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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idi Oct 24. 2021

10. 작은 도시, 델프트

중앙광장의 탑에서 내려다본 델프트의 전경


  델프트는 반나절 산책하듯 돌아다니면 다 볼 수 있는 그런 작은 도시였어. 아기자기한 가게들부터 가구와 다양한 리빙 관련 소품들이 가득한 편집숍까지 엄마와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곳이 많았어. 작지만 알찬 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특히 엄마도 길을 헤매지 않고 숙소를 찾을 수 있을 만큼의 규모였기 때문에 마치 집 앞을 산책하듯 원래 살던 동네 앞을 거닐 듯 돌아다녔어.


  중앙 광장에는 성당이 있었는데, 탑의 전망대에 올라갈 수 있었어. 끊임없는 원형계단을 올라가야 해서 엄마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는 어느 도시에 가나 꼭 높은 곳을 올라가는 것을 좋아해. 그래야 내가 도시의 어디쯤에 있는지, 도시가 얼마나 큰지, 내가 걸었던 거리는 어디인지 또 그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어떤지. 저 멀리 도시의 끝이라고 생각되는 지점에서부터 바로 아래까지 내려다보며 이런 소소한 발견을 하는 것이 여행 중 가장 재미있는 순간이야.


   오후에는 스테파니를 만나 델프트 공대를 구경하기로 했어. 위트레흐트에 살고 있는 라우라도 델프트에 오는 대로 합류하기로 했지. 모든 대학교가 그렇듯 캠퍼스 투어를 하면 한참을 걸어 다녀야 한다는 점과, 이미 암스테르담에서 만났던 멜리사와의 강행군을 경험했기에 엄마가 걱정이 되었어. 엄마는 마침 숙소도 너무 좋고 가까운 거리에 관심 있는 가게들이 많으니 혼자 시간을 보내겠다고 했어. 잠시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엄마도 자유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우리는 6시에 숙소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어.


델프트 공대의 건축학과 건물


  스테파니와 둘이서만 캠퍼스를 구경하러 간 것은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아도 178의 큰 키의 스테파니는 빠른 걸음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학교를 구경시켜주었거든. 내 짧은 다리로 따라가느라 고생 좀 했지. 델프트 공대에서는 인터넷에서만 보던 유명한 건축물들을 실제로 볼 수 있었어. 직접 들어가 보니 이미지만 대충 보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어. 역시 무엇이든 직접 경험하고 눈으로 보아야 아는 것이 많아지나 봐. 요즘 같이 인터넷 상에 멋진 사진들이 넘쳐나는 때일수록 오히려 이미지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 직접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스테파니 덕분에 건축학과 학생들의 스튜디오도 기웃거려보고 스테파니가 공부하는 산업디자인과의 건물과 도서관도 구경했지.


  재미있었던 것은 돌아오는 길에 하천을 건너는 도개교가 있었는데, 스테파니 말에 의하면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도개교가 열리기 전에 건너기 위해 전력질주한다는 거야. 간발의 차이로 도개교가 열리는 시간에 걸리면 지각할 때도 있다더라고. 실제로 배가 지나갈 때 도개교가 열려 사람들이 그 앞에 멈추어 서서 기다리고 있었어. 스테파니는 바보 같고 귀찮은 도개교라고 했지만 열리는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내 손을 잡고 같이 달리는 모습이 신나 보였어.


  유럽을 여행하면서 느끼는 점은 옛 모습이 자연스럽게 잘 남아있고, 사람들이 또 그것을 불편해하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잘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야. 스테파니가 룸메이트들과 함께 살고 있는 집에 방문했는데, 그 집은 델프트에서 가장 좁은 입면을 가진 집이라고 소개해주었어. 층을 이동하기 위해서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고, 방은 좁고 길쭉했지만, 옛 주인의 이야기부터 그 집에 관련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재미있어하는 스테파니의 모습에서 집이 가진 시간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어. 문화재로 지정된 것들에는 펜스를 치고 그 밖의 거리에는 신축한 건물들만 즐비한 서울의 모습과는 다르잖아. 새로운 규모와 용도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무조건 기존의 건물을 부수고 신축하기보다는 기존의 건물을 최대한 활용해 용도를 잘 나누고, 필요한 부분들은 고쳐 쓰는 방법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가 되지 않았나 싶어.


  우리나라에도 최근 들어 리모델링을 통해 과거의 모습을 많이 남기면서도 현대적인 공간으로 바꾸어 화제가 되는 곳이 많지만, 대부분 카페와 같은 상업공간인 경우가 많고 요즘 유행하는 멋스러운 분위기를 내기 위해 조금은 억지스럽게 꾸민 느낌도 들거든.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모습들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에 자연스럽게 다가왔어. 유행에 휘둘리지 않는,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분위기를 잘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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