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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보련 Apr 13. 2021

3,280미터, 20분, 그리고 1만원

<첼로를 사랑하는 목수 - 목공04>

  맨 처음 터를 잡았던 공방 근처의 동네 짜장면집 점심시간. 그저 후루루룩 짜장면을 흡입하는 소리만 들리는 홀 안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진다. 회색 교복 차림의 남학생 둘, 먼 길을 달려왔는지 숨이 가쁘고 이마에 땀도 삐질삐질 난다.

  

“짜장면 두 개, 탕수육 하나요. 빨리요.”


2,000원 짜리 짜장면, 돈 못 버는 목수가 점심을 때우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정말 다급하게 외친다. 양파와 단무지를 가져다주시는 아주머니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번진다. 나는 처음 보지만 아주머니에게는 아주 익숙한 풍경인 듯하다. 공방이 있는 곳은 꽤나 묘한 동네다. 인천이기는 하지만 사방이 산, 밭, 논 등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섬과 같다. 인천시청과 그리 먼 거리가 아니지만 외부로 이어지는 좁은 길 하나에 버스 다섯 대 정도가 나룻배 역할을 한다. 


  이 동네에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짜장면집이 하나 있다. 간판에 ‘중화요리’라고 쓰여 있지만 짜장면집이라 불러야 하는 이유는 바로 짜장면이 이 집의 주력상품이기 때문이다. 한 그릇에 2,000원.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싼 가격이다. 게다가 탕수육 작은 것 한 접시에 6,000원. 고등학생 둘이 만원에 짜장면과 탕수육을 즐길 수 있다.


  이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도 역시 섬과 같다. 논과 밭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있다. 학교 앞에 흔한 문방구와 분식집도 없다. 버스도 흔하지 않아 자전거로 다니는 학생들도 많다. 그런 학교의 점심시간. 급식이 싫었나 보다. 도시락이나 빵도 당기지 않았나 보다.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학생 둘이 냅다 뛰기 시작한다. 체육시간에 오래달리기를 하라면 꼬리로 쳐지기 일쑤이지만 이때만큼은 전속력으로 달린다. 정확히 1,640미터의 거리를 10분 만에 주파한다.


학생들의 학교 앞 길. 여기서부터 3.2km를 냅다 뛰었다가 점심시간 끝나는 종이 끝날 무렵에 돌아온다.


  고소하면서도 짭조름한 짜장면의 향과 맛, 기름에 갓 튀겨낸 돼지고기 위에 부어진 새콤한 소스. 견디기 어려운 유혹인 것은 틀림없다. 왕복 20분을 투자해 3킬로미터 이상의 거리를 숨 가쁘게 달려야 하더라도 그 투자가 아깝지 않을 듯하다. 어른들은 그 정성으로 그 시간에 공부를 한 자라도 더 하라고 하겠지만 학창시절의 좋은 추억거리로 남을 만한 일이다. 어른이 돼서 최고급 중화요리 집에 가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어도 이 맛은 절대로 안 날 것이다.


  평생직장이 정해지게 되면서 인천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이사를 하다 보니 붙박이장이 쓸모없게 됐다. 나무 칩을 압축해서 만든 것이니 버리면 그만인데 아깝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다. 이것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주변의 목공방을 알아보게 됐다. 인테리어를 하는 목수의 공방 한 구석에서 작업을 하다가 어찌어찌하다보니 그 공방을 인수하게 됐다. 뜻이 같은 사람 둘을 찾아 셋이서 같이 공방을 운영하며 기계도 사 모으고 나무도 쟁여놓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하게 된 공방, 그러나 머지않아 혼자 남게 되었다. 한 분은 이사를, 한 분은 직장 은퇴와 동시에 목공에서도 은퇴를 하게 된 것이다. 졸지에 공방장이 되었다. 주문도 없고, 수익도 없는 공방의 허울뿐인 사장. 가르쳐 줄 사람도 무거운 것을 함께 들어줄 사람도 없이 오롯이 홀앗이로 운영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되었다.


