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기랜드 May 23. 2023

시댁과 친정사이 (12)

거리두기

  부부로 살다 보면 시댁과 친정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는 스토리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댁과 친정은 되도록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한다. 특히 신혼일 때는 더더욱 말이다. 독립된 가정을 처음으로 만들어가는 시기에는 부부가 서로 맞춰가야 할 부분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시댁과 친정이 가깝게 살다 보면 독립의 의지가 줄어들고 자꾸 과거의 속해있던 집단의 의존도가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결혼은 했지만 여전히 부모 눈에는 어린아이들로 비쳐 무슨 일만 생기면 여기저기 온 집안이 들썩거리게 된다.


때론 알리고 싶지 않은 부부의 작은 일들까지도 속속들이 알게 되어 오히려 듣지 않아도 될 부모의 잔소리까지 듣게 되는 상황이 생긴다. 개인 사정으로 부모와 같이 살아야 하는 입장이라면 나의 개인공간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윗집 아랫집 구조는 괜찮지 않을까? 같은 옆단지는 괜찮지 않을까? 근처 동네는 괜찮지 않을까? 글쎄… 난 개인적인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 땐 그것도 비추천이다.


우리 친정엄마는 평택에 사시는데 친오빠가 결혼 후 엄마가 사는 뒤편 아파트로 신혼집을 얻게 되어 가깝게 살게 되었다. 물론 새언니의 부모님도 집이 평택이라 다들 가깝게 살게 된 것이다. 엄마의 입장이야 아들이 가깝게 사니 언제든지 얼굴 볼 수 있어서 좋다고 여겼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오빠의 가족이 자주 찾아오지 않자 불만이 생겼고 며느리 눈치 보여 아들집 마음대로 찾아가지도 못해 속상해하는 일들이 넘쳐났다. 또 손자가 생겼을 때는 손자 보고 싶은데 매일 볼 수가 없다며 하나부터 열까지 쌓여있는 불만들을 딸인 나한테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저 여전히 내 옆에 끼고 싶은 아들인데 그게 뜻대로 안 되니 화가 난 것이다.


불평불만을 들어주는 나는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하루는 듣다가 참지 못 참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이제 오빠는 엄마 아들 아니야! 며느리 남편이지! 자기 가족이 먼저인 거야! 그니깐 엄마도 그만 신경 써!”라고 말이다. 알고 보니 새언니의  친정엄마도 새언니네 반찬 해주느라 손자들 챙기느라 본인 생활이 없으시고 늘 딸 집을 방문하고 계셨었다. 결국 살림은 차렸으나 아직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지금은 친오빠가 대전으로 이직을 하게 되어 오빠네 가족들은 모두 대전으로 이사를 갔다. 그렇게 지낸 지 7년이 흐른 지금은 완벽한 독립된 가정이 되어 가까이 살 때보다 지금이 훨씬 사이가 좋아졌다. 안부의 전화만으로도 반가운 사이가 된 것이다. 거리를 두니 가끔 만나니 귀한 손님이 된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결혼시켰으면 더 이상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방식과 삶이 정답이니 이대로 따라야 한다고 설교할 필요도 없다. 자식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유전은 가지고 태어났지만 엄연히 다른 인격체이다. 그저 지혜로운 부모라면 자식을 통해 보상받으려 하지 말고 그들의 사고와 삶의 방식을 존중하며 다르게 살아감을 조용히 지켜봐야 한다.


우리 부부는 첫 시작부터 신혼집 자체가 시댁과 친정 모두 멀었기에 부모로부터 오는 싸움의 소재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우리 둘이 맞춰가며 살기도 바빴으니 말이다. 한 번은 정말 결혼한 지 며칠이 되지 않았을 때 어떤 문제를 결정할 일이 생겼는데 내가 남편에게 “우리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물었더니 남편은 고민을 잠시 하더니 “누나한테 물어볼까?”라고 말했었다. 그 순간 나는 무슨 이런 문제 하나 가지고 누나한테 물어보냐며 “당신 누나보이야! 아니.. 마마보이는 들어봤어도 누나보이는 처음 본다!”하면서 놀렸던 기억이 난다.


