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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보련 Apr 02. 2021

나도 닳는다

<첼로를 사랑하는 목수 -목공01>

  본래 배우였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가끔씩 본업이 헷갈리는 이가 있다. 인도네시아와 스페인의 음식점 상무로, 혹은 시골이나 어촌의 홀아비로 가끔씩 TV에 나오는 그다. 그가 TV에서 하는 일도 괜찮아 보인다. 풍경 좋은 곳에 가서 보름 정도 식당을 하면서 즐기다 오는 일이다.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지만 한나절 장사만 하면 되니까. 또는 산골이나 바닷가에 가서 ‘삼시세끼’ 밥만 해 먹으면서 세월을 보내는 일이다. 남자끼리 힘들긴 하겠지만 일꾼과 멋진 손님들이 계속 오니 못할 것도 없다.


.식당 상무 혹은 외딴집 홀아비


  그런데 그의 출세작은 따로 있다. 바로 2004년에 방영되었던 <불새>가 그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를 버리고 떠난 이은주 씨와 함께 했던. 이것 말고 대사 한 마디 때문에 더 유명한 작품이 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란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한 2003년의 <다모>이다. 누군가 이렇게 징징댄다면 엄청 짜증이 나겠지만 멋진 그가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하면 누구의 마음에든 쿵 소리를 남길 듯하다. 멋진 배우, 그리고 가슴을 울리는 대사는 왠지 목공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나무를 가공하던 어느 날 그의 이 대사가 생각이 난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취미로 목공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집, 그리고 가까운 이들의 가구를 만들고 나면 더 이상 만들 것이 없다. 서투른 솜씨나마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들에게는 괜찮지만 돈을 받고 만들기에는 솜씨도 부족하고 미안한 맘도 들기 때문이다. 목공을 시작한 후 집안의 가구를 모두 바꾸고 난 뒤의 나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만들 것이 없어 고민하던 차에 배우고 있던 첼로에 눈이 간다. 현악기를 만드는 것은 특별히 ‘루시어(luthier)’라고 하는 이들의 전유물이니 악기 만드는 것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하니 악기는 절대 아니다.


  첼로 연주에 필요한 물품 중 목공의 영역에 들 만한 것이 꽤 있다. 첼로는 크기 때문에 다리 사이에 두고 연주하는데 첼로 몸통에서 기다란 핀을 뽑아 바닥에 꼽아 고정시켜야 한다. 연주홀 바닥은 나무로 되어 있으니 뾰족한 핀을 그대로 꽂으면 되지만 나무가 아닌 바닥이나 손상이 돼서는 안 되는 바닥에는 ‘엔드핀 스토퍼(endpin stopper)’라고 불리는 것을 쓴다. 이게 바닥면에서 움직이지 않아야 하고 첼로 엔드핀도 고정을 시킬 수 있어야 하니 여러 꽤 여러 종류가 있다. 이 엔드핀 스토퍼가 목공과 함께 목공예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첼로 엔드핀 스토퍼, T자처럼 생겨사 '티자'라고도 부른다.


  처음에는 그저 나무를 동그랗게 만든 뒤 엔드핀을 꽂을 구멍만 파냈다가 점점 발전시켜 나간다. 급기야 CNC라는 장비를 들이면서부터는 별의별 시도를 다 해보게 된다. CNC는 컴퓨터 수치제어를 뜻하는 Computer Numerical Control의 준말로서 컴퓨터를 이용해 원하는 형상으로 가공해 주는 기계이다. 원하는 모양으로 3D 모델링을 한 뒤 이 모양으로 만들 수 있도록 숫자로 된 명령을 뽑아 기계에 전달하면 기계는 그대로 만들어낸다. 1000분의 1미리 단위까지 제어할 수 있으니 꽤나 정밀하게 작업을 할 수 있다.


  값비싼 기계를 들였으니 갖은 기교를 다 부려 엔드핀 스토퍼를 설계한다. 그저 구멍 하나만 뚫어도 될 것을 좀 더 단단한 나무로 따로 깎아 본체의 구멍에 상감하는 이중구멍으로 설계한다. 이럴 경우 정밀한 가공이 필요하다. 나무를 파내고 다른 나무를 상감해야 하니 그 크기 조절이 중요하다. 인서트의 직경이 크거나 같으면 안 들어간다. 그렇다고 너무 작게 하면 헐거워서 빠진다. 그래서 찾아낸 최적의 방법이 인서트의 직경을 0.05mm 작게 깎는 것. 이렇게 양쪽을 깎으니 부드럽게 잘 들어가고 일부러 빼려고 하지 않는 한 안 빠진다. 기분이 째지게 좋다. 


나무와 나무의 만남, 헐겁거나 빡빡하다. 딱 맞춰줘도 그렇다. 세월이 흐르면 엇갈려 수축팽창을 거듭해 틀어진다. 사람 사이의 관계처럼......


  이제부터는 수십, 수백 개를 같은 방법으로 만들면 된다. 우직한 컴퓨터는 반복적인 작업을 아무런 불평 없이 잘 한다. CNC 기계도 전후좌우로 윙윙 소리를 내며 잘도 움직여 몇 시간에 걸쳐 큰 구멍이 있는 몸체 50개를 뚝딱 만들어낸다. 그리고 다음날 이 구멍에 상감할 또 다른 구멍을 단단한 나무로 역시 50개를 깎는다. 그리고는 기분 좋게 둘을 결합. 앗! 안 들어간다. 나중에 깎은 것일수록 더 안 들어간다. 망치로 두드리니 뭉개지기만 할 뿐 안 들어간다.


