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기도하고 있다는 착각; 자기독백

경건한 우상숭배

by 거북이

나의 사랑하는 조카 웜우드에게


우리가 할 일은

인간 환자가 진정으로 기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데까지’ 막아 보는거다.

성인이 된 지금, 어린 시절의 유치한 기도대신

‘이제야말로 완전한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기도를 할 때야!’ 라고

환자의 마음을 부추기거나

막연하게 경건한 기분이 되게 유도하거라.


초보 악마인 너는 인간 환자가 기도할 때,

그가 진심으로 회개할까봐 겁이 나겠지.

하지만 전혀 두려워할 필요 없다.


그가 원수와 직접 대화하게 두느니,

그가 기도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니까.

인간의 이런 기도야 말로 우리를 승리로 이끄는 무기가 되어준단다.


인간이 육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인간은 자기가 동물이며,

따라서 자기 육체가 하는 일들이

영혼에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는 점을 종종 잊어 버린단다.


입술을 움직이며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육체의 자세를 인간의 눈에는

불필요하거나 가식적으로 보이게 하고

혹은 무릎이 아프다는 감각을 느끼게 하는 거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의 시선을 외부의 실체가 아닌

자신의 내부로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것이다.


이런 우리의 전략은

기도의 대상인 원수를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의 감각에만 집중하게 만들지.

다만 막연하게 경건한 감정과 기분을 만들어 내게끔 부추겨라


환자가 외부가 아닌 자기 마음속만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의지로만 기분과 감정을 만들어 보려고 애쓰게 해


환자가 원수의 사랑을 구하려 하거든

실제로 사랑을 구하며 행동하게 하는 대신

사랑의 감정을 혼자서 꾸며 내려고 애쓰게 하고,

용기를 구하려 하거든 마치 용기가 불끈 솟아나는 것처럼 느끼게 하고

용서를 구하려하거든 용서받은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지


환자는 이때

자신의 감정과 기분 상태를 살피느라

정작 원수에게 말을 걸거나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지.


그런 감정과 기분은

단지 그날의 컨디션이 좋으냐 나쁘냐,

피곤하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고.


기도한다고 하는 네 환자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인간들은 자기가 만든 원수의 이미지에 기도를 하지.

그것이 곧 원수의 실체와 속성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환자가 바로 그런 것들에 대고 기도하도록 부추겨야지.


보아라, 지금 인간 환자가 눈을 감고 무언가 간절히 느끼려고 애쓰고 있지 않느냐?

바로 지금 인간의 귀에 속삮여 주거라.

“뜨거운 감정이 느껴지지 않으면 네 기도는 가짜야.

가짜를 기도하는 너 역시 가짜야” 라고.


그가 평안함이나 경건한 기분을 느끼려고 애쓰며 노력할수록

그는 진정한 기도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인간 환자들은 자기가 생각하고 느끼는 원수만을 자기가 믿을 만한 신이라고 생각하지.

그래서 자기 생각과는 전혀 다른 모습과 형태와 상황이

자기 눈앞에 실제로 펼쳐 질 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하며 믿지 않으려 한다. ‘이게 그럴 리 없어!’ 라고 절규하면서.


실체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속에 자신이 만든 원수의 이미지를 그려놓고

그것에 기도하곤 한다.


침대위 십자가 그림, 화려한 천장화,

혹은 자신이 상상한 온화한 노인의 모습 같은 것들 말이다.

화자가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며 기도하게 해라.


그 그림 뒤 거대한 실재를 직면하는 대신,

단지 색칠된 종이와 자신만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환영과 대화하게 될 것이다.


실재와 대면하는 기도는 위험하지만

인간환자들이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속의 존재와 대화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단다.

인간 역시 직면하기를 원하지 않는단다.


이제 가장 고차원적인 전술을 알려주마.

인간환자가 기도를 시작할 대 기도의 목적에 집중하는 대신

‘기도하고 있는 경건한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어라.

‘오, 점점 내 기도가 깊어지고 있군’ 혹은

‘놀랍군, 내 말투가 지난번보다 더 겸손해 지고 있잖아.라고 자화자찬하게 만드는 거다.


환자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울에 빠져 있는 동안,

정작 그의 영혼은 원수에게서 등을 돌리게 된다.

감정이 뜨거워질수록 그는 더 겸손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독선적이고 자기 만족적인 인간이 되어갈 것이다.


너는 그가 거울 속의 자신과 대화하며 사랑에 빠지도록

거울을 깨끗하게 닦아주기만 하면 된단다.


환자는 오늘 아주 영적인 시간을 보냈다고 만족하며 잠자리에 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지.

그가 보낸 시간은 그저 자기자신과의 독백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가장 경건한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을 뿐임을.

계속 정진하여라, 나의 어린 악마여.


너를 아끼는 삼촌, 스크루테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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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거울은 아주 깨끗할 것 같습니다.

악마가 반질반질 하게 닦아 두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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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면하게 되면, 아마도 많은 것들이 변화할 것입니다.

그래서 직면하기 싫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변화하길 바란다고 입으로 말하면서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안 될 이유들을 이것저것 헤아리며 머뭇거립니다.


직면했을 때...

먼저는 부끄러움이 드러나고, 아플지도 모르겠습니다.

직면했을 때...

그동안 꿈꿔온, 내가 생각했던 그 안락함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직면했을 때...

실제로 사랑을, 용기를,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는

귀찮은 행동들을 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다만, 확실한 것은

‘모를 일’이라는 것 앞에 내가 서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단지 그 앞에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천천히라도 나아갈 것인지, 혹은 멈출 것인지.


나는 그 선택지에 귀를 기울입니다.


언젠가부터 나는 내 마음에 힘을 불러 일으켜주는 선택지의 말을 듣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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