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혀와 입술을 누군가 강제로 움직였다.
코로나19가 한창인 올해 초, 2월 어느 날이다. ‘고독사’에 관한 기사를 보던 중, 한 친구가 떠올랐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몇 개월 동안 소식도 듣지 못했는데’. 이 친구는 면역력이 약하다고 해서, 코로나 예방 접종을 전혀 하지 않았다. 미혼이다. 혼자 산다. 좁은 집에 세 들어 산다. 직장도 다니지 않는다. 그러니 더욱 염려되었다.
전화했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는다. 여러 번을 했다. 마찬가지다. 잠시 후, 이 친구를 나보다 조금 더 많이 아는, 또 다른 친구에게 연락했다. 상황을 설명하며. 별일 없을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자기가 며칠 전에 통화했다면서. 코로나 전염 우려 때문에, 약 한 달간 외출하지 않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다행이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우울증과 불안 증세가 있음을 호소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시도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간신히 통화됐다. 낮잠을 잤단다. 안부 등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내가 말했다. 아니, 내 혀와 입술을 누군가 강제로 움직였다.
태승: 영0야, 사랑해!
---(잠시 침묵)---
영0: 뭐라고?! 사랑한다고?!
태승: 응.
영0: 야 인마, 뭔 개소리야?! 말로만 하지 말고, 차라리 돈이나 줘!
태승: 돈?!(말 잇지 못함, 잠시 후) 영0야, 이따 모래내시장 순댓국집에서 만나자. 나와라.
저녁 약속을 잡았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연락하여 네 명이 만났다. 소주 두 병 정도가 비워졌을 때였다.
태승: 영0야, 너 아까 왜 그렇게 화를 냈니? 내가 말한 게 뭐 잘못됐니?
영0: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뭔, 사랑이야!
태승: 아니, 나는 네가 걱정돼서 통화한 거고, 그리고 너랑 통화하다 보니, 그 말을 하고 싶어서 한 건데, 뭐가 잘못됐니?! 그리고, 내가 언제 너한테 이런 소주 한 잔이라도 사 달라고 하니, 뭘 갖고 화를 내?! (말은 이렇게 했지만, 화를 잔뜩 냈다. 욕 좀 섞었다).
그러자, 친구가 살짝 움츠러들었다. 그러면서 말한다.
영0: 아~아니, 사랑한다는 말을 평생 처음 들어봐서 그래!
아! 그랬던 거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평생 처음 들어봤기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몰랐던 거다. 순간,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친구의 그런 ‘반응’이 완전히 이해됐던 건 아니었다. 어쩜! ‘사랑한다.’라는 말을 처음 듣다니! 그 흔하디흔한 ‘사랑한다.’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고독사 문제가 심각하다. 나라를 가리지 않는다. 중장년 남자가 제일 많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사회문화적인 것과 경제적인 요인을 들 수 있다. 개인 의지의 문제도 크다. 영0는 언급되는 고독사 요인 중, 상당 부분을 갖췄다. 나이, 미혼, 독신, 가난, 건강, 외로움, 의지 등 거의 완벽한 수준이다. 그 친구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나도 연락한 거였다.
그다음 날이다. 영0에게 전화가 왔다.
영0: 태승아, 나 어젯밤 잠자는데, 자꾸만 네가 한 말이 떠 오르더라. <사랑한다>라는 말이, 그래서 잠을 좀 설쳤어.
태승: ---그랬어!---정말 사랑해! 아주 많~이.
영0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기업인 대우전자(지금은 없음)에서 약 21년간 근무했다. 그때까지는 여러 면에서 괜찮았다. 퇴직 후가 문제였다. 경마 베팅, 주식(그것도 단타 선물 옵션) 등에 손을 댄 거다. 모아 놨던 돈이 없어지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변명하면, 이 당시에 ‘나’와는 연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알 수가 없었다. 만일, 내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더라면---).
어려움의 생활이 이어졌다. 악순환이었다. 의욕이 없으니, 모든 게 귀찮아졌다. 육체적 노동 생활도 거의 할 수 없었다. 경제, 건강, 지인 관계 등 망가지는 건 잠깐이었다. 20여 년 동안 경제 활동도 거의 하지 않았다. 정부에서 지급하는 약간의 지원금으로 생활했다. 친구들이 ‘일을 하라’고 권하면서, 일자리를 추천하면, ‘그냥, 나 둬라. 이대로 있다가 죽겠다’라는 말을 했다. 그런 친구, 영0였다.
그랬던 친구, 영0였다. 내게 <사랑한다>라는 ‘충격적인(?) 고백’을 들어서인지,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된 건지, 그때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나와 친구들에게 직장을 알선해달라고 부탁했다. 취직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지원도 하고, 면접도 보았다. 낙방은 기본이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았다.
며칠 전(2022년 5월 11일), 친구들 5명이 만났다. 영0가 신이 났다. 파주에 있는 대기업에서 전기 관련, 취직이 확정됐단다. 비정규직이지만. 만일, 어떤 일이 있어서, 자신이 회사로부터 ‘잘릴 일’이 있다면, ‘무릎을 꿇고서라고, 빌겠다’라고 한다. 친구들 모두 ‘잘됐다’라고 격려했다. 그런 와중, 다른 친구가 말을 보탠다. “영0가 지금까지, 실제로는 배가 고프지 않아서 그랬던 거야. 배고파서 죽을 거 같으니까---.”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하는, 대단한 칭찬과 격려다.)
이렇게 말한 친구는, 아내와 함께 약 20년간을 일 년에 명절 당일 딱 두 번만 쉬고, 그것도 두 가지 일을 했던 친구다. 모은 돈을 갖고, 최근 안성에 500평짜리 전원주택을 샀다. 노후 대비와 자식에게 물려준다면서. 그러면서 ‘일’이 더 많아졌다. 전원주택 관리와 텃밭 300평을 가꾸느라. 쉴 틈이 없다. 건강도 썩 좋지 않으면서.
‘어떻게 사는 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다만, 여러 면에서 균형을 잡았으면 좋겠다. 일 그리고 쉼. 암튼, 이 말을 하려던 건 아니니까. 영0에게 한마디 하면서, 이 글을 마치겠다. 영0야! 네가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좋은 직장에 취직했으니, 앞으로도 정말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랄게. 돈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우선인 건, 더 잘 알지! 첫 월급 받으면, 모래내시장 순댓국집에서 ‘소주 한 잔’! 네가 사는 거야!
[영0야! ‘Ich liebe dich!’. ‘I love you!’. ‘사랑해!’]. 내가 아는 말이 이게 다다. 안타깝다. 더 말해 주어야 하는데. 지금부터라도 ‘語學(어학)’ 공부 열심히 해서, 네가 아주 지겨울 정도로 말해 줄게. 다른 사람이 평생 들어봤던 횟수보다 훨씬 많이.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일본어, 중국어, 헬라어, 히브리어, 다 배워서. 알았지. 진심을 듬뿍 담아서. ‘싸랑한다. 영0야. 찐심으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