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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Oct 22. 2022

내설악 봉정암에서

세 번 가면 소원 하나를 이룬다는데

 기온이 뚝 떨어진 지난주 설악산 봉정암에 다녀왔다. 2018년 가을 오세암을 다녀온 것이 계기가 되어 이듬해 봉정암을 처음 오른 후 이번이 세 번째가 된다. 봉정암까지는 백담사에서 10.9km나 가야 하는 먼 길이라 쉽게 엄두를 낼 일은 아니었는데 그때만 해도 봉정암에서 하룻밤을 지낼 수가 있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5시간의 고된 산행길이었지만 고행 끝에 오른 봉정암은 주변의 그 수려한 풍광과 함께 오래도록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 감동 때문이었을까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다음 해에도 다시 와볼 궁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2020년부터 코로나가 창궐하는 바람에 봉정암에서의 숙박이 중지되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그 멀고 험한 길을 당일치기로 다녀온다는 건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숙박 금지령’이 해제되기만을 기다렸다. 설악산 단풍 소식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10월이 되었지만 상황이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별 수 없이 그해는 그렇게 보내고 말았다. 작년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자 아내와 나는 만용을 부리게 되었다. 주말을 이용하여 막내아들을 대동하고 당일 등 · 하산을 강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여행 당일의 비올 확률이 70%였다. 왕복 20km가 넘는 산행에 비까지 내린다면 그건 보통 무모한 시도가 아니었다. 나이를 생각하라는 가족들의 만류도 있었지만 강행 여부를 고민한 끝에 내가 밀어붙여 새벽 3시에 집을 나섰다. 용대리에서 백담사행 첫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백담사를 기점으로 왕복 산행 10시간 남짓을 고려하면 오후 5시쯤에는 다시 용대리로 돌아와야 했다.      



한마디로 그해 산행은 무모한 것이었다. 많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게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비에 젖은 바위길이 미끄러워 체력 소모는 더 심했다. 12시쯤 봉정암에 도착해서 1시간을 머문 후 하산했다. 경사가 70도는 넘을 ‘해탈고개’에서는 엉덩방아를 찧어 하마터면 큰 사고를 당할 뻔 하기도 했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그 후 한동안 후유증이 있었다. 백담사에 도착한 건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구토가 날 지경이었다. 이것으로 봉정암 여정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속초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집으로 오는 자동차 안에서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봉정암에 세 번 가면 소원 하나를 이룬다고 그러던데’. 그 말에 '어떻게 또 여길 오겠느냐'며 손사래를 칠 줄 알았던 아내가 ‘글쎄, 그럴 수 있을까?’ 하며 미련을 보이는 게 아닌가! 이번 여행은 그 ‘세 번’이라는 주술(?)에 걸려 강행한 것이었다. 다행히 얼마 전부터 봉정암 숙박이 가능해진 것도 한몫을 했다. 처음에는 9월 24일로 날자를 정했는데 태풍으로 유실된 도로를 복구하기 위해서 9월 30일까지 백담사행 버스 운행이 중단됨에 따라 10월 초로 연기를 했었다가, 당일 비 예보가 있어 다시 일정을  미룬 끝에 3번째 여행이 성사되었다. 작년에 날씨 때문에 겪은 고생을 생각하면 비까지 무릅쓰고 여행을 강행할 수는 없었다. 올해 설악산 단풍의 절정은 10월 20일 내외라 했으니 미루고 미룬 날자 덕분에 눈호강은 잘 한 셈이었다.     



