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어느 날, 한 내담자분께서 찾아오셨습니다. 2년 정도 연애를 해왔는데, 상대방과의 다툼이 계속되는 것이 지쳐서 저를 찾아오신 것이었죠. 서로 다투고 난 이후에 화해는 잘하는데, 그게 오래가지 못하고 다툼이 반복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사연을 들어보니 상대방이 몹시 게으른 편인데, 어쩌다가 한 번씩 데이트 약속에 30분씩 늦는다더군요.
내담자분께서 상대방에게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면 항상 상대방이 사과하는데, 이것이 반복되니까 더 이상 사과가 사과처럼 들리지 않을 지경이라고 합니다. 물론 상대방이 늦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상대방은 회사일로 인해 몹시 바쁜 상황이었거든요.
여러분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상대방과 대화를 시도했음에도 문제 해결에 실패하는 이런 상황이요. 상대방이 내담자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건 아마 아닐 겁니다. 상대방은 꾸준히 사과를 하기도 하고, 내담자와의 데이트 자체를 피하지는 않았거든요. 대개 이런 경우는 ‘요구’라는 과정에 어딘가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저는 내담자분께 물었습니다.
“상대방과 대화하면서 무엇을 요구했나요?”
그러자, 내담자분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딱히요. 그냥 다음부턴 늦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이런 비슷한 방식으로 대처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답니다.
요구가 중요한 이유
이 사연에서 내담자분은 상대방에게 ‘잘못된 요구’를 하셨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뒤에서 이야기하도록 할게요. 지금은 ‘잘못된 요구가 어떻게 관계를 망치는 걸까요?’에 대해 먼저 알아봅시다.
우리가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상황은 대부분 우리가 상대방으로부터 서운함이나 부족함을 느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마 우리 중 대다수는 상대방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려주고,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대방에게 요구하겠죠. 그렇게 되면 상대방은 일단 자신이 잘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의 요구를 수용해 줄 확률이 높아요. 우리의 잘못된 요구를요.
잘못 만들어진 요구는 지켜지기가 매우 매우 매우 힘들어요. 결국, 언젠가는 상대방이 우리의 요구를 어기게 되는 때가 오지요. 그런 상황이 오면 우리는 상대방에게 매우 실망할 거예요. 잘하겠다고 하더니, 같은 실수를 또 했잖아요?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우리는 아마도 이런 결론에 도달할 거예요.
“상대방은 역시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딱 그 정도로만 나를 사랑할 뿐이야.”
사실 우리의 요구가 잘못된 것인데도 말이죠. 그 다툼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지우고 올바른 요구를 했다면 잘 유지되었을 관계가 끝내 파국에 이르게 되지요. 결국, 한 가지 잘못된 요구 때문에 둘의 신뢰 관계는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잘못된 요구'로 인해 안 해도 될 다툼을 하는 경우는 굉장히 많아요.
올바른 요구란 무엇인가?
잘못된 요구가 관계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이해했다면, 우리는 이제 잘못된 요구를 멈춰야 해요. 그렇다면, 올바른 요구는 무엇일까요? 우선 ‘요구’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어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요구는 ‘나 사용법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것’이랍니다.
여러분, 새로운 스마트폰을 구매할 때, 스마트폰의 사용 설명서를 읽어보시나요? 아마 사용 설명서를 꼼꼼히 읽는 경우는 드물 거예요. 실제로 주부들의 약 80% 정도가, 가정용 세탁기의 기능을 30%만 활용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분명 실재하는 기능임에도 사용 설명서를 읽지 않아, 그런 기능이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사용 설명서가 없어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한 적이 있나요? 역시 아마도 없을 겁니다. 왜냐면 스마트폰이 동작하는 방식은 다 거기서 거기거든요. 굳이 사용 설명서를 읽지 않아도, 우리는 스마트폰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어요. 적응하는데 시간은 좀 필요하겠지만요.
하지만, 인간은 어떤가요? 모두가 다 고만고만하고 비슷한 인간인가요? 여기에 대해 ‘그렇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 볼게요. 여러분도 옆에 있는 그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특별하지 않은 사람’인가요?
사람은 저마다 특별한 가치관을 갖고 있고, 저마다의 생활 방식을 갖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연애는 하나하나가 특별한 관계인 것이지요. 때문에, 우리는 안정된 연애를 위해 서로의 ‘사용 설명서’를 익혀야 해요. 바로 ‘요구’를 통해서요! 그런 의미에서 ‘올바른 요구’란 ‘잘 작성된 사용 설명서’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지금 여러분의 스마트폰 사용 설명서를 제조사 홈페이지에서 검색해 보세요. 그리고 거기 적힌 내용을 살펴보세요. 그 설명서들은 어떻게 작성되어 있나요? 최대한 이해가 쉽도록 삽화도 활용하고, 설명도 매우 간결하고 직관적일 거예요. 우리가 상대방에게 하는 ‘요구’도 그래야만 합니다.
세상 어디에도 이런 사용 설명서는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올바르게 요구하는 방법.
상대방에게 올바르게 요구하는 방법은 다음의 4가지 원칙만 기억하면 됩니다. 천천히 알아볼까요?
1) 요구는 간결해야 한다.
우선 여러분들이 상대방에게 하는 요구는 간결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길고 복잡한 요구는 상대방이 여러분의 요구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뿐더러, 그러한 요구를 한 여러분조차도 여러분이 무슨 요구를 했는지 기억하기 어려울 거예요.
