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유구유언 12화

II부.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by 이태승

환갑이다. 그동안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친구를 굳이 구분하자면, 동네와 학교 그리고 교회를 포함한 사회에서 사귄 친구로 나눌 수 있겠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귄 친구이든, 관계에 있어서 親疏(친소)가 있음은 사실이다. 어쩔 수 없잖은가.


곰곰이 생각해본다. 누구와 왜, 친소 차이가 나는가. 지금까지 지내온 결과, 난 사람들과 교감 또는 공감을 잘하는 친구와는 친하게, 그렇지 않은 친구와는 조금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것 같다. 친구들과 얼마 동안 또는 어떤 상황 또는 어떤 조건에서 사귀었는지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좋은 거다. 중국 고전 列子(열자)에 나오는 知音(지음)이라고 할까.


長短(장단)을 잘 맞추는 친구가 좋다. 장단은 ‘다른 사람의 말이나 의견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同調(동조)와는 다르다. 동조는 ‘어떤 일이나 주장에 대하여 남과 같은 보조를 취함’이라는 뜻이다. 동조가 자기 생각과 의견은 포기하고 상대에게 무조건 찬성하는 것이라면, 장단은 자기 생각을 기반으로 상대방과 긍정적인 조화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조냐 또는 장단이냐 그리고 무엇에 장단을 맞추냐는 그 사람이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있느냐와 다름 아니다. 교감 또는 공감이 어떤 내용에서 이루어지고 있나를 살피면, 그의 가치관과 철학 등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사람은 마음이 무너지면 몸도 따라서 금방 무너진다. 자존감이 중요한 이유다. 주변 상황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으면 그 사람은 언젠간 떨쳐 이겨낸다. 자존감이 약한 사람을 간혹 만난다. 몇 마디 대화하다 보면 느껴지기도 한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보면 마음과 생각부터 이미 힘들어한다. 자존감이 약한 사람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자존감 형성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건 뭘까.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외적인 요소와 내적인 요소로 나눌 수는 있겠다. 여기선 주로 내적 요소 중 애착 관계에 집중해, 거칠게 구분해 살핀다. 성장하면서 사랑을 받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성장하면서 사랑하지 않아서일까. 두부 자르듯 명쾌하게 말할 수는 없겠다. 그래도 길게 보면 후자에 가깝지 않을까.


사랑한다는 걸, 무언가에 관심 두고 그 대상을 지켜보며 교감하고 공감하면서 ‘마음 주고 눈물 주는’ 행위라고 한다면, 그런 과정을 겪은 경험이 부족하다는 거다. ‘관심, 교감, 공감 그리고 마음 주고 눈물 주는 행위’가 없었다는 거다. 아니, 그걸 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런 경험이 없어서, 어떤 대상이 자신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지 못하는 거다. 결과적으로 사랑을 하지 않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확인한 경험이 없다는 거다. 자존감이 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는 동안 많은 사람과 함께 한다. 그 관계 가운데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인/발견하며 삶을 누리는 거다. 아마 대부분은 이런 관계 중, 정서적 교감을 가장 오랫동안 많이 나누는 관계는 친구일 거다. 세대와 상황 등 공통적인 기억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이런 걸 인정한다면, 친구 관계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다.


모든 사람은 늙고 죽는다. 만일 늙어가면서 주변에 혼자밖에 없다면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울까. 교감과 공감을 나누는 사람 없이, 요양원 같은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밖에 없는 곳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너무 처참하지 않는가. 이런 죽음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익숙한 환경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함께 살다가,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공통의 기억을 가장 많이 공유하는 친구 공동체가 그런 이상적인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서로서로 친구를 아끼며 사랑하며 교감하며 공감하며 존중하며 살아야 할 충분한 까닭이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걸 원하고,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소망이 있는 더 좋은 곳으로 이사하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더더욱 친구를 소중히 여겨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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