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보련 Apr 02. 2021

다니엘 바렌보임을 위한 변명

<첼로를 사랑하는 목수 -음악03>

  피아노 연주자로서, 그리고 지휘자로서의 뛰어난 명성에도 불구하고 첼로를 사랑하는 모든 이의 공적이 하나 있다. 그의 이름은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태생도, 성장과정도, 성장 이후의 삶도 비범하지 않은 인물이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피아니스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러시아 국적의 유대인, 러시아를 떠나 아르헨티나를 거쳐 다시 이스라엘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떠돌며 지냈다.


  바렌보임은 170센티미터가 채 되지 않는 자그마한 체구이지만 또랑또랑한 눈망울의 사랑스런 연주자이다. 그러나 역시 외모보다는 뛰어난 연주 실력으로 인정을 받는다. 15세에 미국 무대에서 피아니스트로 데뷔하여 극찬을 받았으며 20세에 지휘를 시작하여 역시 비범함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아직 어린 나이의 유태인 연주자이자 지휘자의 미래가 탄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소년 다니엘, 똘망똘망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쨔유! 중국인들은 응원할 때 '짜유(加油)'라고 외친다. 직역하면 기름을 더하라는 뜻이지만 응원에서는 '힘내라'하는 뜻이다. 바렌보임의 삶의 여정에서 '짜유'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기는데 바로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e)와의 만남이다. 스물네 살 바렌보임과 갓 스무 살의 뒤 프레는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르게 된다. 늘 밝고 쾌활한 성격의 뒤 프레는 무대에만 서면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휘하며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아직 미완이었던 바렌보임은 뒤 프레의 명성에는 미치치 못했다.


자클린과 다니엘,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 둘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뒤 프레를 아끼는 이들은 안타까워하기도 했지만 바렌보임의 반주에 뒤 프레의 연주가 더욱 빛을 발하리라 믿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둘은 진정으로 사랑하며 여러 무대에 같이 서서 멋진 연주를 들려준다. 세상 모든 이들이 부러워하는 아름다운 음악가 부부였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다들 아시다시피 뒤프레는 20대 중반부터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불치병을 앓기 시작한다. 손과 발부터 시작해 근육이 서서히 굳어가는 병이다. 마지막에는 심장의 근육마저도 굳어져 심장이 피를 공급하지 못해 세상을 뜨는 병이다. 발병 후 뒤 프레의 연주를 들어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손발을 쓸 수 없는 병 때문에 인류는 최고의 첼리스트를 잃게 된다.


당당한 자세의 자클린, 첼로를 잡은 그녀의 모습은 늘 이렇듯 당당하다. 병마에 시달리기 전까지는


  그런데 동정과 분노를 몇 배로 증폭시키는 일들이 이후에 벌어지기 시작한다. '죽일 놈' 바렌보임이 바람을 피기 시작한 것이다. 80년대 초반부터 바렌보임은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와 내연관계를 맺게 된다. 두 아들까지 낳고 공공연하게 살다가 뒤 프레가 사망한 그 이듬해에 정식으로 재혼을 한다. 정말 '나쁜 남자'다. 모두가 사랑하는 뒤 프레의 남편이기 때문에 더 미워진다. 병든 아내를 두고 이랬다는 것 때문에 분노하게 된다. 그 분노의 크기만큼 뒤 프레가 불쌍해진다.


  바렌보임이 나쁜 남자인 것은 틀림없다. 바렌보임 스스로도 그리 떳떳하게 살지 못했다. 그저 뒤 프레의 남편이었다는 사실이 잊히기를 바라며 살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조강지처'란 말이 굳건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한국에서의 바렌보임은 피아니스트나 지휘자가 아닌 뒤 프레의 '나쁜 남자'이다.


  그런데 최근에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뒤 프레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꼭꼭 싸매 두었던 편지가 발견되었다. 부치지 않은 편지이니 세상에 알려질 수 없었다. 물론 바렌보임도 받아보지 못한 편지다. 무슨 내용일까?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이 미어진다. 긴 편지를 다 옮길 수 없으니 짤막한 몇 구절만 실어 본다.     


