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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보련 Apr 02. 2021

네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이기동몽(異器同夢)

<첼로는 사랑하는 목소 -음악01>

  음악을 들을 때 악기 하나로만 연주하는 독주곡을 들으면 날카로운 펜으로 쓴 글씨처럼 선명하게 귀에 들어온다. 반면에 몇 개의 악기가 어우러져 함께 연주하는 곡을 들으면 검은 먹으로 쓴 붓글씨가 연상된다. 철저하게 개인적인 느낌이니 정확한 것은 아니다. 독주곡은 악기 하나에 연주자 하나에만 집중하게 되니 가느다란 선으로 들리고, 여러 개의 악기가 있으면 각각 붓의 털 마냥 다른 소리를 만들어내니 그리 들리나 보다.


  ‘앙상블(ensemble)’이란 단어가 있다. 발음을 보면 영어 단어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는데 프랑스어다. 본래는 ‘함께, 동시에’라는 뜻이었는데 조금 바뀌어 ‘통일, 조화’ 등을 의미한다. 나아가 옷에 적용하면 서로 잘 어울리는 위아래 한 벌의 여성복이 된다. 음악에 적용하면 두 사람 이상이 하는 합창이나 합주를 뜻한다. 본래의 뜻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여러 가지 쓰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어떤 악기든 앙상블을 이룰 수 있는데 현악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역시 현악사중주이다. ‘콰르텟(Quartet)’이라고도 하는데 네 명이서 연주를 하니 이렇게 이름이 붙었다. 편성을 보면 바이올린 둘, 비올라 하나, 첼로 하나이다. 연주 실력이 가장 뛰어나고 리더십도 있는 이가 제1바이올린을 맡고 나머지 한 사람이 제2바이올린을 맡는다. 


현악 4중주, 이 움짤을 만든 이는 음악은 모르지만 조화는 잘 아는 이일 듯하다. 활 움직임이 저래서는 멋진 음악은 안 되지만 잘 맞아떨어질 듯하다.


  각각의 악기 분야에서 실력자들이 모여서 현악4중주단을 구성하지만 이들에 대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네 명의 면면을 모두 바이올린에 관련지은 것이 그것이다. 즉, 바이올린을 젤 잘한다고 으쓱해하는 한 사람, 자신도 그에 못지않다고 억울해하는 한 사람, 한때 바이올린을 하다가 비올라로 전향한 한 사람, 바이올린 소리가 싫어서 처음부터 첼로를 시작한 사람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웃자고 하는 소리이지만 전혀 틀린 것도 아니어서 그 속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현악4중주단, 다들 바이올린을 놓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


  사실 현악기의 꽃은 바이올린이다. 첼로를 좋아하는 분들은 억울하겠지만 악기 자체의 만듦새도 그렇고 연주나 연주곡 모두를 봐도 그렇다. 오늘날과 같은 현악기는 여러 장인들에 의해 발전되어 바이올린에서 그 원형이 완성되고 다른 악기에 영향을 미쳤다. 크기는 제일 작지만 크고 화려한 소리를 낸다. 오케스트라에서 중심이 되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이올린이어서 연주자가 가장 많기도 하다. 바이올린을 위한 연주곡도 아주 많아서 전문 연주자들의 레퍼토리를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첼로와 비할 바가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악기 중에 바이올린을 배우는 이들이 가장 많다. 작아서 휴대하기 좋고, 큰 악기에 비해서 값도 싼 것도 이유일 것이다. 악기는 일찍 시작할수록 좋은데 아이에게 첼로를 시키려면 부모는 비싼 악기를 사주는 것은 물론 올 적 갈 적 첼로를 직접 모시고 다니는 걸 감수해야 한다. 바이올린은 날렵하고 예쁜 케이스에 넣어 어깨에 메고 다닐 수 있지만 첼로는 지게꾼의 등짐보다 더 크고 무거운 걸 메고 다녀야 하는 것도 고역이다.


현악기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바이올린, 바이올린?, 큰 바이올린, 아주 큰 바이올린으로 보인다. 첼로나 더블베이스는 하드케이스를 메고 다니는 것이 엄청난 고역이다.


  비올라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가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바이올린, 좀 큰 바이올린, 더 큰 바이올린, 아주 큰 바이올린으로 보이니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비올라를 시작하는 사람도 드물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꾸리려 해서 비올라 파트를 채우기 어려워 바이올린이 대신하기도 한다. 따라서 여러 가지 이유로 바이올린에서 비올라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다.