  아니 주문은 꽤 많았다. 스스로 주문을 하면 되니까. 때마침 다시 이사를 하게 되고 집안의 가구들이 세월의 흔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모두 바꾸기로 했다. 커다란 식탁과 벤치, 그리고 아일랜드 식탁을 만들었다. 책상, 좌탁, 책꽂이, TV장 등등 집에 있는 모든 가구들을 바꿨다. 틈틈이 본가와 처가의 주문도 받아서 꽤나 크고 많은 가구들도 만들었다. 주말과 방학 내내 작업해도 주문이 밀려 몇 개월씩 걸리기도 했다.


  사실 바보 같은 짓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뭐든 직접 만들면 쌀 거라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싼 나무로 대충 만들면 싸지만 좋은 나무로 잘 만들려면 비싸다. 거기에 장비 값과 매달 나가는 공방 월세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바보 같은 짓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도 ‘수금’이 안 된다. 집에서는 한 푼도 수금을 못했고 다른 데서는 겨우 나무 값 정도만 받았다.


  아직 빠진 것이 하나 더 있다. 공임이다. 배워가면서 하는 작업이니 기술도 부족하고, 장비도 부족하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했으면 훨씬 더 많은 이득이 있었을 듯하다. 가족들과 함께 했으면 더 많은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그저 단순노동의 일당으로 계산해도 재료비와 공임을 따져보면 한참 손해를 보는 장사다.


  손등으로 연신 땀을 훔치며 짜장면을 먹는 학생들을 보며 짧은 시간 동안 그 동안의 모든 일들이 활동사진처럼 스쳐간다. 마지막 남은 탕수육 한 점을 두고 젓가락 싸움을 하는 소리에 문득 현재로 돌아온다. 저 두 친구들이나 나나 다를 게 없다. 20분간 왕복 달리기를 하면서 만원을 쓰고 즐거워하는 저 친구들이나, 먼지와 소음 속에서 주말의 시간을 모두 소비하는 나나 다를게 뭔가.


  그릇을 핥은 듯이 싹싹 비운 학생들이 시계를 보더니 서두른다. 두 번 접은 세종대왕님 한 장을 계산대에 놓고는 냅다 달리기 시작한다. 그 뒤를 따라 일어서 신발을 찾는다. 먼지가 뽀얗게 쌓이고 여기저기 긁힌 작업화, 오일을 비롯한 각종 마감재로 얼룩진 바지가 눈에 들어온다. 계산대 옆의 거울을 보니 짜장면집 아주머니의 시선이 이해가 된다. 영락없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행색이다.


  2,000원으로 허기를 달랜 후 공방으로 가며 한참을 생각해 본다. 주중 일은 따로 있고 주말에는 목수로 사니 흔히 얘기하는 ‘투잡’인 듯하다. 그런데 직업이라면 돈을 벌어야 할 텐데 돈을 벌어본 경험이 별로 없다. 악착같이 하면 이 일로도 돈을 벌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행복하지가 않다. 무엇인가 고민하면서 만드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것을 돈 받고 팔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영 즐겁지가 않다.


  그래도 다행이다. 들이는 시간과 공임을 생각하지 않으면 공방의 수지는 그런대로 맞는다. 첼로를 하게 되면서 내가 쓰려고 만든 것들을 많은 분들이 좋아해 준다. 가족들과 집에서 회를 즐기기 위해서 만들기 시작한 도마나 이런저런 집안 소품들도 찾는 이가 종종 있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책상만큼은 잘 만들 자신이 있는데 주변에서 같이 공부하는 분들이 주문해서 그 분들의 ‘인생 책상’ 몇 개도 만들어 드렸다. 즐거운 마음으로 해도 공방 월세와 나무 값은 충당이 된다.


  시간과 공임도 그리 아깝지는 않다다. 새벽에 일어나 다른 일에 쫓기면서도 대신 디자인 프로그램을 열어놓고 설계를 할 때가 있다. 마치고 나면 눈은 침침한데 오히려 생기가 넘친다. 주말 그 시간에 공방에 있지 않았다면 하루 종일 방바닥을 등지고 지낼 듯하다. 어쩌다 생긴 공돈을 나무로 바꾸어 놓지 않았으면 술집 카드 전표에 사인을 하는 것으로 대신했을 듯하다.