남편은 오 남매 중 막내아들이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둘째 누나네 집에서 함께 살아서 그랬는지 무슨 일만 생기면 누나들에게 전화하기 바빴다. 지금은 누나보이에서 아내보이로 바뀌게 되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누나들과의 전화통화는 끊임이 없다. 그냥 수다를 좋아하는 성향으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신혼을 지나 중년에 와서는 친정과 시댁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진다. 부모님들도 나이가 드시다 보니 이제는 자식들에게 의존하려는 마음이 커져 예전과는 다르게 더 잘 케어해 드려야 한다. 요즘 친정 엄마를 대하는 나만의 케어 방식은  바로 ‘살림정리’이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혼자 살림한 지 10년이 넘으셨는데 그동안 모은 살림살이가 어찌나 많은지 매번 친정에 갈 때마다 집이 좁다는 생각이 들어 쌓여있는 묵은 짐을 정리해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가로운 주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지금 내려갈 건데 엄마네 집 대청소 할 거야! 그러니깐 버릴 거 있으면 미리 모아놔!”라고 말이다. 엄마는 버릴게 뭐가 있냐며 내려와서 나보고 확인해 보라고 했다. 엄마 집에 도착한 나는 일단 집안을 쭉 둘러보았는데 한숨이 먼저 나오더라. 오늘 하루에 끝날 일이 아닌 게 눈에 보였다. 나는 엄마에게 오늘은 작은방 하나만 정리한다고 얘기한 뒤 본견적으로 물건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치워야 할 물건은 좁은 방을 차지하고 있던 옛날 자개 화장대였다. 먼지가 뽀얗게 쌓여 거울도 흐릿하게 보이고 화장대 뒤판은 부서져 있어서 낡을 대로 낡은 가구였다. 엄마에게 화장대를 버리자고 하니 엄마는 손님방에 거울하나 없으면 어떡하냐고 그냥 두라고 하길래 난 내가 손님인데 이 화장대 앞에서 얼굴 보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바닥에 앉아야 하는 화장대가 어찌나 불편한지 난 엄마집에 오면 항상 안방에 있는 의자식 화장대를 사용했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안 되겠다 싶어 난 엄마에게 극단적으로 말했다. “엄마! 이거 지금 정리 안 하면 엄마가 죽고 나면 내가 다 정리해야 해! 딸 힘들게 할 거야! 살아있을 때 정리하면서 살자!”라고 말이다. 엄마는 내 말에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니 말이 맞다! 내 딸 고생시키면 안 되지! 버리자 버려! “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실랑이만 하다가 또 미룰게 뻔해서 강하게 밀어붙인 것이다.


그렇게 엄마의 허락을 받고 남편과 함께 무거운 화장대를 들고 분리수거장에 갔다 버렸다. 버리면서 어찌나 속이 시원한지 하나도 아깝지가 않았다. 비워진 그 공간에는 큰 행거를 설치해 진짜 손님들이 오면 외투걸이로 사용할 수 있게 변신을 해 놓았다. 엄마는 작은방이 깔끔해진 것을 보더니 언제 나랑 싸웠냐 듯이 “ 야! 버리니깐 속 시원하다. 거기에 행거 놓으니깐 더 좋네! “라고 반응해 주었다.


엄마가 그러더라. 나이 드니깐 모든 게 귀찮아진다고 말이다. 물건을 버리는 것도 생각만 하지 막상 버리려고 하면 ’ 저게 다 돈인데..’하는 생각에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고 쓰지도 않고 쌓아만 둔다고 말이다. 이번일로 엄마는 매주 내가 오기만을 기다린다고 한다. 이번에는 또 뭘 버려줄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자기가 혼자 하기에는 힘도 없고 엄두도 안 난다고 말이다.


그 후로 몇 달에 걸쳐 시간이 날 때마다 엄마네 집을 찾아가 거실, 안방, 주방, 베란다까지 한 번에 한 공간씩 정리해 주었다. 정말 베란다는 창고 속의 창고여서 치울 때 진저리가 났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구간이었다. 여전히 정리할 때마다 투닥거리기는 했지만 결국은 오랜 시간에 걸쳐 다 버렸고 지금은 순찰정도만 한다. 또 쌓이면 버릴 자세로 말이다. 가끔은 엄마에게 제발 남이 버린 물건 깨끗하다고 탐난다고 주워 오지 좀 말라고 신신당부만 한다.


난 이렇게 해주는 것이 엄마의 삶을 가볍게 해주는 것으로 여겼다. 묵은 짐이 하나둘씩 나갈 때마다 엄마는 속상해하는 눈빛이 아니라 이제는 미련 없이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물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거리 두기를 실천하고 있다. 시댁살림은 말하지 않겠다. 넘사벽이다. 오 남매를 키웠던 공간이다. 내가 건드릴 수없는 영역이다. 그저 형님들이 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효도는 그런 거 같다. ‘기본만 잘하자!‘ 더 잘하려고 애쓰기보다 부모님의 생신이나 명절 그리고 기념일 정도만 잊지 말고 잘 챙겨드리자. 그것보다 난 더 잘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면 그 마음 변치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더 잘해드려도 나중에는 더 많이 바라게 되는 게 사람인지라 기본만 하는 효도가 서운하실 수는 있으나 살다 보면 그저 아무런 사건 없이 조용히 사는 집이 가장 큰 효도일 때가 온다. 특히 대가족일수록 말이다.


난 예쁨 받는 며느리를 선택하지 않았고 적당히 거리를 두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사는 며느리길을 선택했다. 이 삶은 장기전이다. 내가 편해야 집안도 편안하다. 약간의 거리 두기는 각자 가정의 틀을 헤치지 않고 예의를 지킬 수 있으며 서로의 삶을 간섭이 아닌 응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니 말이다.



이전 11화 부부의 세계 (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