"다니엘, 사랑에 빠지세요. 내가 아니어도 좋아요. 사랑은 당신 음악의 샘입니다......."


"연주 여행에 나를 데리고 갈 생각 말아요. 나는 그랜드 피아노보다 무거워요. 차라리 피아노를 업고 가요......."


"미국 카네기홀에서의 연주 녹음 들었어요. 사랑에 빠졌죠? 내 말이 맞죠? 우리 눈빛이 마주쳤던 날 그 연주네요......."


"의사가 오래지 않아 숨이 멎을 거래요. 하지만 당신의 호흡은 거칠어야 해요. 두 아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곧 가요. 그때 내 곁에 없어도 좋아요. 묘지에 꽃을 꽂지도 마세요. 나는 당신을 보냈고, 나도 곧 가요. 모두가 행복한 곳으로."


  차마 더 못 옮기겠다.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이 미어진다. 그런데 문득 뒤끝이 서늘해진다. 바렌보임은 이 편지를 읽었던 것일까? 편지를 보면 뒤 프레는 절대로 말로는 하지 않았을 것 듯하다. 그러나 바렌보임은 뒤 프레의 눈빛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뒤 말로는 하지 않아도 뒤 프레의 마음이 워낙 간절해 바렌보임에게 전해졌을지도 모른다.


  편지를 통해 뒤 프레의 진심을 읽었을지라도 바렌보임이 용서가 되지는 않는다. 뒤 프레의 말대로 사랑이 바렌보임의 음악의 샘이었다면 그 샘이 마르기까지 뒤 프레를 지켰어야 했을 것이다. 그랜드 피아노보다 뒤 프레가 더 무겁다면 지고 연주 여행을 떠나기보다는 그 곁에 머물러야 했을 것이다. 뒤 프레의 진심이 이런 걸 알았다면 끝까지 사랑을 지켜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나. 누군가 말려주길 바랬는데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맞다. 오늘은 바보들의 날인 4월 1일이다. 너무 진지하게 거짓말을 늘어놓은 것 같아 걱정이 된다. 바렌보임의 편을 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가 첼로를 사랑하는 목수가 아니라면 이 둘의 이야기는 세상에 흔한 사랑이야기로 치부하고 말았을 것이다. 아니면 그저 흔한 나쁜 남자 이야기로 여기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뒤 프레에 대한 편파적 사랑 때문에 바렌보임을 미워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엉터리 이야기를 지어낸 이유가 있긴 하다. 뒤 프레에 관한 이야기에서 바렌보임을 아예 지우고 싶다. 바렌보임과 관계없이 뒤 프레의 연주는 최고다. 굳이 바렌보임에 대한 증오를 보태지 않더라도 뒤 프레의 연주는 감동에 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뒤 프레를 버림받은 연민의 덩어리로 만들지 않더라도 우리들은 결코 뒤 프레를 버릴 일이 없기 때문이다.


뒤 프레의 엘가 첼로 협주곡 1악장 연주

자클린 연주, 다니엘 지휘, 둘이 같이 나오는 사진이 많은데 할 수 있다면 다니엘은 지워 버리고 싶어 진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란 영화 대사는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카피로 답이 되어 버린 상황이다.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가 납득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만 바렌보임을 지워야 하지 않을까? 뒤 프레의 삶에서 바렌보임을 지우고 나면 뒤 프레가 연주하는 엘가의 첼로 협주곡 첫마디는 사자의 포효처럼 들린다. 뒤 프레의 연주에서 바렌보임의 그림자를 지우면 그녀가 연주하는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 시작 부분은 듣는 이의 숨을 멎게 할 만큼 힘 있게 터져 나온다. 이렇게 오롯이 뒤 프레와 뒤 프레의 연주만 사랑하고 싶다.     

이전 11화 아버님의 유산, 그리고 참 죽이는 이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