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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Jan 29. 2024

잃어버린 아내 20

  아내가 아침에 일어나면 밥부터 찾고 밥 먹고 나면 밖에 나가자고 해서 한 시간 정도 천변길을 천천히 드라이브하는데 아내가 모내기한 논에서 쑥쑥 자라는 벼, 배추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보며 탄성을 지르며 좋아한다. 천변 드라이브 끝에 일부러 장미가 예쁘게 피어있는 성당, 교회. 집을 보여주니 예쁘다는 표현을 한다.  

  오후 드라이브땐 멜론농장에 가보자고 해서 5월 말에나 나올 거라고 하니 그래도 가보자고 해서 수신 쪽으로 한 바퀴 돌고 왔다. 정신은 많이 좋아지는 것 같은데 약기운 때문인지 몸 상태는 갈수록 안 좋아진다. 혼자 걷기 힘들어하고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고 무릎도 구부러진 채 엉거주춤하다.


  드라이브 갔다 와서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고 나오는데 5층 할머니가 아내를 보고 "나 모르겠어?" 하고 물어보니 아내가 할머니를 자세히 쳐다보더니 알아보고 "예 알아요"라고 대답한다. 할머니가 아내의 손을 잡고 "착하고 순한 사람이 어쩌다 이렇게 됐어?" 하시며 눈물을 펑펑 쏟는다. "따님은 괜찮으세요?"라고 물어보니 넘어져서 이빨도 다 빠지고 엉망이라고 하신다. 아내를 보고 계속 우시는 할머니께 인사를 하고 아내를 데리고 올라가는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나왔다.


  5층 할아버지, 할머니는 10년 전에 우리 아파트에 이사 오셨는데 그때는 아내가 건강할 때라 나 혼자 운동삼아 동네를 돌아다니며 산책하곤 했는데 할아버지를 자주 만났고 많은 얘기를 나누곤 했다. 할머니는 안경을 꼈는데도 가까이 가야 사람을 알아볼 정도로 시력이 좋고  50대 딸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안 좋았는데 할머니와 딸 둘이서 시시때때로 동네를 걸어 다니곤 했다.

  할아버지는 70대 후반이셨는데 맹호부대로 월남전에 참전했던 국가유공자였다. 부산에서 남편과 잘 살던 딸이 몇 년 전부터 정신적으로 안 좋아졌다고 한다. "사위 녀석이 어찌나 딸을 두들겨 패는지 하도 때려서 내가 데리고 왔어!"라고 하신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딸을 캐어하면서 집안일을 다 하시는 것 같았다. 할머니와 딸이 집안에만 있으려 해서 틈만 나면 밖으로 내보내서 운동을 시키고 있다고 하시는데 마침 멀리서  할머니와 딸이 함께 걸어 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할머니와 딸이 손을 잡고 걸어 다니는 모습은 아침, 점심, 저녁 시시때때로 볼 수 있었다. 때로는 딸 혼자 뒤뚱뒤뚱 걸어 다니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혼자 산책을 다니시며 나만 보면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으시곤 했다. 자전거를 타고 전통시장에 가서 장을 봐오곤 하셨는데 나이보다 10살은 적게 보이는 매우 건강한 분이셨다.


  16개월 전 아내의 상태 극도로 안좋아 한 달여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코로나19가 절정에 달했던 상황에서 주변사람들과 접촉이 거의 없었다.  그때부터 할아버지의 모습을 못 봤던 것 같다. 그렇게 1년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옆라인에 사는 할아버지 둘째 딸이 냄비를 들고 5층으로 올라가기에 찌개 갔다 드리나 보네요?라고 인사를 건넨 후 "어르신 잘 계세요?"라고 물어보니 작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깜짝 놀라 그렇게 건강하시던 분이 어떻게 갑자기 돌아가셨나? 고 물어보니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시장에 갔다 와서 자전거를 세우시며 나를 보더니 씩 웃으며 큰소리로 "김치하고 볶아서 쐬주 한잔 걸치려고 시장에서 돼지고기 사 왔어"라고 말씀하시던 날이 할아버지를 본 마지막 날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딸의 건강이 급격하게 안 좋아졌고 집 밖에 나오지도 않는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내게 층격으로 와닿았다. 할아버지와 가깝게 지내던 나와 아내를 보는 할머니의 마음이 더 애틋했던 것 같다. 지하주차장에서 아내의 모습을 보고 소리 내어 슬프게 울던 할머니가 고맙기도 하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눈을 제대로 못 감으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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