문제의 상감. 멋진데 어렵다.


  어찌 된 일일까? 잘 만들어진 기계이니 기계는 거짓말을 안 한다. 컴퓨터에서 뽑아낸 수치에 따라 상하좌우로 움직이니 기계 잘못은 아니다. 나무의 잘못도 아니다. 나무의 특성과 강도에 맞게 각각의 크기를 세밀하게 조정해 놨으니 문제 될 것은 없다. 온도와 습도의 차이가 크면 나무의 수축팽창 때문에 문제가 될 수는 있지만 그 이틀은 전형적인 맑은 가을날이었다. 모든 과정을 아무리 열심히 되짚어 봐도 오류를 찾을 수가 없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눈길이 한 곳에 머무른다. 엔드밀(end mill)이라고 불리는 공구. CNC의 모든 동작이 맨 마지막으로 집중되는 곳에 있는 공구이다. 드릴날인데 바닥까지 날이 있어서 회전하며 바닥과 옆을 동시에 깎아나가는 공구이다. 쇠도 깎아야 하는 공구이니 엄청 단단하다. 과거에는 고속도강 혹은 하이스강이라 불리는 재료로 만들었지만 요즘은 초경합금이라고 불리는 재료를 쓴다. 단단하고 질겨서 잘 안 부러지고 마모도 잘 안 된다. 결국 CNC는 이 공구가 1000분의 1미리 단위로 움직이며 나무를 깎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녀석의 꼴이 말이 아니다. 비싼 만큼 반짝이며 날카로운 날을 과시하던 녀석이었는데 왠지 광택이 죽어있다. 심지어 날 사이에 새카맣게 분진이 끼어 있고 손끝을 대 봐도 날카로운 날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공할 때 열을 많이 받아서 시꺼멓게 그을렸다. 무뎌진 날이 1분에 15,000번씩 돌아가며 나무와 접촉하니  열이 심하게 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날은 더 무뎌지고 열은 더 발생하고 분진은 더 끼는 악순환이 발생했던 것이다.


  단단한 쇠이지만 날이 무디면 무른 나무에도 밀려난다. 나무를 채 다 깎지 못하니 더 크게 나올 수밖에 없다. 날이 밀리니 몸체의 큰 구멍은 작게 가공되고 여기에 심을 또 다른 구멍의 외곽은 크게 가공된다. 그러니 맞을 리가 없다. 비싼 엔드밀을 교체해 주지 않은 탓이다. 게을러서 중간중간 체크하지 않은 탓이다. 허탈한 마음에 원망스럽게 엔드밀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엔드밀이 말을 한다.

"아프냐? 나도 닳는다."


  마음이 아프다. 비싼 나무로 만든 50세트가 죄다 못쓰게 됐으니 마음이 아프다. 이런 문제도 예상하지 못하고 잘난 척하며 한꺼번에 가공한 저의 무지가 아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도 닳는다’란 말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 아무리 초경합금이라지만, 아무리 강하고 질기다지만 너무 많이 부려먹었다. 날이 무뎌지다 못해 몸체가 닳기까지 했는데 그래도 또 부려먹은 것이다. 분당 15,000번씩 몇 시간을 돌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비명을 질렀을까?

  

  사실 마음이 아픈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나무와 공구는 다시 사면된다. 50개든 100개든 다시 가공하면 된다. 어차피 수명이 있는 공구이니 다음부터는 적당한 시점에 교체해 가며 쓰면 된다. 닳고 또 닳아 시커멓게 분진이 낀 공구에 부모님의 모습이 투영돼 아프다. 자라면서 속을 썩일 때마다 꾹꾹 눌러가며 참으시기만 하던 부모님이 떠오른다다. 일흔이 넘고 여든이 넘으면서 작아지고 굽어진 모습이 떠오른다. 많이도 닳았다. 모습뿐만이 아니다. 맘까지 약해지셨는지 늘 성처럼 굳건하던 과거의 모습이 아니다.


  일요일 아침에 공방에 나오면서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린다. 늘 오가는 안부인사 뒤에 어디 가냐고 물으셔서 공방에 간다고 하니 정해진 스토리가 이어진다. ‘위험하다 하지 마라, 조심해라, 마스크 쓰고 장갑 껴라, 불조심해라.......’ 틀린 말 하나도 없으니 그저 흘려들으면 될 텐데 한 소리 또 하면 참지 못하는 성질 때문에 불같이 화를 낸다. 그래야 잔소리가 끝나니 어쩔 수 없는 방법이긴 하다.


  불같이 화를 내더라도 내 진심은 아실 거라 스스로도 그렇게 위안을 삼는다. 그렇게 50년을 살아왔다. 설날에 뵌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며 가슴 한 곳이 휑해진다. 팔순이 넘은 아버지, 늘 끈덕진 잔병에 시름하시는 어머니. 내가 불같이 화를 낼 때마다 다 받아주셨지만 딱 한 마디 가슴에 담아두셨을 듯하다.

"나도 닳는다."


3년 후 나도 닳으면서 약아졌다. 서로의 궁합을 아니 딱 맞춘다. 합이 맞은 후에는 영원히 뒤틀리지 못하게 하거나 어느 한쪽이 뒤틀림을 따라가게 한다. 사람도 그럼 잘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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