  어느 날부터 학생들의 발길이 끊겼다. 짜장면집 주인도 궁금해 하시기에 공방 오는 길에 학교 앞을 유심히 살펴본다. 교문 앞 고기집이 짜장면집으로 바뀌었다. 그것도 간판에 ‘짜장면 한 그릇 2,500원’을 대문짝만하게 써 붙였다. 학생들은 잠시 20분 동안 3킬로미터 이상의 뜀박질과 500원을 놓고 저울질을 했을 듯하다. 더운 여름날의 땀내보다는 500원이 더 싸게 느껴졌는지 학생들의 발걸음이 교문 앞 짜장면집으로 향했던 것이다.


  취미로 목공을 하는 이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들의 적은 고급가구를 파는 업체나 최고 수준의 전업 목공방이 아니다. 재료, 디자인, 기술 등 어느 하나 따라갈 수 없으니 경쟁상대가 아니다. 이들의 최대 경쟁자는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디자인을 원목에 값싸게 적용한 ‘이○아’ 등의 회사다. 취미로 하는 것이니 디자인은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적당한 나무를 구하자니 이런 회사에서 쓰는 수준의 나무를 쓰게 된다. 기술이 떨어지니 만들고 나면 딱 이 수준의 만듦새가 된다. 


이케아, 아니 아이케이아. 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취미 목수들에게 저들은 큰 적이다.


  그런데 나무 값과 기타 재료비를 합치면 딱 이 가격이거나 좀 더 된다.  그 시간에 그 노력을 들여서 만든 것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고 돈은 돈대로 드니 사는 게 더 낫지 않으냐는 핀잔을 자주 듣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 시간과 노력은 억지로 하는 노동이 아닌 그 자체로 기쁨이다. 가구점에서 가구를 사면 돈이 빠져나갔다는 생각이 먼저 들지만 이렇게 만들어서 집에 가져다 놓으면 멋진 보물을 집안에 들였다는 생각이 든다. 더운 여름날 뜀박질을 하는 학생들도 같은 생각이었을 듯하다. 덥고 지치지만 뜀박질하는 그 과정 자체가 기쁨이었을 것이다.


  가을이 되니 짜장면집에 학생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500원의 가치와 뜀박질의 즐거움을 다시 느낀 것일까? 아니다. 2,500원짜리 짜장면집을 지나면서 보니 ‘세 놓음’이란 종이가 유리창에 덕지덕지 붙어 있다. 망한 짜장면집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묘한 기쁨이 솟아오른다. 이 짜장면집에 비유된 거대 가구회사가 망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이지만 땀내 나는 뜀박질과 먼지를 뒤집어쓰는 노동의 가치가 새삼 인정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위안을 해 보았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직업,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 있을 직업은 뭘까? 최초의 직업에 대한 설은 여럿이 있고 마지막 순간은 아직 맞이하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의식주’와 관련된 가장 기초적인 직업일 것이다. 집을 짓고 그 집을 채울 목수도 그 직업중의 하나일 것이다. 본업은 따로 있지만 이런 원초적인 일을 하는 기쁨은 크다. 온종일 땀과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을 하다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맥주 한잔 하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더운 날 뜀박질을 하며 만원의 행복을 누린 어린 친구들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목수 예수님, 공생애 이전의 예수님은 직업이 목수였다.


  집에 택배가 많이 온다. 나무, 톱날, 공구, 공예재료 등 좀 ‘이상한’ 택배들이다. 택배가 많이 온다고 잔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모두가 ‘생산재’라고 우겨본다. 써서 없애는 게 아니라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땀을 삐질거리며 5교시 교실에 앉아 있을 학생들도 땀 냄새가 단다는 선생님의 잔소리를 들을 듯하다. 하지만 부른 배에 쏟아지는 잠을 이기며 악착같이 공부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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