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유구유언 15화

지랄 맞은 ‘가부장’ 문화, ‘개나 줘라!’

-친구가 자기 ‘이야기’ 써 달란다.

by 이태승

절친이다. 고등학교 친구다. 섬 출신이다. 아버지는 섬에선 정말 유명인사다. 표현만 그렇다는 게 아니다. 상당 기간을 ‘면장님’으로 봉직하셨다. 정말 훌륭하신 분이다. 지/덕/체를 겸비하신 분이다. 1910년생이신, 아버지는 배재고를 졸업하셨다. 그 당시, 배재고란! 최소한 ‘지’에선 이미 공인됐다. 오해 말라. 그 지(知)가 아닌, 이 지(智)인 줄은 안다. 知가 많으면, 智가 확장된다. 끊임없이 독서를 해야 할 이유다. 아버지의 지(智)에 대해 말하기엔, 紙(지)면이 너무 짧다.


그렇다면 ‘덕’은. 상당한 富者(부자)면서도, 근검절약이 몸에 밴 분이다. 실천으로 가르쳐주셨다. 손수 옷, 가방, 신발 등을 꿰매주셨다. 다른 사람들에겐 넉넉히 베푸신다. 주변에서 신망이 아주 높다. ‘체’는. 키 대략 175cm, 얼굴(젊으셨을 때, 사진을 봤다), 정우성 할아버진 줄. ‘체’도 여기까지다. 안 그러면, 어쩌겠는가. 묘소에 계시는데. 아버지에 관해선 여기서 줄이자. 아니면, 책 전체가 아버지 미담으로 구성돼야 할 것이다.


그래도 아버지 이야기를 좀 더 하려면, 아버지께 허락을 받고 와서 해야 할 거다. 이 글을 보는 사람 중, 같은 섬 출신은 친구의 아버지가 누구를 말하는지 다 알 터이니. 아무리 칭찬이라도 말이다. 고향인 섬 묘소에 누워 계신 아버지께서 칭찬 덕분에 쑥스러워하실지도 모를 일이다.


본격적으로 친구 이야기다. 그는 음악 천재다. 다루지 못하는 악기가 거의 없을 정도다. 가장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는 ‘기타’ 빼고는(그런데 천재?). 피리, 오카리나, 하모니카, 클라리넷, 색소폰(친구는 ‘쎅스폰’이 ‘아니’라고 힘줘 강조한다.) 등 입으로 부는 악기는 기본이다. 그의 실력이 어는 정도인지 확인해보고 싶은 사람은 유튜브에서 확인해라. 이름만 검색해도, 얼마든지 나온다. 친구보다 색소폰 연주 실력이 낫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연락 달라. 아마, 연락하기가 쉽지 않을 거다. 음~메! 기죽어!


그게 다냐? 물론, 아니다. 오르간, 피아노 등 건반 악기 연주는 기본이고, 심지어 피아노는 조율사 자격증까지 보유하고 있다. 노래 실력을 빼먹을 뻔했다. 나훈아 모창대회 나가면 ‘그랑프리, 최우수상, 금상, 대상, 1등’ 감이다. 기가 막힌다. 그럼, 대회엔 왜 나가지 않았느냐? 부끄럽단다. 남 앞에 나서길, 몹시 부끄러워한다. 인정한다. 그러나, 왠지 재수 없다. 자신의 실력을 알릴 땐, 알려야 하지 않겠는가! 참, 이 부분에서도 나와 아주 다르다. 나는 개뿔, 실력도 없으면서, 나서길 좋아한다.


그렇다고 내가 실력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이래 봬도 1980년대 초, 주안에 있는 인천시민회관에서 <인천직할시 제물포예술제 가요 부분>에서 ‘금상’으로, 내 키 반만 한 트로피를 받은 사람이다. 무시하지 마라. 글솜씨도 이만하면 읽어줄 정도는 되고. 그러니, 당신이 여기까지 읽은 거고. 그렇지 않나! 또 자랑할 건 많지만, 차차 하겠다.


옛 이야기하다가, 또 내 자랑으로 빠졌다. 자랑질이 몸에 배었다. 보통은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이, 자랑질이 심하다. 알면서도 자랑질이다. 고치기 힘든 매우 몹쓸 병이다. 그건 그렇고, 지금은 주안에 인천시민회관 건물 자체가 없고, 인천이 直轄市(직할시)도 아니고, 제물포예술제도 없고(있나?), 그때 받은 내 트로피도 없다. 시간이 많이 간 건가. 왜 이리 변한 게 많은가!