2) 요구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여러분의 요구는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합니다. ‘연락 좀 잘해줘’, ‘애정 표현 좀 잘해줘’ 같은 요구는 상대방이 뭘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합니다. 결국 ‘이 정도면 잘하는 거겠지?’라는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대부분은 상대방이 생각하는 ‘이 정도면’이 여러분이 바라는 ‘잘해줘’에 못 미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체적인 행동 방침이나 기준을 제시해 주어야 해요. 바로 이것처럼요.
“퇴근하고 나면 나랑 10분만 통화해 줘”
“1분이라도 늦어질 것 같다면, 왜 늦고 언제쯤 도착할지 카톡으로 보내줘”
3) 요구는 실행 가능해야 한다.
또한, 여러분이 상대방에게 하는 요구는 상대방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해요. 그리고 이런 조건을 갖춘 요구를 하려면 상대방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지요.
4) 요구는 지속 가능해야 한다.
만약, 여러분이 상대방에게 하는 요구가 1회성이 아니라면, (예를 들면 “내일 아침 8시에 모닝콜해줘”처럼요.) 여러분의 요구는 상대방이 지속해서 지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해요. ‘다음부턴 늦지 마’라는 요구는 언듯 보면 괜찮은 요구로 보일 수 있지만, 살면서 한 번도 늦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결국 상대방은 늦게 되는 일이 있을 거예요. 이런 요구는 신뢰를 무너뜨리는 독이 된답니다.
어때요, 정말 쉽죠?
그런데 상대방이 싫어하던데요?
물론 우리가 ‘올바른 요구’를 했다고 해서, 상대방이 언제나 우리의 요구를 받아주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가 상대방에게 하는 요구는 대부분 상대방에게 불리한 조건인 경우가 많거든요. 제가 다른 글에서 언급한 ‘사회적 교환 이론’에 의하면 상대방이 우리에게 어떠한 가치를 제공하는 만큼, 우리도 그만큼의 가치를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보상안 제시’에요.
올바른 요구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셨다면, 보상안 제시는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요구의 방향성만 상대방이 나에게 하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거든요. 따라서 올바른 보상안 제시 역시 올바른 요구를 위한 4원칙을 지킨다면 아주 훌륭한 보상안을 만들어서 제시할 수 있답니다.
사실 그보다 더 쉽고 빠르고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보상안은 ‘문제 삼지 않을게.’에요. 바로 이렇게요!
“만일 네가 1분이라도 늦을 것 같다면, 언제쯤 도착할 예정인지만 카톡으로 남겨줘. 그러면 네가 얼마를 늦던 문제 삼지 않을게.”
그렇다고 문제가 바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여러분이 올바른 요구를 하고, 올바른 보상안 제시를 해서 상대방이 그것을 수락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모든 과정을 잘 수행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바로 해결될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상대방은 그 순간에야 ‘고치겠다.’라고 할 수 있지만, 상대방도 상대방의 능력 한계치를 정확히 모르거든요. 그리고 어쩌면요. 고치겠다고 말하는 것조차 상대방의 방어기제일 수 있어요. 일단 싸움을 피하고 관계를 지키기 위해 못 지킬 약속을 덥석 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때문에,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가?를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실망할 수 있을 거예요. 대신, ‘상대방이 얼마나 실천하려 노력하는가?’를 살펴보세요. 상대방이 한두 번 정도는 여러분의 요구를 어길 수 있어요. 그때 바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돌리지 말고, 재협상을 시도하세요! 어렵다구요? 괜찮아요. 제가 쉽게 써먹을 수 있는 템플릿을 제공해 드릴게요!
“생각해 보니까, 내가 전에 말한 요구가 너에게는 꽤 힘든 일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럼 우리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 (또는, 너는 어떻게 하는 게 편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두 번 정도는 넘어가 줄 수 있을 거예요.
결론
우리는 연애를 하면서 서운함이나 속상함을 참는 순간이 참 많아요. ‘그냥 내가 한 번 참으면 아무 문제없겠지.’, ‘지금 이야기해 봤자 분위기만 깰 텐데.’ 같은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연애는 인간관계의 일부이고, 인간관계는 결국 ‘의사소통을 얼마나 잘하는가?’로 결정이 됩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오해가 쌓이게 되지요. 연애를 잘하는 방법은 ‘나의 생각을 얼마나 잘 말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랍니다.
그리고 오늘 알아본 ‘요구’는 그 핵심 내용 중 하나예요. (다른 핵심적인 내용들 '싸움 4부작 시리즈'를 참고하세요!) ‘요구’는 이기적인 것이 아니에요. 내 마음을 정확하게 전달해서 상대방이 나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책임감 있는 행동이지요. 더 많이 사랑받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요구’ 해야만 한다는 점을 기억해 두세요!
한 줄 요약
간결하고 구체적이며 지킬 수 있는 요구를 해야 합니다.
[싸움 4부작 시리즈]
1. "우리는 항상 같은 이유로 싸워요." - 요구의 기술 (현재 글)
2. "서운하다고 하면 싸울까 봐 무서워요." - 감정 표현하기
3. "싸운 뒤, 어떻게 화해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사과의 기술
4. "사소한 걸로 다투다가 크게 싸워요." - 다툼의 규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