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운 뒤, 어떻게 화해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을이 되지 않는 '사과의 기술'

서론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다툼은 사소한 사건과 오해가 쌓여서 발생합니다. 때문에, 상대방의 잘못 만큼이나 나의 잘못된 대응이 싸움을 키우게 된 경우가 아주 많아요. 그렇기에 관계 개선이나 재회를 위해서는 나의 서운함을 표현하는 것 못지않게, 상대방이 느꼈을 서운함을 존중하고 공감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저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는 합니다.

“이미 사과했는데, 또 사과하면 제가 지는 거 아닌가요?”

“제가 먼저 사과하면 상대방이 저를 우습게 보지는 않을까요?”


이러한 질문들 속에는 ‘사과 = 패배’라는 공식이 숨어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 때문에 상대방에게 허점을 보이거나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관계 주도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시는 것이겠지요.

사랑하는 사이에 자존심을 부리는 게 말이 되나? 하는 의문은 잠시 넣어두고, 이런 질문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먼저 사과하면 지는 것일까요?


1.png 이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미안해’의 진짜 정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우선 ‘미안해’의 진짜 뜻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쉽게 이해하기 위해 예시를 들어볼게요!


여러분은 남자친구와 함께 특별한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했어요. 데이트를 위한 계획도 마련해 두었고, 여러분은 약속된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지요. 하지만, 상대방에게 예상하지 못한 긴급한 업무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데이트를 취소하던가, 미뤄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지요. 이 문제를 상대방이 뒤늦게 여러분에게 알려주었고, 여러분과 상대방은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때, 상대방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A: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B: “갑자기 이렇게 돼서, 나만큼이나 너도 서운할 거야. 그렇지?”


위 두 가지 대답 중에, 진정성 있어 보이는 쪽은 어디인가요? 대부분은 B를 선택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하지요. B는 ‘미안해’라는 말을 하지 않았거든요.


A와 B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사과 여부가 아닙니다. 여러분을 이해하느냐의 여부이지요. 그래요. 사실 ‘미안해’의 진짜 정체는 ‘이해해’인 것입니다. 단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통찰하는 것이 아니라요.


그리고 이런 원리는 개인 간의 관계뿐 아니라 공적인 상황에서도 똑같이 적용돼요. 다음은 정석적인 사과문이라는 평가를 받는 메르스 사태 당시 작성된 이재용 회장의 사과문입니다.


저희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감염과 확산을 막지 못해 국민 여러분께 너무 큰 고통과 걱정을 끼쳐 드렸습니다. 머리 숙여 사죄합니다.
특히 메르스로 인해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과 유족분들 아직 치료 중이신 환자분들, 예기치 않은 격리조치로 불편을 겪으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 저의 아버님께서도 1년 넘게 병원에 누워 계십니다. 환자분들과 가족분들께서 겪으신 불안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습니다. ] 환자분들은 저희가 끝까지 책임지고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관계 당국과도 긴밀히 협조해 메르스 사태가 이른 시일 안에 완전히 해결되도록 모든 힘을 다하겠습니다. 저희는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신뢰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이 참담한 심정입니다. 책임을 통감합니다. 사태가 수습되는 대로 병원을 대대적으로 혁신하겠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철저히 조사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응급실을 포함한 진료 환경을 개선하고 부족했던 음압병실도 충분히 갖춰서 환자 분들께서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습니다. 저희는 앞으로 이런 감염 질환에 대처하기 위해 예방 활동과 함께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지만 의료진은 벌써 한 달 이상 밤낮없이 치료와 간호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메르스로 큰 고통을 겪고 계신 환자 분들의 조속한 쾌유를 기원하면서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명확한 책임 소재와 향후 대응에 관한 논의 등 훌륭하게 작성된 부분이 많지만, 이런 공적인 사과문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사과문의 제일 앞에 배치된 피해자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부분이지요. 이렇듯 사과를 하는 데에 아무리 정성을 들인다 하여도,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없는 사과는 결국, 변명이 되기 쉽습니다.


2.png 사실, '미안해'의 진짜 정체는 '이해해'인 것입니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어.

제대로 된 사과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사과를 해도 결국 우리가 을이 되는 것은 막을 수 없지 않을까요?

혹시 반려동물을 키우시나요?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들이 보내는 행동과 눈빛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판단하고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성립할까요? 지금 당장 우리가 슬퍼하거나 기뻐한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지도요! 하지만 동물들은 우리의 복잡한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내가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지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을 벗어나려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관계를 회복하려는 능동적인 시도입니다. 때문에, 내가 상대방을 이해해 보려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대화의 주도권, 나아가 관계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지요. 특히나, 상대방 또한 충분히 성숙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이해받았다, 존중받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므로, 여러분을 우습게 보려 할 가능성은 낮겠지요.

3.png 이 강아지는 여자를 '우습게' 볼까요?