다시 친구 이야기다. 친구의 직업은 자연스레 음악과 관련되었다. 밤무대 연주가, 출장 연회 연주가, 피아노 조율사, 색소폰 학원 강사, 가장 최근에는 ‘색소폰 학원’을 직접 운영하였다. 운영하는 학원도 번창했다. 지금은 그놈의 ‘코로나19’ 때문에 학원 일을 쉬고 있다. 잠시 다른 일을 하는 중이다. 음악과 직업 이야기는 여기서 멈춘다.


취미도 여러 가지다. 사진 찍기는 전문 사진사 수준이고, 새총 쏘기는 어느 해, ‘전국 2등’을 할 정도다. 그러니, 친구에게 한 번 ‘찍히면’, 그의 매력 아니, 마력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백발백중이다. 여성들이 조심해야 할 이유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친구의 착한 심성과 성실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의리는 어떻고. 말해 무엇하랴!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 아니, 의리다. 의리가 그야말로 ‘으리으리’하다. 주변의 대다수 사람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진짜 그렇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아니다. 시작하지 말자. 끝도 한도 없다.


칭찬은 여기까지다. 이제부턴 심하게 욕하겠다. 일단은 한곳 만 집중적으로 때리겠다. 그렇다고, 여러 군데에 흠이 많다는 건 결코 아니다. 친구는 아주 ‘가부장’ 적이다. 징글징글하다. 좀 과장하면, 여자를 열등한 존재로 여긴다. 여자를 ‘하등동물’로 취급하지 않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정도다.


‘부엌에 들어오면, 방울이 떨어진다.’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성경 말씀’ 다음으로 믿었다. 친구가 이따금 사용하는 말이다. ‘여자가 돼서 좀---’. ‘여자가 너무 표현이(여자는 감정을 대체로 숨겨야 한단다)---’. 이것도 여기서 멈춰야 하겠다.


‘여자는 어쩌고저쩌고, 여자는, 여자는---’. 여자 이야기만 나오면 이런 말을 달고 사는 친구다. 그러니, 그 친구의 ‘결혼 생활’은 어땠느냐고요? 그걸 물어보다니요! 당연하지요. 여러분이 예상하는 그대로입니다. 나는 처음에는 친구가 자발적으로 ‘이혼’을 선택한 줄 알았다. 부부가 협의한 후에.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일 때다. 친구가 야간업소 일을 마치고 귀가했을 때,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었던 아내가 한두 번 집에 없었단다.

‘아니, 남자가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왔는데, 여자가 집에 없어!’ ‘아니, 여자가 밤늦게 친구들이랑 술을 마셔!’ 단지 애 엄마가 밤늦게 술 마신 걸 가지고 시비를 건 거다. 다툼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철현(아들: 가명)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고요? 친구의 말입니다. “후회야 후회! 철현 엄마 같은 사람 없다. 진짜 옛말이 틀린 게 없어. ‘糟糠之妻(조강지처)’가 최고야! 그 당시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가 무릎을 꿇더라도 이혼은 하지 않을 거야! 철현 엄마도 밤늦게까지 일했으니, 친구들하고 스트레스도 풀려고 그랬을 텐데.” 철현 엄마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마음과 그리움이 절절하다. (철현 엄마, 혹 이 글을 보신다면, 친구 용서해 주시고, 지금이라도 어떻게 안 될까요! 네!)


이제야 깨달았다. 친구가 ‘협의 이혼’한 줄 알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혼을 당한’ 거다. 물론, 법적으론 ‘협의 이혼’ 했다. 하기야! 그런 남자하고 어떻게 살꼬! 친구는 분명히 철현 엄마에게도 그 ‘지랄’(?)했을 거다. 미안하다. 욕이 절로 나온다. ‘여자가, 여자가, 여자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니, 뼛속까지 밴, ‘여자를 우습게 보는’ 그 지랄이란! 이제, 그런 ‘사상과 행동’은 ‘개나 줘라’! 아니다. 그것도 안 된다. 만일, 그랬다간 개도 지랄한다. (개지랄! 이 말이 여기서 나온 걸까?).