이번으로 세 번째이고 또 지난 두 번의 여행기는 블로그에 적었으므로 새삼스레 풍경과 여정을 소개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미 제법 익숙한 길이기도 했고, 무거운 발걸음을 잊겠다는 생각에 산행 길 내내 나는 이런저런 공상과 상념으로 시간을 메꾸려고 했다. 앞에서도 적었듯이 이번 봉정암행은 ‘세 번째’라는 데 의미를 두었다. ‘세 번 오르면 소원 하나가 이루어진다’는 말을 누가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설마 세 번 오른다고 정말 소원이 이루어지기야 하겠는가. 그건 그만큼 험한 산길을 세 번씩이나 오른다는 것에 의탁한 ‘간절함’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세 번째 방문길을 작정한 내 간절함은 무엇일까? 바라는 것이야 어디 한두 개이겠는가. 앞으로 살아갈 날이 길지 않다 하더라도 소원이 어찌 없겠는가. 좋은 글을 쓰고 싶고, 남은 인생 아프지 않게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고, 눈먼 목돈도 좀 생겼으면·····. 꼽자고 들면 손가락이 모자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 봉정암 기도길에 마음속으로 가족 누군가를 위한 소원 하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당사자가 와야지 당신이 대신하겠다는 건가?’하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겠지만 그 또한 내 정성과 간절함이 대신할 수는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12시에 백담사를 출발해서 1시간 걸려 영시암에 도착했다. 준비해  김밥으로 점심을 대신한다. 이곳에서 오세암을 지나 봉정암에 이르기도 하고 수렴동 계곡 길을 지나 봉정암에 오를 수도 있다. 오세암을 지나 마등령에서 공룡능선을 타고 대청봉에 이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봉정암을 거쳐 대청봉에 오르는 코스가 일반적인  같다. 내설악에서도 수렴동 계곡은 수려하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수렴동水簾洞이라면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원숭이 무리들과 집단을 이루고 살던 곳인데 이곳에 어떤 사연으로 수렴동이라는 명칭이 붙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책에 그곳이 별천지 같은 곳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서유기』를 떠올리다 배낭에 넣어    권을 생각한다.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가는군요』라는 책인데, 한동안 제주 생활을 하다가 서울로 돌아온 장정일 작가가 제주에 거주하는 한영인 평론가와 주고받은 12편의 편지글을 모은 것이다. 며칠 전에 읽은 것인데 다시 한번 읽고 싶어서였다. 절을 찾아 산에 가는 사람이 책은  가져가느냐고 아내가 핀잔을 주었지만, 나는 정말 읽을 작정으로 넣은 것이다. 봉정암에서 숙박을 한다지만 사실 밤을 꼬박 새웠던 3  기억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밤새 불을  놓은 데다 들고 나는 사람들이 많아 거의 잠을   없었다. 그때의 경험으로 차라리 책이라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낫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책에는 여러 가지 흥미 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분의 독후감들이 많지만,  밖에도 투표와 민주주의  우리 정치에 관한 이야기, 한국인의 죄의식과 부끄러움에 관한 견해, <오징어 게임> K-POP 대한 분석  우리 사회와 삶과 문화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들이 많았다. 거주 공간이 온통 책으로 메꿔진 작가의 책에 관한 에피소드가 눈길을 끌었다. 책이 너무 많아 정작 필요할  해당 책을  시간씩 찾다가 결국 새로 구입을 하는 경우라든가, 읽은 후 버리기 위해  시간에 걸쳐 책의 내용을 베낀다든가, 그러다보니 버릴 책들만 열심히 읽는 아이러니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장정일 작가가 가진 책의 10분의 1 가지지 않은 나 같은 사람도 정작 필요한 책을 찾느라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 적도 있고, 밑줄   내용을 열심히 컴퓨터에 옮겨 적느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버리기위해서는 아니지만).     



왼편으로 웅장한 기암괴석의 용아龍牙장성을 바라보며 구곡담 계곡을 따라가다 이 구간 최대의 명소라 할 쌍룡 폭포에 이른다. 이런 풍경 앞에서는 제아무리 출중한 글재주를 지닌 사람들이라도 자신의 무능력을 한탄할 것 같다. 이제 봉정암까지 남은 길은 2km이다. 산길은 경사가 심해진다. 만산滿山이 피처럼 붉고 치자처럼 노랗게 물들어 탄성을 자아내게 하던 단풍들도 고도가 높아질수록 이미 갈색으로 메마른 낙엽이 되어 산길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있다. 머지않아 저 화려한 자태를 뽐내던 나무들도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한 뼈대만 남은 채 혹독한 추위와 모진 풍설을 견딘 후에야 새 봄을 맞이하겠지. 봉정암을 코앞에 두고 마지막 고비라고 할 '해탈 고개'에 이른다. 쇠줄을 잡고 천근 같이 무거운 발을 바닥을 다지듯 한 걸음 한 걸음 옮긴다. 해탈의 길이 어디 그리 만만하겠는가.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면 울울이 솟은 거대한 바위들이 수직으로 솟아 있다. 내가 지나온 길이 아득히 내려다보인다. 사자바위를 지나자 드디어 봉정암이다.

전에는 절 입구에 봉정암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보이지 않는다. 저만치 우람한 바위벽을 배경으로 전면이 통유리로 된 적멸보궁의 모습이 보인다. 해발 1244m. 이곳에서 대청봉까지가 2.5km, 1시간 30분 정도의 거리다.  


    

다음날 새벽 먼동이 틀 즈음 사리탑에 오른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설악의 풍경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이다. 지난 두 번은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씨여서 온전한 풍경을 보기 어려웠는데 이번에는 멀리 동해가 바라보일 만큼 쾌청한 날씨였다. 세 번을 오른 사람에게 설악이 베푼 자비라고 해야 할까? 아마 다시 이 풍경을 볼 기회는 없을 것이다. 이제 다시 5시간의 하산길이 남아 있다. 별것도 아닌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짧은 길이든 먼 길이든 도보로 가는 길은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을 수밖에 없다. 축지법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면 한 번에 두 걸음, 세 걸음을 걸을 수는 없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쌓여서,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거리를 줄여서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한다. 세 번째 봉정암 산행의 결론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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