  바이올린이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소리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조금 갈리는 편이다. 맑고도 높은 소리를 내는 이 악기를 잘못 연주하면 아주 거슬리는 깽깽이 소리가 난다. 부드럽고 잔잔한 소리를 원하는 사람들은 싫어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코 먹은 소리를 내며 애매하게 끼어있는 비올라에는 정이 잘 가지 않는다. 그래서 현악기는 좋아하되 바이올린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첼로에 쏠린다. 특히 가격, 크기, 무게 등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첼로를 강권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현악4중주단의 구성에 대한 우스갯소리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오케스트라의 수석도 콰르텟의 리더도 제1바이올린 주자이니 누구나 제1바이올린을 하고 싶어 한다. 그래도 네 부분으로 편성해야 하니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이 있어야 하는데 팀을 잘 짜지 않으면 이런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맞지 않는 조합에서 조화와 통일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저 서로 튀려고만 한다면 앙상블이란 말을 쓰기도 어려운 콩가루 중주단일 뿐이다.


  그런데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보면 콰르텟이 콩가루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를 알 수도 있다. 사실 이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다. 바이올린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높은 음자리표를 쓰지만 첼로는 낮은음자리표를, 비올라는 가온 음자리표를 쓴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한 이들은 이 음자리표가 모두 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피아노를 배우지 않은 채 늦은 나이에 첼로를 배우거나 겨우 익힌 낮은음자리표 중간에 갑자기 가온 음자리표가 나오면 머리를 쥐어뜯는다. 늦은 나이에 다른 언어를 배우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음역대의 악보들, 높은 음자리표에만 익숙한 이들에게는 다른 보표는 외국어처럼 보인다.


  서로 다른 음역대의 악기가 서로 다른 음색을 내며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앙상블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연주 실력도 있어야겠지만 서로가 조화를 이루어가려는 마음이 없으면 앙상블을 기대하기 어렵다. 자신의 소리보다 넷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으면 멋진 연주를 기대하기 어렵다. 다른 사람의 연주 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며 그에 맞춰가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서론이 꽤나 길었지만 역시 우리의 삶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분들을 ‘청각장애인’이라고 하면 언뜻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발음기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말을 못하는 것은 말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귀로 듣고 흉내를 내면서 배우는 것이 말인데 들을 수 없으니 할 수도 없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귀도 멀쩡한데 듣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아니 못 듣는 게 아니라 안 듣는 이들이다. 어쨌든 소리가 귀로 들어오지 않으니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도 엉터리 소리인 경우가 많다. 조화는 잊은 채 자신의 소리만 내기를 바라는 콰르텟의 연주자와 마찬가지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세대와 세대 사이에, 지역과 지역 사이에 이런 청각장애인들이 많다.


  여기 어리고 발랄한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있다. 그 반대편에 나이 지긋하고 중후한 첼로 연주자들이 있다. 그 사이에서 어디에 끼여야 하는지 두리번거리는 어중 띤 나이의 비올라 연주자들이 있다. 신세대들은 자신들이 제일인 양 재잘댄다. 쉰세대들은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라며 깽깽 대는 소리를 탓한다. 낀세대들은 ‘한때 나도 그랬지만’라고 말하면서도 ‘늙어도 저렇게는 안 될 거야’라며 양쪽 모두를 탓한다. 콩가루 콰르텟과 다를 바가 없다.


세대 간의 불협화음,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 여럿이 모여서 하는 대화는 시끄럽기도 하고 맥락이 잘 이어지지도 않는다. 그저 서로의 얘기를 크게 떠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유가 뭘까? 매너 없고, 완고하고, 고집이 센 ‘노땅’들이라 그럴까?  아니다. ‘들리지 않아서’가 꽤나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다. 귀가 어두워지니 남의 말을 잘 못 듣는다. 그러니 대화의 맥락이 이어지기 어렵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뼈와 살의 울림으로 귀에 전달되는 자신의 소리도 잘 안 들린다. 그러니 더 크게 말을 한다. 잘 이해가 안 된다면 이어폰을 끼고 있다가 갑자기 큰 소리를 내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경험을 떠올려 보면 된다.


  듣지 못하는 바이올린 네 대가 무대에서 연주를 한다면 선명한 펜글씨가 되기도, 부드러운 붓글씨가 되기도 어려울 듯하다. 그저 펜촉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거나 먹이 마른 붓처럼 갈라진 붓글씨만 남을 것이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아니라 ‘이기동몽(異器同夢)’을 꿈꿔본다. 어차피 같은 무대를 나눠 쓰는 처지이니 모두가 ‘동상’에 있다. 귀만 활짝 연다면 ‘이기’로도 ‘동몽’을, 아니 앙상블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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