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보련 Apr 02. 2021

장부의 사랑

<첼로를 사랑하는 목수 -목공02>

  <가시나무>란 노래가 있다. 조성모, 자우림 등의 노래로 알고 있는 이도 있지만 본래 하덕규가 중심이 된 시인과 촌장이 부른 노래이다. 본래 듀오였으나 하덕규 혼자 남아 주로 활동을 하게 됐는데 이름은 듀오에게나 어울릴 이름을 여전히 쓰고 있어 헷갈리게 한다. 짧은 노래이지만 노랫말은 생각할 거리를 꽤나 많이 남겨 준다.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시인과 촌장의 앨범, 지금은 한 사람이 시인과 촌장을 겸하고 있다.


  노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본래 목공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랑 이야기로 흘러갔으니 이번에도 그리 해야겠다. 목공을 요약해서 정의하자면 나무를 자르고, 켜고, 깎아서 결합한 후 원하는 구조물로 만들어 내는 작업이다. 나뭇결의 직각 방향으로는 자른다고 하고 나뭇결과 같은 방향으로는 켠다고 하는데 모두 톱을 사용한다. 나무를 깎는 데는 대패, 끌, 칼 등을 사용한다. 이러한 과정은 누구나 알고 있고 여기에 쓰이는 연장도 다들 알고 있다.


  문제는 결합이다. 나무와 나무를 결합시켜 원하는 구조물을 만들어 내고 그것이 기능을 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은 작업이다. 뗏목을 만들 듯이 묶는 것은 제한된 용도로밖에 못 쓰니 나무와 나무가 아귀가 딱 맞도록 다른 방법을 고안하게 된다. 특히 나무와 나무가 각을 이루고 만날 때 이것을 결합시키는 여러 방법이 있다.


  망치로 못을 때려 박거나 나사못을 돌려 박는 것이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다. 못을 쓰면 두 부재가 결합되는 효과는 있지만 매우 약하다. 박을 때 잘못하면 나무가 쪼개지기도 하고, 결합을 시켜 놓더라도 나중에 쑥 빠지게 될 수도 있다. 나사는 이러한 단점을 어느 정도 보완해 준다. 못에 붙어 있는 날개가 섬유 속을 파고 들어가기 때문에 돌리지 않는 한 뺄 수 없다. 그런데 못이나 나사못은 그것이 가진 자체의 힘으로 버텨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쇠로 만들었지만 버틸 수 있는 힘의 한계는 분명히 있다.


  이때 풀칠을 하면 많은 도움이 된다. 아교든 본드든 결합면에 풀칠을 하면 그 힘만으로도 붙어 있을 수도 있고 못이나 나사못을 박으면 접합면에 가해지는 웬만한 충격에도 잘 버틸 수 있다. 사실 이렇게만 해도 필요한 만큼의 힘은 발휘하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상당수의 가구들이 본드를 바른 후 못질을 해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게 모양새가 별로다. 나무에 금속의 못이 박혀 있으니 이질감도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다른 방법이 개발되었다. 물론 나무와 나무 사이에 끼워 넣기 때문에 못 자국을 비롯해 어떠한 흔적도 남지 않는다. 첫 번째는 나무로 작은 봉을 만들어 끼우는 것으로서 ‘도웰(dowel), 목다보’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우리말로는 ‘목심’이라 한다. 6mm, 8mm, 10mm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게 생각보다 힘이 좋다. 결합면 양쪽에 구멍을 뚫어 목심을 끼워 접착하면 단단히 결합이 된다. 가느다란 나무가 무슨 힘이 있을까 싶지만 나무의 길이 방향은 질긴 빨대 다발이어서 웬만해서는 부러지지 않고 목봉은 물론 결합면도 풀칠이 돼 있으니 결합력이 꽤 좋다.


도웰(dowell) 혹은 목심, 둥글게 구멍을 파서 목심으로 결합하면 꽤나 단단하게 결합된다.


  두 번째는 이름도 귀여운 ‘비스켓’이다.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쓰려면 ‘비스킷’이라 써야 하지만 다들 이렇게 쓴다. 비스킷의 모양은 여러 종류인데 목공에서는 쓰는 비스킷은 타원형이다. 나무의 두 결합면에 직경이 작은 톱날을 돌리면 톱날 두께만 한 반달 모양이 생긴다. 양쪽에 같은 모양으로 생기니 이 사이에 풀칠을 하고 타원 모양의 비스켓을 끼워 넣어 결합하는 것이다. 나무를 압축해서 만든 이 비스켓은 풀을 머금으면 부풀어 올라서 홈을 꽉 채우며 양쪽 면을 단단하게 잡아준다.


비스켓(biscuit) 결합, 사이에 비스켓처럼 생긴 나무를 끼워 넣어 조립한다.


  비스켓만 해도 아주 훌륭한 공구인데 여기에 ‘도미노’라는 새로운 공구가 추가된다. 말 그대로 쓰러뜨리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그 도미노이다. 결합할 나무 사이에 끼우는 나무가 도미노처럼 생겼다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목심은 쉽게 구멍을 뚫어 결합할 수 있지만 원형이라 하나만 끼우면 빙빙 돌 수 있다. 비스켓은 납작한 타원이 끼워지니 돌지는 않지만 접합면이 비스켓의 직경만큼 돼야 해서 좁은 접합면에는 적용할 수 없다. 폭이 넓고 도톰하고 길이도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는 도미노는 이런 단점을 모두 극복한 획기적인 공구이다.

