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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보련 Apr 07. 2021

식탁 예찬

<첼로를 사랑하는 목수 - 목공 03>

  밥이 아닌 빵이나 국수가 올라와 있어도 밥상이다. 공부할 책상 대용으로 쓰더라도 역시 밥상이다. 상이라면 바닥에 놓고 식구 대여섯 명이 둘러앉아 먹을 크기와 높이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의자에 앉아야 할 높이에 크고 넓은 것도 밥상이라고 한다. 밥은 본래 쌀로 지어낸 먹거리를 뜻하지만 우리의 말에서는 먹을 것 전체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그래서 음식물을 올려놓을 수 있는 상 모두를 밥상이라고 한다. 다른 용도로 쓰더라도, 생활습관이 바뀌어서 기다란 다리가 달린 커다란 식탁을 쓰더라도 여전히 밥상이다.


20세기 초의 주막 밥상, 무지막지한 양의 밥과 국을 보면 말 그대로 '밥상'이다.


  집에서 쓰는 가구 중에 ‘상(床)’이 붙는 것은 밥상과 책상이 있다. 평상도 있지만 넓은 안마당이 있는 집이라야 가능하니 도시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이 두 상 중에서 더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역시 밥상이다. 밥을 먹어야 책도 읽을 수 있으니 밥상이 먼저다. 급하면 밥상을 책상으로 쓰면 되는 이유도 있다. 그래서일까? 취미로 목공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큰 맘먹고 가장 먼저 도전하는 것이 밥상이다. 아니 생활습관이 바뀐 후에도 여전히 밥상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식탁’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명칭이 될 것이다.


식탁, 솜씨 좋은 목수가 아주 좋은 나무로 참 잘 만들었다.


  식탁의 효용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취미 목공인들이 가장 먼저 식탁에 도전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수없이 많은 종류의 가구 중에 가장 쉬운 축에 속하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화려하게 만들려면 한이 없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식탁은 넓은 판재에 적당한 높이의 다리만 붙이면 된다. 목수들이 어려워하는, 혹은 만들기 꺼리는 서랍이나 문짝이 없는 것이 바로 식탁이다. 물론 서랍을 붙일 수도 있지만 별 쓸모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문짝이 있는 식탁은 나중에 다시 도전하게 된다.


  만들기 쉬운 식탁이라고 하지만 넘어야 할 관문이 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다.’라고 우기는 광고에 기대서 말한다면 ‘흔들리는 것은 식탁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판에 다리만 연결하면 되는 것이긴 하지만 이것이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다. 두툼한 상판과 굵직한 다리가 있다고 가정하고 한 번 만들어 볼까? 그 과정을 통과해야 식탁에 대한 예찬을 할 수 있다.


  직각으로 만나야 하는 다리와 상판을 결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못을 쓰려면 상판 위에서 때려 박아야 하니 흉해서 안 된다. 상판 위아래에서 못을 치든 꺽쇠와 같은 보조도구를 쓰든 다리와 상판을 직접 연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리 만든 것은 식탁이 아니다. 몹시 흔들릴 뿐만 아니라 살짝 기대기만 해도 삐걱삐걱 밀리다가 결국은 쓰러진다. 왜 그럴까? 다리가 아무리 굵직하더라도 한계가 있으니 상판과 다리가 결합되는 면적이 딱 다리 마구리의 면적이기 때문이다. 이 면적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다리가 흔들리다가 빠질 수밖에 없다.


테이블의 에이프런,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흔들리지 않는 식탁의 핵심이다.


  당연히 목수들은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았다. 어떤 식탁이든 상판 아래를 보면 다리와 다리 사이에 폭 10cm 내외의 판재가 끼워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어로는 ‘에이프런(Apron)’이라 하고 가끔씩 ‘스커트(Skirt)’라 하기도 한다. 영어 ‘테이블’이 아닌 우리말 ‘식탁’에 적당한 이름이 있어야 하는데 그냥 영어를 가져다 쓴다. 예전에 많이 쓰던 소반의 이 부분은 ‘운각(雲脚)’이라 했다. 장식성을 더하기 위해 구름 모양의 곡선으로 깎은 것이 많다 보니 ‘구름다리’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개다리소반, 다리의 모양이 개의 다리와 같다고 해서 개다리소반이라 하는데 여기에도 극히 좁으나마 운각이 붙어 있다.


  이 에이프런은 두 가지 효과가 있다. 하나는 다리와 다리를 연결해 흔들리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폭 10cm 내외의 판재가 다리와 만단다고 해서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지만 이 접합면 덕분에 다리가 끄덕대지 않는다. 넓게 접하면 접할수록 힘이 좋으나 에이프런을 한없이 넓게 할 수는 없다. 그리 하면 의자에 앉은 사람의 허벅지에 닿으니 아치형으로 만들어 앉을 공간을 확보해 주되 결합면을 넓히기도 한다. 다리의 기댈 언덕이 되어 준다는 것, 다리가 흔들리고자 하나 흔들리지 못하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에이프런이다.


  다른 하나는 상판과 결합면을 충분히 만들어주는 것이다. 다리와 상판이 만나는 면적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다리 전체에 네 방향으로 에이프런을 대 주면 에이프런의 면이 상판과 만나게 된다. 다리는 물론 에이프런과 상판을 결합시키면 다리와 상판이 튼튼하게 결합이 된다. 그리고 상판과 에이프런이 결합되면 상판이 쳐지는 것도 방지된다. 넓지 않은 에이프런이지만 다리와 다리, 그리고 상부와 하부가 서로 견고히 결합돼서 안정감 있는 테이블로 바꿔준다.


