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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Nov 11. 2022

프리 하지만 냉정해

 제목 짓는데 1분이나 걸렸다. 요새 영 글밥이 안 튀어나온다. 창작을 직업으로 가지고 계시는 분들은 언제나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올해 호기심으로 시작한, 어깨너머로 배운 웨딩 스냅 촬영 건수가 30건을 넘겼다. 

보통 내 외장하드에, 식장의 조명등을 기록하기 위해 무 보정 본을 폴더 일자별로 다 남겨놓는데, 합이 30건이 넘었단다. 스스로 칭찬해 줄만 하다고 생각한다. 

 내 소중한 주말 중 1일인 토요일을 투자해서 만들어낸 성과, 이제는 나의 주말 루틴이 된 취미이자 돈벌이이고, 앞으로도 여력 되는 한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


 하지만, 이러한 스냅 활동에서도 내면에서 나를 갈등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역할'이다.

나는 "메인" 경험이 없이 언제나 "서브"만 담당을 하고 있다. 처음엔 너무 좋았다. 본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웨딩을 할 때에도 메인은 모든 상황을 살피며 신랑 신부를 리드하며 식을 이끌어 가야만 하는 사람이다. 


"본업만 해도.. 그렇게 부족하지 않은데, 뭐하러 힘을 빼나..."

"메인 되면 장비도 더 사야 되고,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은데, 굳이?"

"어차피 취미생활의 일부인데, 신경 덜 쓰는 게 가장 좋은 거야"


 이런 생각들이 내면에서 우위로 올라서며 나는 메인 스냅 트레이닝 중 이탈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서브로라도 기회를 잡아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스스로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서브만 이라고 하더라도 상업사진의 영역이고, 시장에서의 반응은 나쁘지 않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여기까지 오는데도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연구하고 노력해 온 결과물이다.

 


 그런데, 30번 넘게 식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이제는 나도 메인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 촬영 나갔을 때처럼 긴장감이 별로 없고, 식순이 머릿속에 모두 들어가 있어 어느 식이 끝나면 어느 곳에 위치해야 하는지도 이미 머릿속에 선하다. 즉, 긴장감 없이 재미가 없어졌다.


 아울러, 메인 공고는 정말 수시로 올라오는데 반해, 서브 공고는 가뭄의 콩 나듯 올라온다. 게다가 나도 나이가 있기 때문에, 보통 마흔을 넘기면 촬영 기회를 얻는데 성공률이 줄어들게 된다.


 물론, 여전히 마음 한쪽에는 "굳이 메인까지 해서, 주말에도 '책임'져야 할 무언가를 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하여 내면의 목소리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Stay 하는 성격이 아닌지라, 기회가 오면 도전해 보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때 마침 함께 촬영 나갔던 A 대표께서 나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종화 작가님은 진짜 메인 하셔야 돼요. 사진이 너~무 좋아"

"아 그래요?"

"자세도 너무 좋고요, 메인 하시게 되면 저희가 너무 좋죠"


 9월에 함께 촬영하며 들었던 저 A대표 이야기를, 나는 그동안 나에게 '시간을 써 주던' 분들의 말씀으로 착각을... 하고야 말았다. 물론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다행히 오늘이라도 알게 되었지만.


 나는 정성스레 메일을 작성했다. '누가 맡겨놓은 떡고물 찾는 듯한 느낌 없게',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그간 서브 스냅 기회를 많이 주신 A대표님께 대한 감사. 아울러 메인을 해보고 싶게 된 간단한 동기, 그리고 해당 직을 수행하기 위해 궁금한 것들과, 마지막으로 내가 필요하다면 나에게 해줄 "트레이닝 코스"의 대한 설명을 요청드리는 메일이었다.


 곧이어, A대표가 전화를 걸어왔다. 

"뚜뚜뚜, 아 A대표님"

"네, 메일 잘 봤어요. 힘... 근데"


 A대표는 내가 궁금해서 적은 많은 내용을 상세히 시간 내어 설명을 해 주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말을 하셨는데, 결국 이 부분이 A대표와 나와 눈높이가 가장 맞지 않은 부분이 아닐까 싶다...


"네 대표님, 그때 촬영 때 메인작가 필요하시다고... 그래서 용기를 좀 내본 겁니다."

"허..ㅁ 사실 우리 업체가 작아서, 메인을 사서 쓰지, '키워 쓸' 여력은 안됩니다."

"네..?"

"그럼에도.. 뭐 열정 있고 하니까 트레이닝은 내가 해줄 수는 있어요"


 트레이닝을 해줄 수는 있다 하였으나, 뒤에 이어지는 설명은, 대표 스스로도 딱히 그런 생각을 가져보지 않았다는 듯한 말씀이셨다. 물론, 꽤 오래 대화하면서 성심 성의껏 답변은 잘해주셨다.


나 : "항상 성수기 되면 메인 필요하다며, 나한테 투자해"

A : "네가 어디선가 배워오면... 계약을 줄게^^, 투자할 여력은 없는데... 사실 그 정도 급은 아닌 듯?"


 두줄로 요약하면 위와 같다.

나는 이 업체에서 배워서 롱텀으로 기간 고정으로 성수기를 진행하며 경력을 쌓고 싶었지만, 이 업체는 그럴 만큼의 여력도 없었고 그다지 나의 딜이 매력적이지 않았나 보다 싶었다. 그만큼 내가 그 정도 급은 안된다는 걸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모든 분야에서 1등을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렇지만, '인정'은 받고 싶다. 그러기 위해 항상 노력을 하고 비즈니스 매너를 갖추고, 남들이 안 보는 것 하나하나를 더 찾아보며 노력을 하는 편이고, 스냅 업계에서도 '서브 포지션'으로서는 인정을 나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오늘 통화를 통해 다행히 아직도 갈길이 머다란 생각을 갖게 되었다.


 프리는 자유롭지만, 냉정한 거 같다.

서로 필요하면 당장이라도 연락해서 사용하지만, 가치가 떨어지거나 비용이 증가하면 가차 없이 도태되는 그런 곳. 그래야 실력 좋은 사람들이 더 합당한 대우를 받게 될 것이다. 냉정하지만 결국 그렇게 사회가 지탱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소심한 반격을 계획 중이다.

이 업체 대표의 진정성이 있다고 판단되어 서브 스케줄 취합 간 우선순위를 거의 맨 앞으로 놨었는데, 이를 조정하려고 한다. 사실 페이도 많은 편도 아니지만,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정'으로 주시는 스케줄을 거의 다 받곤 했는데, 이제는 그냥 받진 않으려고 한다. 더 나은 페이를 제시하는 업체가 있으면 그 업체 스케줄을 처리할 예정이다.


 내가 괜히 아쉬워할 것도, 조급해할 필요가 없을 거 같다.

나이가 들더라도, 필요하면 부르겠지. 너무 나이에 신경 쓰지 말고, 메인을 꼭 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든다면, 트레이닝해주는 곳으로 지원해서 나를 더 필요로 하는 곳에서 실력을 쌓자. 어차피 이 바닥은 본인들 필요하다면 새벽에라도 촬영 요청을 하는 곳이 아닌가...

 그럼에도, 내 나이 마흔 다되어 가지만 말 한마디에 썸(?) 을타는 이 기질을 어찌해야 할고... 타고난 거 같아 쉽게 고쳐지지도 않는 거 같다...


사진 이라도 좀 따스하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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