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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기랜드 May 23. 2023

위대한 유산 (14)

말의 힘

하루종일 2am의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줄 수 있는 게 이 노래 밖에 없다~~~” 우리 딸은 그런 날 보고 도대체 그 노래가 누구 노래냐며 묻고 있지만 난 여전히 “수아야!! 줄 수 있는 게 이 노래 밖에 없다~~~” 하며 장난을 치고 있다. 나에겐 의미심장한 노랫말이다.


과연 나는 ‘다음세대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깊은 뜻이 담긴 의미와도 같다. 물려줄 재산이 있으면 좋을 것이고 물려줄 기술이 있으면 좋을 것이고 물려줄 자리가 있으면 좋을 것이고 물려줄 땅이나 건물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꼭 굳이 물려받지 않아도 본인의 피땀 흘린 노력으로 또는 대박의 운으로도 어쩌면 경험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물려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을 천천히 떠올려 보니 그건 ‘말의 힘’이었다. 언어가 주는 그 위력을 이미 알고 있기에 말은 그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어릴 적 나는 남매로 태어나 무엇이든지 잘하는 오빠를 바라보며 성장했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부모님은 언제나 오빠가 우선이었고 오빠는 공부도 잘했기에 칭찬도 받았지만 그의 비해 난 공부도 못하고 하는 짓도 시어머니를 닮았다며 내가 하는 모든 것에는 부정 서린 말뿐이었다.


학창 시절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 안돼!, 그런 거 하지 마! 할 줄도 모르면서 “라는 말이었다. 어쩌다 마음에 드는 예쁜 옷을 사면 엄마는 항상 ”넌 참 희한하고 이상한 것만 산다 “라고 말할 뿐 그 흔한 칭찬 한 마디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그런 소리만 듣고 자란 어린 시절의 나를 기억한다. 그래서 말이 주는 상처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 아픔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다.


대학교 시절 유아교육을 전공하면서 유아기의 필요한 중요한 애착과정들과 다양한 교육방법들 부모교육들을 배우며 난 다짐했었다. ‘내가 겪은 아픔은 절대 물려주지 않을 거야! 난 자식에게 좋은 엄마가 될 거야!‘라고 말이다. 어쩌면 나의 전공은 나의 딸을 잘 양육하기 위한 기초작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것만 물려주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이라 여긴다. 어떻게 하면 긍정적인 생각과 예쁜 말들을 물려줄 수 있을까? 결론은 내가 그런 엄마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언행과 생각을 그대로 흡수해 버리는 아이를 보며 그 표정마저도 나와 같다고 생각되면 지금의 내 모습과 내 말투와 내 생각들을 늘 점검하며 살아가야 한다.


하루는 딸아이가 거울을 보며 “엄마 나 못생긴 거 같아!”라고 말하길래 난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까 잠시 생각한 후 이렇게 답해줬다. “수아야 이 세상에 수아라는 사람은 딱 한 사람 밖에 없어. 넌 그만큼 특별해. 자세히 봐. 넌 못생긴 게 아니라 아름다운 거야. 내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으면 누가 나를 귀하게 여기겠니… 수아야. 나를 사랑하자!”라고 말이다. 그 말이 끝나자 딸아이는 아무 말 없이 나를 꼭 안았다. 나도 딸아이를 안으며 “사랑해”라고 답해주었다.


