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난 이야기

by 지와 사랑

내가 처음 난을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이었고 중국춘란 송매의 은은한 향에 매료되어 난 전문점 P사장님과 인연을 맺으면서부터였다.

P사장님은 틈날 때마다 놀러 오라며 내게 난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주며 중국춘란을 추천해 주었다.

한국춘란은 터무니없이 비싸고 일본 춘란과 같이 향이 없다며 은은한 향을 풍기는 중국춘란 명품은 가격도 저렴해 P사장님이 추천해 주는 대부귀, 용자, 소타매, 여호접 등 3촉 이상의 세력 좋은 것과 한란, 혜란, 죽백란, 풍란 등이 베란다에 가득 채워져 아내의 눈치를 보게 될 정도였다.


해마다 3월 초에 춘란 전시회가 열리는데 P사장님께 전시회에 안 가시냐고 물어보면 피식 웃으면서 사람들 없을 때 잠깐 들렀다 온다는 얘기를 하였다.

당시 한국춘란이 고가에 거래되던 시기였는데

사장님은 서울 난계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다 한국춘란 전시회에서 어떤 사람이 몇천만 원짜리 고가의 난에 대해서 물어보자 자기가 보기엔 일본춘란 같다는 말을 하여 발칵 뒤집혔고 몇십만 원대의 일본춘란을 한국춘란으로 속여 천만 원 넘는 가격으로 팔았다고 언론까지 되어 P사장님은 지방으로 내려오게 되었다고 한다.

해마다 꽃과 향기를 안겨주던 50여분의 세력 좋던 난들을 분촉 해서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어느 해부턴가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시들시들 촉수가 줄고 병도 들어오면서 난 화분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P사장이 주신 귀한 난 몇 개는 난을 전문으로 키우는 친구에게 주었다. 그 친구와 나는 난을 서로 나누는 사이였는데 내가 관리를 못하니 개체 수가 적은 난을 그 친구에게 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비교적 관리가 쉬운 부귀란(풍란)을 들여오기 시작했는데 종류별로 하나씩 들여온 부귀란이 50여분인데 아내 간병하면서 난 관리에 소홀해져 4년여 동안 분갈이도 안 하고 영양제도 안 주고 물만 주었더니 수태에 이끼가 잔뜩 끼고 뿌리 상태도 안 좋아 결단을 내려야겠는데 이 상태로는 지인들에게 나누어주지도 못할 것 같아 방치하고 있었다.


문득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풍랸분과 수태망, 수태를 주문했다. 1주일여 동안 틈틈이 분갈이를 하고 영양제를 샀다. 제대로 분갈이를 하고 영양제도 주어 좋은 상태로 신세 진 분들에게 나누어 주려한다.


분갈이를 하다 보니 뿌리 상태가 너무 안 좋았고 해마다 한 촉 이상씩은 늘어나야 하는 소엽풍란이 몇 년 동안 촉수를 늘리지 못하고 그대로인 것을 보고 4년 동안 물만 먹고도 살아준 난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내가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는 아무리 심란하고 바쁘더라도 할 일은 해야겠다. 중국춘란 송매나 부귀란 중 꽃대 달리고 세력 좋은 놈 하나만 들여와 난향을 맡아보고 싶다.

더 이상의 욕심은 부리지 말고 딱 그만큼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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