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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영 Aug 09. 2024

아이와 책 읽기를 중단한 나의 이야기

첫 아이 태어나서 선물받은 전집이 있었다.

한 상자 가득 담아 보내온 새 책.

지금도 별다르지 않지만 전집은 엄두도 낼 수 없었던 당시에 첫 아이 출산을 축하하는 의미로 받은 책은 나에게 숨통을 트여주었고, 동화책이란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아이가 목을 가누기 시작하면서 

소파 구석 자리에 앉아서 무릎을 구부려서 발을 소파위에 올리면 

내 허벅지 위로 아이를 기대어 놓을 수 있었다.


한 손에는 딸랑이, 한 손에는 헝겊책.

요리조리 흔들어대고, 의성어 의태어를 연신 내뿜으며

우리아이 관심을 끌고 눈맞춤을 하려 무진장 애썼다.


얼마나 애썼는지, 첫 아이가 소리내어 웃은 그 날은 울었더랬다. 고마워서.


그렇게 책육아가 시작되었고, 매일 아침 팬더가 체조하는 책을 보면서 아이와 함께 체조를 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이 난다.

"판다체조 시작! 두 팔을 높이 올리고~ 쭉~~ 뻗으면~ 쭉~~~ 뻗으면"

"붕붕~"

얼마나 반복을 해댔는지, 어느정도 크니 "판다체조 시작~" 하면 내 말에 따라 체조를 척척해내어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았더랬다.


3살이 되면서, 동네 엄마들에게 물려 받은 여러가지 창작책들을 무서운 속도로 읽어주기 시작했다.

독서 최장시간 1시간 30분. 앉은 자리에서 1시간 30분을 읽었더랬다.

아이가 재미있어하니 읽어주는 나도 신이 났고,

첫 아이 돌 때쯤 동화구연가 자격증도 땄던터라 배운 기술 썩히지 말자 싶어 신명나게 읽어댔다.


하지만 나의 하루는 24시간. 나의 에너지는 100% 까지만 충전이 되었더랬다.

나의 하루가 40시간이라던가, 나의 에너지가 200% 까지 충전이 되었다면, 달랐을까?

책에 시간을 쓰는만큼 부족한 부분도 있었다.


책을 보는 시간에 세상을 보지 못했다.

아는만큼 보이는 알고, 책으로 배우고 세상에 나가면 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림은 그림일 뿐이다.


그림빵은 맛이 없고,

그림꽃은 향기가 없고,

그림강아지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래도 괜찮다. 빵, 꽃, 강아지 쯤이야 얼마든지 생상하게 보여줄 수 있으니.


그런데 책 수준이 높아진다. 난이도가 올라가고, 왠만한 책은 시시해지기 시작한다.

아이가 자극적인 책에 눈을 돌린다.

왠만한 동화책 캐릭터는 눈에 차지 않는다.

어린이 만화책, 어린이 잡지들을 골라오기 시작한다.


그 끝은 뭘까. 이렇게 읽다보면 교과서도 술술, 전공서적도 재미있게 읽을까?

책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머물고 있을까?

책을 꼭 읽어야만 하는걸까?

책이 없으면 배울 수 없을까?

책으로만 배워야하는 지식이 있을까?


그 답은 나도 모르겠다. 모르지만 아니라는 쎄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여전히 나는 교과서가 어렵고, 전공서적은 끝까지 다 읽을 수 없는 수준이다.

책은 늘 곁에 하지만, 책을 읽지 않은 사람보다 지혜롭지 않다.


책은 책일 뿐이다.

책에 내 아이를 걸지 않고, 책에 목숨걸지 않고.

책에 내 시간 다 받치지 않기로 했다.

책을 읽고 변하지 않는다면 읽지 않은 것과 뭐가 다르겠나.

나를 변화시켜주지 않을 잉크 묻은 종이를 색깔만 바꿔가며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까.


또 하나 내려놓으며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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