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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Nov 18. 2022

벌브 틔우기

  난()키우다 보면 오래된 모촉이 본연의 수명을 다하여 잎이 다 떨어지고 나면 벌브만 남은 것을 보게 된다. 퇴촉(back bulb), 묵은 가구경(假球莖)으로 불리는 것들이다. 일차적인 수명이 다한 것이지만 이들을 분리시켜 관리하면 여기에서 다시 새촉이 올라온다. 퇴촉을 틔우기까지는 많게는 1년여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퇴촉을 분리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사람들이 많으나 퇴촉 틔우기를 통해 하나의 건실한 그루로 키우고 꽃까지 보는 애란인들이 의외로 많다. 자신의 힘으로 처음부터 싹을 받아 키우는 것이요, 이미 생명이 다한 퇴촉에서 새로운 생명을 소생시키는 것이기에 蘭을 배양함에 있어 만나는 아름다운 미학(美學)이라 할 수 있다.


  내가 관리하는  蘭분갈이를 할 때마다 몇 개씩의 퇴촉이 떨어져 나온다. 이것들을 그냥 버리기 아까워, 귀찮지만 수태(인조 이끼)에 정성스럽게 감싸서 몇 달 동안 관리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신아(新芽)가 빼꼼히 머리를 내밀고 나온다. 이때 느끼는 생명의 신비스러움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기쁨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작년 12월 나는 퇴촉을 심어놓은 난분(蘭盆) 2개와, 작년에 퇴촉 틔우기에 성공해 성촉이 되어가는 난분 2개를 회사 책상에 올려놓고 2달이 넘은 지금까지 관리를 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퇴촉은 움직일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것들을 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蘭에 대해서 문외한인 사람들은 퇴촉을 심어놓은 난분을 보고 “귀중한 난을 왜 다 죽였냐?”라고 말하며 성촉이 되어가는 난을 보며 “이것도 다 죽어간다!”며 나를 몰인정하고 무식한 사람으로 몰아붙이며 질책성 발언을 던지곤 한다.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 줄까 하다가 난해한 표정으로 그냥 빙그레 웃기만 할 때가 많다.

  난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들은 몇 달씩 죽어있는 듯한 난분을 관리하여 새 생명을 얻어낸 내 끈기와 정성에 찬사의 말을 한마디씩 던지고 간다. 남들이 모르는 것을 하는 사람들은 오해와 비난을 받기 쉽다. 그러나 그러한 오해가 풀리고 나면 오히려 나를 비난하던 사람들도 우호적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교도관의 마음이 퇴촉에서 새로운 생명을 움트게 하는 애란인의 마음이 아닐까?"


  오늘도 변함없이, 퇴촉을 심어놓은 난 분(蘭盆)을 보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느낌을 한 마디씩 말을 던지고 간다. 나는 그들의 말을 들으며 머지않아 빼꼼히 머리를 내밀고 나올 아름다운 신아(新芽)의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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