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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Nov 20. 2022

편작의 큰형님과 같은 교도관

중국 최고의 명의

 중국 전국시대의 의학자 "편작"은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전설적인 명의로 그의 두 형도 모두 훌륭한 의사였다고 한다.

  위나라의 임금이 편작에게 "그대 삼형제 중에 누가 가장 잘 치료하는가?" 라고 묻자

"큰형님은 환자가 아픔을 느끼기 전에 얼굴빛으로 그 환자에게 다가올 병을 알아 환자가 병이 나기도 전에 병의 원인을 제거하여 줍니다. 환자는 저의 큰 형님이 자신의 병을 치료해 주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저의 큰 형님이 명의로 소문이 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둘째 형님은 환자의 병세가 미미할 때 병을 알아보시고 치료에 들어가십니다. 환자들은 저의 둘째 형님이 자신의 큰 병을 낫게 해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저는 병이 커지고 환자가 고통 속에서 신음할 때, 비로소 그 병을 알아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교도관 생활을 하다 보면 힘든 근무지에 가서도 평범하게 근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쉬운 근무지에서도 힘들게 근무하는 사람들이 있다. 힘든 근무지에서 수월하게 근무하는 어느 직원은 문제 수용자들이 상담을 요청하면 언제든지 받아주는데 어느 날 그 직원과 같은 팀이 되어 근무하는데 문제 수용자가 극도로 흥분하여 상담을 요청하니 나오라고 하여 하고싶은 얘기를 해보라고 하더니 자신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수용자가 하는 얘기를 계속 듣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던 수용자가 잠잠해지면 "얘기 다 했냐? 더 할 얘기 있으면 해봐?"라고 물어보면 수용자는 "없습니다." 하고 거실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수용자가 들어간 후 내가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짓자 자신은 상담할 때 말을 거의 안 하고 상대가 하고 싶은 얘기 다할 때까지 들어주기만 한다며 그렇게만 해도 흥분했던 수용자가 누그러진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 나름의 노하우였다. 

  외국인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나는 외국인 수용자 간 사소한 다툼이 벌어졌을 때 곧바로 조사실에 수용하지 않고 한국어 의사소통이 가능한 같은 국적의 외국인 수용자에게 통역하도록 하여 충분히 얘기를 들어본 후 결정하는데 이때 통역하는 사람 선정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한번은 사고를 친 수용자와 사이가 안 좋은 수용자를 통역하게끔 했다고 두 수용자 간 싸움이 벌어질 뻔한 일도 있어 수용자들 사이에 신뢰가 두터운 나이 많은 수용자로 통역을 교체하였더니 흥분했던 수용자가 누그러져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 수용자에게 사과하여 화해를 시킨 적도 있다. 

  고집불통이고 이기적이며 공격적인 이집트 수용자가 다른 수용자가 다툼을 벌여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을 때 수용 초기에 사고를 많이 쳤으나 마음을 잡고 작업장에 출력하여 착실하게 생활하는 이집트 무기수에게 통역하도록 하였더니 단순히 통역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한국교도소에서 계속 사고를 치다 적응하게 된 과정을 설명해주며 고집부리면 조사수용되고 후회하게 되니 참고 잘 생활하자는 말을 하자 조사 수용될 뻔했던 이집트 수용자가 자신의 마음이 누그러져 자신도 잘못이 있다며 화해를 받아들여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일 없이 잘 생활하고 있다. 통역을 잘하는 수용자는 단순히 통역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일으킨 수용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들을 해 줄 수 있는 수용자였다.

  얼마 전 사동팀사무실에 갔더니 이집트 수용자와 다른 나라 수용자가 싸움을 해서 와 있는데 언어도 통하지 않는 데다 감정이 격해 있었다. 기동팀 후배 한 명이 이집트 통역 누구를 불러야 하냐? 고 내게 묻기에 전에 내가 통역을 시켰던 무기수용자를 추천해 주었다. 기동팀 후배들도 통역의 중요성을 알기에 내게 물어본 것이었다. 

  상당수의 문제수는 교도관이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런 말을 부정하는 교도관들이 많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 생각된다. 선배 교도관 중에 편작의 큰형님과 같은 분이 있었다. 강한 수용자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강성교도관이었는데 어느 날 선배 직원과 함께 사동팀사무실에서 야근을 하는데 자정이 넘은 시간에 수용자 한 명이 큰소리를 치며 난리를 쳐 팀사무실로 데려와 조사수용시킬 줄 알았는데 수용자에게 물 한잔을 건네며 부드럽게 말을 건네며 수용자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었다. 수용자는 거실로 돌아가 조용해졌고 선배답지 않은 행동에 의아해했는데 수용자를 여러번 겪어본 선배는 그 수용자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수용자들의 특성을 잘 알고 대처했던 것이다. 편작의 큰형님과 같은 분이었다. 

  전에 있던 큰 교도소에서는 조사수용되어 징벌위원회에 참석하는 수용자에게 모범적인 수용생활을 하는 무기수용자와의 만남을 주선하여 남은 수용 생활에 조언을 해 주도록 하였는데 매우 좋은 제도였다고 생각한다. 큰 사고를 예방하는 것은 기미가 보였을 때 누그러뜨리게 하는 편작의 큰 형님과 같은 분들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그분들의 존재를 잘 모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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