그래도 내가 을이 될까 걱정이라면, 여러분의 솔직한 마음을 전달하며, 상대방에게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요구하거나, 여러분이 해줄 수 있는 보상안을 제시하면 됩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내가 갑자기 약속을 바꾸게 돼서 미안해. 너도 나만큼이나 당황스럽고 속상하겠지? 네 입장에서는 화가 날 수도 있겠지만, 데이트를 다음 주로 미뤄야 할 것 같아. 대신 그날엔 네가 가고 싶어 하던 장소에 데려다줄게!”


이런 말을 하는 여러분을 누구도 ‘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상대방을 이해하는 방법


좋아요! 지금까지 '미안해'의 진짜 정체는 '이해해'라는 것을 알았고, 이해한다는 말이 우리를 을로 끌어내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어요.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몇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어요!

상대방이 하는 말 들어보기

많은 경우, 상대방은 자신이 화가 나거나 서운한 이유를 직접 말해줍니다. “네가 __해서”와 같은 형태로 말이지요. 물론 이런 말을 듣게 되면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만, 이런 말들은 상대방의 기분을 이해하는 데 아주 좋은 힌트가 되어줍니다.

상대방의 시선에서 생각하기

하지만 까다로운 상대방이라면 오히려 감정을 숨기려 할 때도 있지요. 이럴 때는 내가 직접 답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요. 보통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라는 말을 들으면 객관적인 시선이나 제삼자의 시선에서 상대방을 생각하려 한단 말이지요. 이건 현재 갈등을 이해하는 데에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어요. 객관적으로 상대방의 잘못이 확실하다 하여도, 상대방이 느낀 서운함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건 6번 칼럼에서도 중요하게 언급한 부분이에요. 여러분은 상대방과 ‘대화’하는 중이지 ‘재판’을 하는 중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잘못을 묻는 것은 일단 서로의 감정이 해소되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아요!


직접 물어보기

만약 도저히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했더라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상대방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아래와 같은 템플릿을 활용하면 좋습니다.


“네가 지금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아. 괜찮다면 나의 어떤 행동이 너를 화나게 했는지 말해줄 수 있을까?”

“내 생각에 너는 ____했을 때, ____한 감정을 느꼈을 것 같아.”

“그러니까, 네가 하는 말은 네가 ____한 감정을 느꼈다는 거지?”


4.png



충분히 생각했다면, 사과하기.


여기까지 상대방을 이해해 보고 상대방의 감정을 알아내는 데에 성공했다면, 이제 사과할 차례입니다. 제대로 된 사과를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요소만 기억하면 됩니다!


상대방의 감정을 인정하기

상대방이 느꼈을 감정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수용과 존중의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그게 내 입장에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하여도 말이지요. 이유야 뭐가 되었든, 상대방의 감정은 실제 존재하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나였어도 그랬을 거야.’, ‘누구라도 그렇게 느꼈을 거야.’ 같은 말을 덧붙이면 상대방의 감정을 더욱 존중하는 것처럼 보일 거예요!


내 행동의 결과를 이해하기

또한,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 못지않게, 나의 행동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를 빠르게 인정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나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와 같은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일단 그 일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상대방이 어떠한 형태로든 불쾌함을 느낄만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도 할 말이 있는걸요?

네, 네. 이해해요. 앞서 언급했듯 관계에서 벌어진 다툼은 누구 하나의 잘못으로만 벌어지는 경우는 잘 없지요. 그래서 많은 경우, 여러분도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말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것도 아주 소중한 감정이지요.

하지만, 여러분이 상대방에게 사과를 한 다음에 표현하는 것과, 일단 표현하고 보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해요. 나의 소중한 감정을 꺼내기 이전에, 상대방의 소중한 감정을 먼저 어루만져 주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차이가 극적으로 달라지는 결말을 만들 수 있어요. 그다음에 표현해도 늦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속상함을 표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5번 칼럼 6번 칼럼을 함께 읽으시면 도움이 될 거예요!




결론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서요. ‘을’은 누가 먼저 사과했는가?로 결정되는 것은 아닐 거예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채, 상대방을 필사적으로 이기려고 드는 순간 진짜 ‘을’이 되어버립니다. 관계 주도권을 갖는 사람은 먼저 사과하고, 감정을 조율하며, 관계를 복원할 줄 아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이것은 ‘지는 법’이 아닌, ‘이기는 법’입니다.



한 줄 요약


‘미안해’라는 말 대신 ‘이해해’라는 말로 표현하세요.



[싸움 4부작 시리즈]


1. "우리는 항상 같은 이유로 싸워요." - 요구의 기술

2. "서운하다고 하면 싸울까 봐 무서워요." - 감정 표현하기

3. "싸운 뒤, 어떻게 화해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사과의 기술 (현재 글)

4. "사소한 걸로 다투다가 크게 싸워요." - 다툼의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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