철현 엄마, 그러고 보니 정말 착했던 거 같다. 재산 분할도 요구하지 않았다. 다툼도 전혀 없었다. 그냥, 헤어졌다. 뜨거웠던 여름 어느 날, 모든 국민이 외쳤던 ‘대~한민국, 짝짝~짝짝짝!’의 월드컵 열기와는 상관없이, 그냥 쿨~하게. 옷 가방 하나만 들고. 지금, 철현 엄마는 아들과 딸과 자주 교류한다. 친구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다. 그 둘, 모두 결혼해서 ‘아주아주’ 잘살고 있다. 직업도 나름 안정되고, 가정도 충실하게 꾸며가며. 친구에게는 모두 5명의 손주가 있다. 무척 예뻐하지만, 어린 손주에게도 ‘얼레레, 얼레레, 우쭈쭈, 우쭈쭈---’ 하지 않는다. 남자가 그래서는 안 된다나. 하여간! 그놈의 남자, 여자 타령은 언제까지 하려나.


재산도 기본은 충분하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섬에 있는 부동산이 쏠쏠하다. 현금도 있다. ‘억’은 된다. 일정 부분 매각해, 이미 사용했지만, 워낙 많은(?) 부동산을 상속받았기에. 그것도 아들 3명만. 사이 좋게. 아버지께 막내아들 친구가 감히 뭐라 말씀드리는 거 아닙니다. 아버지!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딸 3명을 칭찬할 뿐입니다. 지금은 그렇게 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요즘, 만일 친구네처럼 상속한다면. 불 보듯 뻔하다. 다툼을 거는 사람이 나쁠 수 있다. 그러나 상속 재산 ‘떼먹는’ 사람이 더 나쁜 사람이다. 평화롭게, 공평하게 나누길 바란다. 욕심부리지 말고.



이야기가 정신없이 흘러간다. 중심을 잡아야겠다. 본론이자 결론이다. 내 친구, 정말 착하다. 정말 성실하다. 잘 생겼다. 실력 좋다. 체력/체격 이만하면 합격선이다. ‘돈’, 말했지 않았는가. 어떤가! 이 정도면 ‘새 장가’가도 되지 않겠는가! 다만, 내가 신나게 때린, ‘가부장’적인 면은 절대 ‘아니’다! 왜, 이리됐을까? 친구와 오랜 대화 끝에, 나름 든 생각이다.


당시는 완전히 고립되다시피 한 시골인 섬에서, 도시 문화와는 동떨어진 상태에서, 시간적으로도 유교 문화가 팽배했던 시절에, 대부분의 인생을 사셨던 아버지의 영향이 상당히 컸을 거라 짐작된다. 아버지가 아무리 학창 시절을 서울에서 지내셨다고 해도 말이다. 전체적으로 그 아주 못된 ‘가부장 문화’의 바다에 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일 거다. 당사자이신 아버지도 전혀 알지 못하시고. 섬에서 아버지와 함께 중학교까지 생활한 친구도, 자연스레 그런 영향을 받았으리라. 어렸을 때의 교육환경이 중요함은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가 없다.


친구는 모든 면에서 아버지를 존경한다.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그 ‘가부장’적인 면을 지금은 ‘원수’로 생각한다. 이것만으로도 친구가 많이 사람 된 거다. 그전까진 결코 ‘사람’이 아니었다. 설거지, 빨래, 청소 다 자기가 한다. 아직도 아주 서툴지만, 음식 만들기도 자기가 한다. 혼자 살아서, 그럴 수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거라고, 깎아내리지 말자. 옛날 같으면, 어머니의 말씀을 철저히 믿는 친구에게, 방울이 100개 있어도 모자랄 판이다.


아직도 부족한 면이 있다. 그래도 자신이 문제를 정확히 알고 있으니, 기대해도 충분하리라. 이 글을 본 사람 중, 친구에게 관심 있으면, 연락 달라. 남자 말고(색소폰 배우길 원하면 가능하다. 고액이다.), 여자만! 여자에 대한 관념, 잘못된 ‘가부장’적인 고약한 면은 완전히 뜯어고쳐서, 사용하시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다. 걱정하지 마시라!


책임 보장! 남은 인생 중, 40년까지 A/S 보장이다. 100세까지다. 내 역사적 사명이다. 그 이후는 모르겠다. 그때는 미래의 아내가 될 분께서 알아서 하시라! 내 무덤에 와서 따지지 마시고. 혹 그럴까 봐 면접은 내가 본다. (합격하면, 아내에 대한 색소폰 개인지도는 무료다). 많은 연락 바란다.


친구야! 어때, 이렇게 ‘욕’ 먹어도, 견딜 수 있겠어?! 네 이야기 더 할까. 이걸 보고도 괜찮다면, 얼마든지 쓸게. 아무렴, 너의 부탁인데. 말만 해! 행복하게 잘 살자!! 사랑한다, 친구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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