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차간에 상처 주지 말고, 배신하지 말고, 열심히 잘 삽시다.
뭐라고 당신을 부를까 고민했소. 좋은 소리도 아니고, 싫은 소리를 하려고 하니, 더 고민이 되는구려. 다른 사람들도 혹시 볼 수 있으니, 일단은 姓(성)을 따서 ‘아무개’로 부르겠소. 조금 기니, 그냥 ‘某’(모) 씨로 하겠소.
모 씨, 이건 정말 너무 한 거 아니오. 내가 평상시에도 일찍 자는 편은 아니더래도, 어제는 ‘지방선거’ 날이었잖소. 결과가 궁금해서 평상시보다 더 늦게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게 뭐요.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내게 상처를 줬으면 됐지, 정말 너무한 거 아니오. 이삼십 분마다, 정말 징그럽소. 일어나서 껐던 불을 다시 켜고 살펴봐도 당신은 보이질 않고, 그게 몇 번이오, 도대체.
계속해서 울리는 당신 소리 때문에 잠들 수가 없었소. 결국은 포기하고, 아니 지쳐 쓰러졌잖소. 당신 때문에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던 건 물론이고. 나는 정말 ‘잠’이 부족하면, 그다음 날 생활이 곤란하다오. 당신이 설마 그걸 알고 그렇게 한 건 아니라고 믿겠소.
아 참, 어젯밤 어떻게 침입했소. 우리 집은 20층이라서 당신이 그렇게 호락호락 침입하지 못했었는데, 뭔 일이 있었소. 어떻게 침입해서 날 괴롭힌 거요. 날 괴롭게 한 이유가 특별히 있냐는 말이오.
정말 이렇게 배은망덕해도 되는 거요.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당신에 대해 ‘새롭게 볼 거’를 말하면서, 호의적으로 당신을 소개한 거는 이미 당신이 더 잘 알지 않소. 당신은 은혜를 잊지 않고, 고마움으로 인사할 줄 안다고 말이오.
박수칠 때 떠난다./ 향도 피우고, 제사도 지내준다./ 이만하면 잘 살았다./ 고맙다, 인간들아.//
시인 안상학 씨가 당신을 이렇게 칭찬한 걸, 난 적극적으로 동의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알렸다는 걸을 말이오. 증거도 이미 다 있잖소. 당신을 염두에 두고 말하면서, 상대방의 처지에서 살피면 자신이 성장할 수 있다고, 성찰은 성숙으로 이어진다고 말이오.
이렇게 당신에게 호의를 보였던 내게, 너무한 거 아니오. 밤새워 뒤척이게 만들고, 하여튼 정말 징글징글한 밤이었소. (솔직히 고백하면) 난, 박수는 쳤소. 하지만 그냥 허공에 친 거요. 당신을 볼 수 없었는데, 아니 당신이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을 향해 “박수칠” 수 있었겠소. 그리고 당신을 향해 향도 피우지 않았고, 설마 향 피우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니겠잖소. 만일 그런 거였다면, 당신은 정말로 어젯밤이 ‘제사’날이 되는 거였소.
다시 한번 말하오. 난, 당신이 은혜를 입으면, 고마움을 아는 거로, 그리고 최소한 인사는 할 줄 아는 존재로 생각했소. ‘제사도 지내주고, 이만하면 잘 살았다고, 인간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라고 말이오. 은혜를 알지 못하는, 아니 알기는커녕 되려 ‘匕首(비수)’를 꽂는 그런 나쁜 인간들에 비해, 당신은 얼마나 인격적인, 아니 蚊格的(문격적)인 존재라고 말이오.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오늘 아침 일어나서 보니, 어젯밤의 상처가 흔적으로 남아 있소. 왼발 무릎 밑에 한 곳, 오른발에는 무려 여섯 곳이나 말이오. 물론 이 상처의 흔적은 얼마 가지 않아 없어지겠지만, 어젯밤과 오늘 새벽은 정말 괴로웠었소. 제발 부탁하오. 겉의 상처가 조금 더 깊게 가면 심장까지도 이를 수 있다오. 그러면 당신을 향한 원치 않는 복수심이 생기게 되고, 그 복수심은 결국 당신과 나, 우리 모두를 죽이는 거라오.
두 손 모아 당신께 비오. 다시는 어젯밤 같은 불상사가 없길 바라겠소. 그냥 당신은 당신이 편안한 곳에서, 당신은 당신대로. 나는 내가 편안한 곳에서, 나는 나대로. 서로 모르는 존재처럼,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것처럼, 서로서로 무심하게 살기를 바라오.
설령 당신이 먼저 죽더라도, 나는 당신을 위해 제사도 지내지 않겠소.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도 바라는 바이오. 내가 먼저 죽더라도 나를 위해 제사 같은 건, 절대로 지내지 마시오. 피차 그렇게 살다가, 가십시다, 제발!
간단하게 쓰려던 글이, 제법 길어졌소. 어젯밤이 너무 괴로웠고, 그리고 당신에 관한 애정 어린 관심이, 배신을 당했다는 감정 때문에 그런 것 같소. 오늘 아침 상처의 흔적을 보게 되고, 또 자꾸만 그 상처에 손이 가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소.
피차간에 상처 주지 말고, 배신하지 말고, 열심히 잘 삽시다. 다른 사람 피도 조금만 빨아 드시구려. 올여름 무탈하게 지내길 빌며. 혹 일 있어도 부고장 보내지 마시오. 계좌번호는 더더군다나.
‘성은 某(모)요, 이름은 기’인 蚊(문)에게.
2022년 6월 2일 아침.
배신을 제일 싫어하는, 이길태승.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