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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Mar 20. 2022

나의 첫 공간

나도 어릴 때 그랬을까

"띵동, 고객님의 소중한 물건의 배송 예정일은 3월 18일입니다."


 '뭐야, 배송이 2주나 걸려?' 라며 나는 혀를 끌끌 찰 수밖에 없었다. 구매한 물건은 바로 작은애 책상이었다. 우리 집은 25평짜리 구축 아파트이다. 복도식이고 구조 자체가 좋지 못해, 집이 좁은 편이다. 우리 가족이 처음 이사 온 게 16년이니까, 둘째가 그때 태어난 해였다. 2022년 현재, 첫째는 10살이 되었고, 둘째는 7살이 되었다. 이제는 첫째 못지않게 둘째도 자기만의 책상을 갖고 싶어 했다. 아무래도 그림 그리기나, 자기만의 공간을 꾸미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구가 아닐까 싶었다.


 나는 둘째와 함께 포털사이트에서 책상을 함께 골랐다. 아이는 아무래도 천생 여자라 그런지, 핑크가 들어간 책상을 골랐고, 무척이나 기뻐했었다. 그러고는 약 2주가 지나, 아이의 책상이 집으로 배달이 온 것이었다. 기사님이 방문하신 시각에는 난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터라 조립해주시는 장면을 보지는 못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금요일 집에 왔을 때, 아이들 이층 침대방에 둘째의 핑크 핑크 한 책상이 예쁘게 놓여 있는 것을 확인했다. 내가 집에 온 지 한 시간쯤 되었을까? 엄마와 아이들은 집에 왔고, 둘째는 자기의 책상이 놓여있다는 것에 감격했는지, 정말 정말 좋아하며 책상에 거의 눕다 시 피하였다. 그러고는 자기가 좋아하는 인형, 몰랑이 피겨 등을 곳곳에 배치하고 기분이 좋은지 계속 웃기만 했다.


"소미, 그렇게나 좋아? 책상이 오니까?"

"응. 너무 좋아. 진짜 진짜 좋아"

이렇게 둘째가 좋다고 한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시간을 거슬러, 나도 분명 저랬던 기억이 있.. 어야 했는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내 위에 다섯 살 터울의 형이 있고, 언제나 모든 자원은 형의 독차지였다. 덩치가 유달리 컸던 우리 형제는, 시간이 지나며 둘이 같이 자라고 어머니께서 사주셨던 침대방에서도 갈라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가 거실로 나와야만 했다. 거실 방은 냉장고가 위치하고 있어서, 사춘기 때 한창 예민한 나로서는, 가족 구성원중 누구라도 거실로 향하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짜증이 나곤 했던 거 같다. 


 책상.. 도, 형이 쓰던 거를 물려받는 수밖에 없었다. 낡고 예쁘지 않던 책상. 반면 이제는 형방이 된 침대방은, 꽤나 근사한 책상이 놓여 있었고, 나는 그저 부러운 눈으로 질투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시절을, 나는 결혼하여 독립하기 전인 스물여덟까지 지냈다. '내 공간'이 없이 그렇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결혼한 지 9년이 지난 지금도, 나와 와이프의 공간은 따로 없다. 거실도 좁고, 안방도 좁다. 그나마 내가 재택근무 등을 필히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와이프가 안방을 잘 비워주고, 아이들도 들어오지 못하게 제재를 해주는 편이다. 이 정도면 그래도 내 공간이 있다고 봐야 하나..? 그래서일까, 나는 회사에서 재택을 하라고 권장함에도 언제나 출근한다. '내 공간'이 잘 지켜지는 곳은 오히려 회사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생각해보면, 아버지 어머니의 공간인 안방에는, 낡은 라디오와 화장대, 그리고 TV 등이 놓여 있을 뿐이다.(지금도 그러하다.) 자식 세대인 나처럼, 취미나 자기 계발, 업무를 위한 별도 공간은 필요가 없으셨던 것이다. 

 하지만 자식 세대가 이제 부모가 되면서, 재택근무 등의 업무를 해야 하는 부모와 자식 세대 모두의 개별 공간이 필요로 해 지게 되었고, 그 요인일까? 요새는 과거보다는 조금 더 넉넉한 공간을 선호하는 문화가 생겨난 것 같다. 이는, 비단 집 평수뿐만 아닌, 자동차 크기에서도 과거보다 더 큰 자동차를 선호하는 것 같다.


 나의 과거 이야기로부터,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서, 자기만의 공간을 갖게 되어 기쁜 둘째를 보며, 그것들을 가져보지 못했던 어릴 적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가급적, 우리 아이들에게는 나의 어린 시절의 '결핍'을 물려주지 않고 싶다. 이는 모든 부모들의 공통된 바람 아닐까? 그럼에도, 어릴 적엔 최소한 부모님보다는 더 잘 살 수 있으리라 확신했던 나이지만, 지금 와서는 그렇게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 같다.


 여하튼, 우리 둘째가 그토록 갖고 싶던 새 책상과 나만의 공부 공간. 아이가 그곳에서, 새로운 꿈을 가꾸어 나가는 소중한 자기만의 공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정성스레, 자기의 책상에 인형들을 맘껏 꾸미고 있는 둘째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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