수수, 고추, 피망, 방울토마토, 가지 등 무려 39가지의 가지가지 농작물을 심었단다. 한 번도 농사를 지은 경험 없는 오광0이다. 감자를 비롯한 봄에 심은 작물들 대부분 수확할 때가 됐다. 수확할 때가 살짝 지난 것도 있다.
친구(오광0)가 농사 경험이 풍부한 해방둥이신, 연세가 지긋하신 이웃 형님을 특별히 모시고 왔다.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들었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걸 심어. 수확하지 않으니 완전히 작물들이 다 썩어 버리게 되었잖아!’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서, 한 손에는 낫을 들고, 또 한 손으로는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닦으며 그분은 열변을 토해냈다.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역력했다.
오광0은 형님이 하는 구박(?)을 들으면서도 싱글벙글한다. 같은 시간에 에어컨, TV, 냉장고, 세탁기가 배송/설치되었다. 최고급 가전제품이다. 내가 물었다. ‘당장 이 집에 살지도 않을 거면서, 왜 가전제품을 사나?’ 오광0의 대답이다. ‘이번 주말에도 오지만, 결혼한 자식들이 자기 친구들과 가끔 주말에 여기 내려와서 놀 거란다.’ 자식들을 위해 가전제품을 사는 거다. 생각만 해도 좋은가 보다.
다른 글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친구(오광0)다. 수십 년째 그야말로 일만 한다. 새벽에 일어나서 두부 만들고, 오후에는 개인택시하고, 그렇게 수십 년을 지냈다. 최근에야 개인택시를 팔고, 안성에 전원주택을 장만한 거다. 평생소원이 잠을 실컷 자는 거란다.
오광0은 건강이 걱정된다. 이십 년 전쯤에 대장암 수술을 했다. 십 년 전쯤엔 뇌경색 진단도 받았다. 여기저기 건강이 말이 아니다. 그런데도 쉬질 못한다. 자기와 아내의 노후 준비와 그리고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서란다. 그 점은 오광0 아내도 마찬가지다. 자식을 향한 부모들의 사랑이란!
나를 포함한 오광0을 아는 사람들은 친구(오광0)의 건강을 무척 염려한다. ‘광0아, 제발 쉬면서 살자꾸나. 네가 한가득 차에 실어 준 감자, 옥수수, 피망, 방울토마토, 가지는 잘 먹을게. 그래도 무엇보다 네 건강이 우선이잖니!’
빠질 뻔한 이야기가 있다. 정연0과 난, 동행하여 오신 형님께 하나하나 물어가면서 생전 처음 감자를 캤다. 낫으로 줄기를 베고, 땅 위를 덮었던 검은 비닐을 벗겨내고, 호미로 감자를 캤다. 어렸을 적, 감자 이삭줍기는 해보았지만, 직접 캔 건 처음이었다. 몇 줄기 캐지도 않았지만, 힘이 들었다. 뙤약볕에서 일해서 더 힘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농부들의 고생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예전에는 소가 다 했던 일이다.
다시 친구(조덕0)다. 조덕0는 뜸하게 연락하던 사이였다. 그런데---. 2012년 조덕0가 별세했다. 향년 50세였다. 인천시 7급 공무원으로 시작한, 고등학교 때 반 대항 야구 시합에서 투수로 활약하던, 운동도 매우 잘하던 건강했던 친구가, 뇌출혈로 쓰러져 7일 만에 유명을 달리했다. 후에 들린 이야기로는 2014년인천아시아경기대회 준비 팀장으로 여념이 없었단다. 일종의 과로사였다. 지금 생각해도 안타까운 마음이 그지없다.
어느 정도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말이 있다. ‘가수는 노래 따라간다.’ 가만히 보면, 상당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인기든 아픔이든 심지어 죽음이든. 노래 가사와 가수의 운명이 맥을 함께 하는.
조덕0가 했던 질문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소 다음, 두 번째로 불쌍한 동물이 뭔지 알아?’ 모든 걸 다 주고 떠난 소 다음으로 불쌍하다고 했던 ‘남편이자 아버지’를 말했던 친구였기 때문이다. 혹시, 조덕0도 그렇게 간 게 아닌가 하는 연민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띵까띵까, 뉠리리야 노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 스스로 위하는 삶이, 결국은 자식들을 위하는 삶이라고. 난, 자식들에게 줄 건 이미 다 줬다고 생각한다. 낳고 키우고 보살피고---. 물론 자식들도 이미 내게 보답을 다 했다고 믿는다. 더 바라지 않는다. 지금도 무척 고마울 뿐이다. 큰 걱정하지 않게 잘 자라 줘서 고맙다. 앞으로도 자식들이 각자의 일은 각자가 잘 감당할 거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런 믿음을 지니고 살아야 ‘아버지인 내’가 우선 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 나 편해지자고 하는 거다. 믿음조차도.
난, 조덕0가 말한 것처럼은 살지 않을 거다. ‘세상에서 두 번째로 불쌍한 동물’로 말이다. 오광0과 유사한 삶도 싫다. 평생 일만 하다가, 건강도 잃는, 소원이 ‘잠을 실컷 잤으면’이라는, 소원치고는 너무 소박한 꿈을 꾸면서는 살지 않을 거다. 지금 당장 일 정리하고, 얼마든지 잠자면 될 것을, 그걸 소원이라니!
언젠가 죽었을 때, 자식들이 알아주기나 할 거 같은가! 아니, 알아주면 무얼 할 텐가! 평생 쉬지 않고, 돈 벌어서 자식에게 줬다고, 고맙다고 할 거 같은가! 자식들에게 물려준 돈, 서로서로 더 갖겠다고 싸움박질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으로 생각할 일 아닌가! 며느리와 사위 그리고 손주들까지 합세해서, 돈을 더 갖겠다는 싸움질이 상상되질 않는가!
우리 힘으로 괄약근 조절이 안 될 때, 자식들이 똥 기저귀 한 번이라도 갈아 줄 거 같은가! 자식들이 똥 기저귀 갈아 줄 걸을 원하지도 않지만, 왜 그리 어리석은가! 그냥, 건강하게 재밌게 살다, 홀가분하게 가지 않으려는가! 끝난 삶이 끝난 채로! <붉은,>과는 다르게.
강기원 <붉은,>
정육점에 가면 내가 있다
채식주의자였던 내가 있다
한 마리의 나는
단정하고 고요하다
신선할수록
고통은 선명하다
끝난 삶이
끝나지 않은 채
여전히 붉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