도미노(domino), 진짜 도미노처럼 생긴 나무를 사이에 끼워 넣어 조립한다. 가장 최신의 앞선 기술이다.


  요즘에도 이상에서 열거한 방법이 모두 쓰인다. 도미노는 조금 고가이기는 하지만 편리성과 내구성 때문에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의 방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다른 재료가 나무와 나무를 이어준다는 것이다. 풀칠이야 그렇다 쳐도 못, 나사못, 목심, 비스켓, 도미노 등 본래의 나무가 아닌 다른 무엇이 둘을 연결해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결합된 후에는 그것들의 힘으로 버티게 된다.


  사실 목공 본드가 좋아져서 이론적으로는 목공 본드만으로도 완벽하게 결합할 수 있다. 물론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결합면이 완벽히 일치돼야 한다. 틀어짐이 없는 평행한 두 면이 만나고 그 사이에 본드가 채워지면 결합된 두 면은 마치 한 면이었던 것처럼 결합된다. 본드를 만드는 회사에서는 이렇게 결합된 면이 나무 본래의 결합면보다 더 강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것을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입해 본다. 모두가 남이지만 하나로 결합되어야 할 관계들이 있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맺어지는 부모, 자식, 형제의 관계가 그렇다. 그리고 선택을 통해서 맺어지는 부부, 친구, 동료 등의 관계도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완벽하게 평행한 면이 뒤틀림 없이 맺어지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가능할까? 부모형제는 본래부터 잘 맞는 구석이 있고 안 맞더라도 끊을 수 없는 관계이지만 다른 관계는 그렇지 않다. 처음부터 딱 맞을 수도 없고 안 맞으면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는 관계이니 이러한 접착제만의 결합으로는 아무래도 미덥지가 않다.


  접합면의 밀착과 접착제만으로는 안 되니 못부터 도미노까지 갖가지가 개발되었는데 모두 두 나무 사이에 무엇인가가 끼어드는 방식이다. 나무의 결합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니 꼭 필요한 것이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에 적용하면 조금 슬프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의 힘이 아닌 다른 힘에 기대야 하니 그렇다. 돈, 권력, 명예 등등에 이끌려 맺게 된 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죽고 못 살아 결혼을 한 뒤 그 사랑이 식은 후는 자식 때문에 산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것도 그리 행복한 일은 아니다. 둘 사이의 사랑에 다른 무엇이 끼어들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는 않다.


  목수들은  이런 문제를 아주 오래전에 해결했다. '장부'가 그 해결책이다. 나무와 나무가 결합될 때 한쪽을 일정한 모양으로 만들고 다른 쪽에 그것이 딱 들어갈 수 있도록 홈을 파 준다. 한쪽 나무의 몸의 일부를 덜어 내어 촉을 만들고, 다른 족 나무도 몸의 일부를 파내어 홈을 만든다. 여기에 풀칠을 하여 결합시키면 웬만해서는 그 결합이 풀어지지 않는다. 온도나 습도에 의해 수축팽창이 일어나더라도 제 몸의 변화니 서로 그 변화를 충분히 수용해 준다. 오래전 초등학교에 있었던 투박한 의자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져 우리들의 기억만큼이나 오래오래 쓰일 수 있었다.


장부 결합, 서로의 살을 덜아내고 서로가 한 몸이 되어 결합된다.


  이 결합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기 몸의 일부를 덜어내어 다른 쪽에 맞춘다는 것이다. 끼울 나무는 여기저기 잘라내고 깎아내어 모양을 만들고, 그것을 끼워 맞출 나무는 그 모양에 맞게 끌로 파낸다. 그 이름도 음양의 이치에 맞게 끼울 나무는 ‘숫 장부'로 불리고 다른 하나는 ’ 암 장부‘라고 불린다. 둘 사이를 있는 쇠나 다른 나무가 아닌 자기 몸의 일부로 버티니 그 무엇보다도 큰 힘을 발휘한다. 잘라내고 깎아내야 하지만 서로가 딱 맞게 했으니 풀칠까지 하면 본래 하나였던 것처럼 된다.


  다시 노래 <가시나무>로 돌아가 본다. 이 노래의 가사 중 가슴속을 가장 강하게 파고드는 가사가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이다. 그렇다 보니 '당신의 쉴 자리가 없네'란 말을 하게 된다. 다들 평소에는 이러한 상태로 살아가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게 되면 이 가사를 떠올리게 된다. 내 속이든 상대방의 속이든 자신으로만 꽉 차 있으면 서로에게 쉴 자리가 없으니 그때서야 마음속의 한 구석을 덜어낸다. 그리고는 비로소 서로의 쉴 자리를 만들어 낸 후 평안을 얻는다.


  이러한 사랑법을 '장부'의 사랑법이라 이름을 붙여 본다. 덜어내고 파낸 후에 비로소 딱 맞아떨어지게 되는 장부 결합처럼 나를 덜어내어 상대방의 쉴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비로소 하나가 되는 그런 사랑법이라 정의를 해 본다. 못은 스스로 빠지는 경우가 많고, 나사못은 나무에 변형이 일어나면 그 힘을 잃는다. 목심, 비스켓, 도미노는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분명하다. 그리고 비싸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원시적인 결합, 톱과 끌만 있으면 가공이 가능한 결합인 장부는 일부러 부수지만 않으면 영원히 그 모습을 유지하면서 끝까지 함께 한다. 세월이 흘러 삭더라도, 어쩌다가 불에 던져져도 같이 스러진다.

이전 04화 나도 닳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