만약, 내가 어린 시절에 우리 엄마한테 이런 질문을 했다면 아마도 엄마는  ’네 아빠 닮아서 그렇지 뭐…’ 아니면 ‘시할머니 닮아서 그렇지 뭐…‘라고 답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우리 엄마는 미인이시다. 난 우리 엄마와는 다르게 답하려고 애쓴다. 같은 생각으로 살고 싶지 않아 애쓴다. 어쩌면 대화에 강박이 담겨 있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것만 물려주고 싶은 마음에서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친정엄마가 우리 집에 놀러 오셨는데 딸아이가 할머니에게 “할머니는 나 자신이 좋아?”라고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할머니는 나 자신이 다 싫어”라고 답했다. 그 말에 딸아이는 “싫어? 왜 싫어? 할머니”라고 말하니 할머니는 “그냥 싫어”라고 말했다. 그러자 딸아이는 “할머니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해! 그래야 행복하지! “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그래? 그런 거야? 그럼 할머니도 나를 사랑해야지… 행복하게.. “라고 답했다. 주방에서 요리를 하다가 두 사람의 대화를 흘려듣는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내 딸이 나와의 대화를 기억하고 할머니에게 전달해 주는 모습을 보며 ‘말의 힘’ 이렇게 중요하구나라고 느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말들이 많다. 예쁘다, 아름답다, 사랑스럽다, 멋지다, 귀엽다, 곱다, 어여쁘다, 힘내, 고마워, 감사해, 미안해, 존경해, 축하해, 잘한다, 훌륭해, 특별해, 수고했어…등등 정말 수없이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들이 많다. 그래서 나도 아이를 칭찬할 때면 ‘잘했어, 예쁘네’라는 말도 좋지만 되도록이면 좀 더 다양한 단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아이가 그림을 그렸다며 난 “색이 정말 다채롭다! “라고 표현해 주거나 ”오늘 그림은 신비롭다! 무슨 이야기가 있길래 그럴까? “라고 얘기해주기도 한다. 최대한 표현의 다양함을 표출하려고 한다. 그럼 아이는 다채롭다가 뭐냐고 묻고, 그 뜻을 서로 찾아보고 의미를 한번 더 익히는 교육으로도 연계가 된다. 나도 지식이 짧아서 언어의 한계가 있다. 그래서 단어의 뜻이 정확한지 한 번 더 확인하는 버릇도 생겼다.


딸아이는 예민한 기질을 가지고 있는 아이이다. 작은 소리에도 잠을 잘 깨고 불편하거나 불안하다 싶으면 손톱을 물어 뜯기도 한다. 아직도 집안에서 혼자 불을 켜고 화장실 가는 걸 무서워한다. 학교에서 단원평가가 있는 날이면 말 그대로 배운 것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시험 같은 것을 보는 것인데 10문제 중 2문제가 틀리면 틀린 개수로 하루종일 속상해하는 아이이다. 그런 아이에게 내가 혹시나 완벽함을 요구한다면 이 아이의 삶은 즐거움이 없는 매 순간 긴장하는 삶으로 스트레스가 심할게 분명하다. 그래서 난 딸아이에게 “수아야!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위로해 준다. 그래도 속상해하면 “어떻게 매번 백점을 맞니… 틀릴 줄도 알아야지.. 그래야 또 배우지!”라고 답해준다.


공부!! 중요하다. 그러나 살아보니 공부 잘하는 게 답은 아니다. 그래서 딸아이에게 ”공부는 엄마 아빠를 기분 좋게 해주려고 하는 게 아니야! 공부는 수아의 꿈을 위해서 하는 거야!”라고 말해준다. 부모는 그저 아이가 원하는 꿈을 찾기 위해 곁에서 도와주고 응원해 주는 정도의 역할이면 충분하다고도 본다.


현재 우리 딸의 꿈은 만화가이다. 이미 자기의 캐릭터가 있다. 이 아이는 ‘아리툰’이라는 작가이름도 지어 놓았다. 어찌나 강아지 캐릭터가 귀여운지 난 벌써부터 딸에게 “아리툰 작가님”이라고 불러주기도 한다. 무엇이든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담아 오늘도 난 딸아이와 대화를 한다.


나중에 딸아이가 커서 ‘엄마’라는 이름을 불렀을 때

“우리 엄마는 멋져!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오늘도 멋지게 살아야 하고 오늘도 아이와 사이좋게 지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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