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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베데스다의 예수님 묵상하기

by 민들레홀씨
출처 123RF Ai이미지생성기

과거를 마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변화에 대한 도전은

이내 표류하기 시작했다


과거를 들추어 내는 작업로 인해

밑바닥에 오랜시간 가라앉아있던 불순물들이

깨끗하게 보이던 물을

삽시간에 혼탁하게 만들어

다시 가라앉히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들쑤셔놓은 불순물들을 어떻게 하지

가시와 같이 뾰족한 것은 내마음을 찔러댔고

돌덩어리처럼 묵직한 것은 마음에 피멍을 만들었다

기억하기 싫은 기억의 조각들은

켜켜이 쌓여 곰팡이가 득진득진하게 엉겨붙은

덩어리가 되어 이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어

사라진 줄 알았지

나을 수 있을 것 같니

천만에

하며 나를 주저주저하게 만들었다


말그대로

한 걸음을 떼기가 어려웠다

과거를 마주하며 나의 현재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어렴풋이 자각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결방법이 절로 보이는 건 아니


햇빛에 널어 말려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해야할지

막막함이 또한번 밀려왔다





성경은 다양한 병자들 이야기로 가득하다

예수님의 기적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병자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단순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어쩌면 나또한 병자같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성경을 들여다보며

실마리를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출처 plan_korea네이버블로그

자비의 연못, 베데스다라는 세상


여기, 38년 동안 앓은 병자가 있다

앉은 뱅이였는지, 다른 병에 걸려 혈기가 말라 눕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타고난 병인지 세상을 살다 얻은 병인지 모르지만

38년 동안 병을 앓았다는 것만 나타나 있을 뿐

여하튼 그는 누워 있었다


소문에 천사가 들어가 물이 동한 후에

가장 먼저 그 물에 들어가면 무슨 병이든 낫는다 하여

38년 된 병자는 그 일에 여러번 시도하였던 듯하다


1등만 살아남는 지금의 세상과 다를 바 없는 베데스다, '자비'의 연못인 셈이다

언제 어디서 천사가 나타날지 모르기에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경쟁과 긴장이 가득한

질병의 시기나 종류, 경중에 상관없이

뭉뚱그려 일괄적으로 단 한 가지 처방만 존재하는

모 아니면 도 식의 자비없는 세상

거기에 그가 누워있다


그곳에 예수님이 오셨다

그리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구석에 누워있는

그를 찾아오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님의 질문도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키지만

병자의 대답도 참으로 생뚱맞아 보인다

지금 당장 낫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이래야 맞아보이는데 말이다

병자는 오랫동안 사람다운 대화를 못해봐서

대화하는 법을 잊어버렸던 것일까

낫고 싶냐고 묻는 물음에 왜 저렇게 대답을 했던 것일까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예수님이 이렇게 물으셨다면

병자는 어떻게 대답했을까


"네가 낫고자 하느냐,

아니면

연못에 가장 먼저 뛰어들기를 원하느냐?"


병이 낫기를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소문에 따라 연못에 1등으로 들어가기를 원하는 것이지

물으셨다면 병자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여러가지 인생의 문제들과 숙제들을 안고 살다보면

그 과정에서

이것이 과연 무얼 위해서 시작했었던 것인지

까마득하게 잊어버릴 때가 있다

지금 내가 이루고자 하는 어떤 목표도

이것을 이루고나면 끝나는 것인지

더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인지

헷갈리고 잊어버리고 살 때가 있기 마련이다


병자가 생각하기에

병이 낫는 방법은 오로지 못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것

그것 밖에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진 않았을까


그랬던 병자가

예수님의 질문을 들었을 찰나의 순간에

아니면 다소 엉뚱한 대답을 마쳤을 때

병자 스스로도 한참 잊고 있었던 자신의 진짜 목적을 떠올렸을까


[요5:6, 개역한글]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이 벌써 오랜줄 아시고


예수님은 병이 이미 오랜줄을 알고 계셨다

성경의 다른 병자들은 예수님을 찾아와 낫게 해달라고

부르짖었으나 여기의 병자는 베데스다로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도 그러지 못했다

희망을 잃고 그저 힘없이 누운 그를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알아보신 예수님이

먼저 찾아와 물으신 것이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자녀를 기르는 것, 그 답이 없는 일을

'잘'하고자가 아닌

그저 무리없이 하고자 하는 내가

성경을 펼쳐 들고난 이후

한 권을 책을 하나 더 펼쳤는데

그것은 <마더와이즈, 지혜>라는 책이었다

출석하는 교회에서 모임을 가지며

함께 책을 읽어나갔다


그 모임에서 비슷한 질문을 가진 엄마들과의 만남도

아주 건강하고 좋았지만

내가 가장 으뜸으로 꼽는 것은

이미 자녀를 키워본 경험을 가진 선배엄마들이었다

자녀들이 장성했으므로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었다

그 분들과의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하셨다

"자녀양육 잘하고 싶으시죠?"

이 질문을 받은 나는(나역시) 이렇게 대답했다

"하아, 권사님 육아 너무 힘들어요

이것도 챙겨야하죠 저것도 챙겨야하죠

끝이 없네요 정말 힘들어요"


나의 마음이 곧 강한 긍정이었던 것처럼

병자의 그 엉뚱한 대답이

곧 자신이 대답할 수 있는 가장 강한 긍정이라는 것을 예수님이 알아 주셨다



출처 카페Enjoy The Photo, 몽골 홉스골 호수에서

[요5:8, 개역한글]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예수님의 처방이었다


너무 힘들다는 징징거림을 듣고

예수님은 감정적인 공감이나 동조하지 않으신다

그저 일어나 걸어가라 하셨다

정말 담백하고 간단하고 명쾌한 처방을 해주셨다

일어나 걸어가라


우리 삶에도 예수님의 이러한 처방이

필요한 영역이 반드시 있다

힘들고 지친 영혼을 달래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지 말고 그저 일어나 걸어가야하는 때가 있다


병자가 원래 앉은뱅이 였는지 걷지 못하는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저 누워있었다

어쩌면 걸을 수 있었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실패감과 허무, 상실감에 주저앉아 버린 우리의 영혼과도 같은 병자가 아니었을까

그 모든 어려움과 실패감, 좌절을 딛고

그저 일어나 걸어갈 때 우리의 영혼이 살고 몸이 살고

병이 나을 줄로 믿는다


인간의 갖가지 처방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우리의, 나의 어려움, 나만의 '그' 어려움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일지라도

나에게 인생을 옭아맨 밧줄이 되어

병자로 살아오게 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걸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유독 그 어려움 앞에서만은

주저앉게되고 무기력하게 누워있게 되지는 않았는지


과거의 상처를 끌어안고

한 걸음도 지 못하는 나에게

예수님은 먼저 찾아오셔서

허리를 굽혀 내게 눈 맞추고 물어보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요5:2-9, 개역한글]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삼십 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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