  이런 결합을 더 확실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에이프런이 다리 사이에 파고들도록 장부 결합을 하는 것이다. 이 책의 <장부의 사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에이프런과 다리가 장부 결합이 되면 말할 수 없이 튼튼하다. 여기에 에이프런이 만나는 네 모서리에 보조재를 대서 다리와 에이프런을 다시 짱짱하게 결합한다. 상판이 크고 무겁다면 에이프런 사이에 갈빗대를 대서 상판이 쳐지는 것을 방지해 준다. 이런 모든 부분들이 다시 상판과 결합되니 서로가 서로를 꽉 잡아서 ‘흔들리지 않는 식탁’이 완성된다.


  그래도 한 고비가 더 남았다. 상판과 다리가 튼튼하게 고정이 됐다고 하더라도 다리가 바닥과 안정적으로 만나지 않으면 여전히 흔들리는 식탁이 된다. 이 문제는 집을 지을 때 바닥공사를 한 미장이와 목수가 협력을 해야 한다. 미장이가 바닥을 평평하게 잘 마감했다면 그다음은 목수의 몫이다. 다리 넷을 똑같은 길이로 재단을 해서 상판에 붙이면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다리가 상판 및 바닥과 완벽하게 직각으로 만나야 끄떡대지 않는다. 그러려면 상판과 다리, 다리와 에이프런 이 모든 게 직각으로 만나야 한다. 조립하는 과정 내내 ‘직각! 직각!’을 외쳐야 하는 이유이다.


  초보 목수에게는 힘들더라도 가구 중 쉬운 편에 속하는 식탁을 굳이 예찬해야 할 무엇이 있을까? 목수의 빼어난 솜씨 때문에 아니라 구조 때문에 그렇다. 에이프런 가공을 할 때마다 곁에 있는 가족을 비롯한 든든한 후원군들이 생각난다. 수직으로 짓누르는 하중은 얼마든지 버텨내는 식탁 다리처럼 이를 악물면 제게 주어진 몫은 감당할 수 있다. 그런데 옆에서 전해 오는 힘에 삐걱대는 다리처럼 어디선가 예상치 못한 충격이 오면 휘청댈 때가 있다. 그때마다 에이프런처럼 주위의 누군가가 붙들어줘서 잘 버티곤 했다. 나를 덜어내고 장부가 들어갈 자리까지 마련하면 더 튼튼해지기도 했다.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은 아니다. 다리와 에이프런이 직각으로 잘 결합되면 큰 힘이 생긴다. 이것이 상판과 결합되면 또 큰 힘이 된다. 가로와 세로로 더 많이 결합이 되면 될수록 서로가 붙잡아주기 때문에 그 힘은 상상 이상이 된다. 흔들리지 않아야 식탁이 되듯이 흔들리지 않아야 세상에서 주어진 몫을 감당할 수 있는데 이들이 큰 힘이 된다. 물론 저 또한 이들에게 그런 힘이 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일정한 길이가 직각으로 정확히 결합되어야 하는 다리도 그렇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다리를 만들 수 있는 쉬운 방법이 하나 있다. 다리를 셋으로 만들면 기울기는 하더라도 끄떡대지는 않는다. 그런데 다리를 셋으로 만들려면 상판도 세모로 만드는 것이 좋다. 밥상머리에 마주 앉아야 정이 느껴질 텐데 이리하면 마주 앉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왕이면 다리가 둘씩 짝이 맞아야 할 텐데 다리가 셋이면 각각이 외톨이가 되거나 둘 중의 하나가 외톨이가 되는 듯하다. 네 개의 다리가 흔들리지 않게 결합이 되어 있으면 평온한 가족이나 정겨운 친지와 같은 느낌이 든다.


다리 셋이 달린 솥, 솥에 다리를 달 경우 이처럼 셋을 단다. 다리 셋은 기울기는 해도 흔들리지는 않는다.


  식탁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니 예찬을 받을 만하다. 밥을 먹고 나면 치워야 하는 밥상과 달리 식탁은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밥을 먹고 치우면 책상이 될 수도 있고 작업대가 될 수도 있다. 밥때가 아니면 각자의 방으로, 소파로 흩어지기 마련인데 모두가 둘러앉을 수 있는 식탁이 있으면 각자 다른 일을 하더라도 같이 모여 있을 수 있다.


  식구 수에 비해 집이 좁아 고민이 많은 가족에게 근사한 식탁을 만들어 선물한 적이 있다. 좁은 주방의 꽤 넓은 부분을 차지할 듯해 걱정을 했지만 받은 분들이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니 늘 모일 수 있어 좋다고 한다. 식탁에 모이는 일이 잦으니 오히려 다른 공간이 더 넓어졌다고 말한다.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다. 저녁이 되면 모든 식구가 주방의 식탁이나 거실의 좌탁으로 모인다. 긴 저녁을 먹으면서 눈을 마주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좌탁이 좁고 바닥에 앉아야 해서 좀 불편하긴 해도 좁아서 더 옹기종기 모일 수 있으니 좋다. 밥상머리 교육이 아니라 밥상머리 대화가 길게 이어질 수 있으니 이만한 게 없다.


  집에 식탁이 있다면 위에서 말한 구조를 한 번 살펴보고 흔들리는지 이리저리 밀어보는 것도 좋다. 흔들리면 식탁이 아니다. 흔들리지 않는 조금 더 근사한 식탁으로 바꾸는 것도 좋겠다. 더 많은 가족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가 옹기종기 앉아서 붙들어 주면 흔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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