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유구유언 21화

III부. 사회/국가/세계는 우분투를 실천해야 한다.

by 이태승

우분투는 아프리카 반투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사람들 간의 관계와 헌신을 중시한다. 다른 사람을 돕는 자비심,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인정할 줄 아는 관용 정신 등을 강조한다. 전쟁과 학살을 일삼는 인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윤리이자 평화운동의 근원으로 삼아야 할 사상이라 하겠다. 종교의 유무와 종류에 상관없이 우분투 사상은 즉, 공동체 의식의 회복과 회복적 정의는 인류가 지속하길 원한다면 반드시 도달해야 할 목표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류는 한순간에 공멸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1차 베이비붐(1955년~1963년) 시기와 2차 베이비붐(1968년~1974년) 시기가 있다. 세계적 현상이다. 우리나라도 그 시기, 한 해에 약 백만 명이 태어났다. 현재(2022년) 약 25만 명 출생이 예상되는 것과 비교하면, 실로 그 차이는 놀랍다. 인구 소멸이 걱정될 정도다. 저출생의 문제는 어디서 기인한 걸까. 전문가마다 다양한 의견을 말하지만, 이 두 가지는 공통으로 말한다. 양질의 일자리 부족과 그리고 도시 집중으로 인한 무주택 현상을 지적한다. 빈부의 극단적 양극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국가의 수준을 가늠하려면, 장애인에 관한 관심 및 복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어떤가. 길에서 장애인을 마주하기가 쉽지 않다. 이동하는 장애인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장애인 수가 적기 때문이 아니다. 장애인이 이동하기에는 너무 ‘장애물’이 많기 때문이다. 장애인도 사람인데, 어찌 이동하지 않고 살 수 있단 말인가. 장애인들의 피나는 분투의 결과물을 역설적이게도 (장애인들의 분투를 결사반대했던) 장애가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누린다. 장애인이 편하면 시민 모두가 편하다. 제발, 함께 살자.


정치와 종교 이야기하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극단적으로 진영이 나뉜다. 웬만하면 그 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사이 좋았던 사람들도 다툰다. 그런데 어찌, 하지 않을 수만 있겠나. 정치와 종교 이 둘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 현실인데. 정치와 종교, 이 둘은 분리가 돼야 마땅하다. 민주공화국이자 종교의 자유가 있는 국가라면. 표면적으로는, 헌법적으로는 이 둘은 분리되어 있다. 근데 실상에서는 꼭 그렇다고 볼 수 없다. 그 둘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함께’ 한다. 함께 ‘타락’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헤아릴 수없이 많다. 주거니 받거니 한다. 술잔도 아닌데.


하나의 예다. ‘차별금지법’이다. 이 법이 뭐가 잘못됐다는 건가. 차별이 전방위적으로 횡행하고 있는 현실에서, ‘차별을 금지하라!’라는 게 뭐가 잘못됐냐는 거다. 일부 개신교계에서 신학적으로 이러쿵저러쿵하면서, 극심하게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성경의 본뜻을 알고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면, 제발 이러지들 마라. 교회당 맨 앞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를 쓰지나 말든지. (미안하지만) 정치인들은 원래부터 ‘타락했다’ 치부해도 종교인들이 그래서 어찌 될 건가. 개신교 목사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故(고) 옥한흠 목사의 말이다. ‘오백 년 전 종교개혁시대 때보다, 지금 교회가 더 타락했다.’ 괜한 말이 아니다. 양심에 火印(화인-불로 지진다는 의미) 맞지 않았으면, 귀 있으면 들어라.


지구가 위기를 겪고 있다.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위기다. 온난화로 인해 극지방 빙하가 녹고 있다.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극단적인 추위와 더위로 엄청난 희생을 겪는다. 이 모두 ‘사람이 한 짓’ 때문이다. 어디 이뿐인가. 전쟁은 어떤가. 끝날 줄 모르는, 러시아가 벌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아비규환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 온 인류가 핵전쟁의 공포에 살고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남의 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핵전쟁이 난다면 인류 전체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로 인해, 만일이라는 가정도 헛될 지경이다.


우리나라만 국한해서 보자면, 부정적인 면만 있는 건 아니다. 긍정적인 면도 있다. 대한민국 전쟁(6.25)의 참화를 이겨내고 이룩한 산업화/민주화의 성공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영화와 음악, 스포츠를 포함한 문화사적으로도 상당한 성취를 이뤘다.


최근에만 보더라도 대한민국은 OECD 가입, 유엔이 공식 인정한 선진국 편입, 5천만 인구가 넘는 국가의 3만 불 이상 국민소득 (50/30)의 나라다. 구매력 평가 환율로 계산한 1인당 국민소득(PPP)은 이미 2020년 일본을 추월했다. 연필만 해도 ‘일제, 미제’면 모두 부러워했던, 초, 중, 고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라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하다.


민주화는 어떤가. 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민주화가 성숙하였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조문에 死文化(사문화) 되었던 옛날이 아니다. 실제가 민주공화국이다. 이젠 누구도 거꾸로 되돌릴 수 없다. 국민 모두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전제는 요청된다.


산업화의 성공을 가져온 노동자와 기업인들의 노고에 고마움을 보낸다. 특별히 엄청난 노동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저임금을 받고, 고생한 노동자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절대 오늘날의 경제적 부국을 이룩하지는 못했으리라. 이런 의미에서도 위정자와 기업인들이 지금의 노동자를 다시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민주화를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사람들은 어떤가. 이루 말할 수 없다. <1960년 4.19혁명>을 비롯하여 군 출신의 독재 정치(1960년 초~1990년 초)에 대항하여 희생한 수많은 사람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1980년 광주 민주화 투쟁>이라 하겠다. 지금까지 그 고통은 이어 전해져 온다. 시민 모두가 그들의 희생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거다.


영화와 음악 분야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면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다. 예를 들자. 올림픽에서 메달을 많이 딴다는 말이 아니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나 그리고 선수를 응원하는 시민이나, 모두 올림픽을 제대로 즐길 줄 안다는 거다.


예전에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선수가, 시상대 위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울던 때가 있었다. 자그마치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한 선수가, ‘죄송하다’라고 하면서 말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그만큼 우리가 본질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거다. 말이 길어졌다.


사회, 국가, 세계가 속히 평온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사람 모두가 안정과 안전을 누리며 평화롭게 살길 간절히 원한다. 약자를 돌보는, 고통 가운데 생활하는 빈국의 시민들과 연대하는, 전쟁이 종식되는, 기후위기에도 철저히 대비하는 그래서 세계 모든 사람이 활짝 웃을 수 있는 지구촌이 되길 소망한다. 그게 우분투다. 그런 지구촌을 향한 실천은 ‘나’부터 해야 할 것이다. 작은 한걸음일지라도. 스스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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