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민 대표 황재만은 현재 엘리베이터는 1994년 4월 아파트 입주와 동시에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무려 26년 7개월 동안 1층부터 16층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오르내린 것이다. 이제 엘리베이터는 안전이 의심될 만큼 노후화되었다.
"자그마치 30년입니다, 여러분! 30년이면 갓난아기도 늙는 시간이지 않습니까!"
그는 장기수선 충당금을 사용하여 엘리베이터를 새것으로 교체할 것을 제안했다.
매달 관리비에 포함되는 장기수선 충당금의 규모는 물론 그 쓰임 명세와 목적을 알지 못하는 70~80대 주민들은 공짜로 새 엘리베이터가 생긴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엘리베이터가 바뀌면 아파트 매매 가치도 올라갈 것이라는 대표의 말을 들으니 마음도 급해졌다. 서둘러 찬성에 동그라미를 쳤다. 당장 이 집을 팔아 다른 집으로 이사 갈 일은 없지만 언젠가는 죽어 자식에게 물려줄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아무튼, 언젠가 말이다. 늦어도 이번에 새로 바꾼 엘리베이터가 다시 낡기 전이지 않겠는가.
재건축 추진을 원하는 일부를 제외한 입주민 82% 동의를 받은 황재만은 입찰을 통해 엘리베이터 시공사를 결정했고, 대로변 아파트 외벽에 플래카드를 붙였다.
'경축! 천구 아파트 승강기 교체!'
플래카드는 100m 도로 밖에서도 뚜렷이 보였다. 밤새 폭풍우가 몰아쳐도 끄덕하지 않았다.
당초 5주를 예상했던 공사는 늦어져 5주 하고 4일 만에 끝났다. 마지막 3~4일은 택배와의 전쟁이었다. 때마침 수확 철이라 전국 산지에서 온 햅쌀이니, 대봉감이니, 사과, 배, 홍삼뿐 아니라 얼음이 가득 찬 꽃게나 전어, 굴 같은 해산물 박스들이 경비실 앞에 쌓였다. 한 달 동안 참다 엘리베이터 공사 완료 시점에 맞춰 택배를 주문했던 주민들은 오만상을 쓴 채 스티로폼 상자를 이고 지고 계단을 올랐다. 냉장 보관이 급하지 않은 택배는 사흘이 지나도록 사람들 발에 차이며 1층 현관을 차지하고 있었다. 주로 곡식이었다. 하긴 노인들만 사는 집에서 무슨 수로 쌀 반 가마니를 들고 8층, 9층까지 오르겠는가. 지게가 있다 한들, 안간힘을 쓴다 한들.
완공된 엘리베이터는 주민을 태우고 내릴 때마다 새침한 경고음을 내며 멈춰 섰다. LED 전등 빛을 내는 내부는 눈부셨고, 최신 공기청정기와 벌레 제거 기능으로 공기는 쾌적했다. 속도 역시 눈 깜짝할 사이는 아니더라도 깜~빡~ 할 빠르기였다. 새것이 좋긴 좋구나. 주민들은 관광하듯 엘리베이터를 탔고, 제집의 도배를 한 양 새 가구가 들어온 양 버튼을 쓰다듬으며 뿌듯해했다. 며칠 동안 쌓여있던 택배 박스들도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그리고 꼭대기 층인 16층에서 하자가 발견되었다.
독고 인은 이 아파트 16층 4호에 사는 주민이다. 그는 석 달 전 이사 왔다. 천구 아파트는 월세를 살던 그가 10년 만에 장만한 집이다. 영끌하여 매매한 것이라 현관만 내 집인 셈이었지만, 부양가족이 있는 것이 아니니 버틸만하다고 생각했다. 벌써 아파트 호가는 그가 산 금액에서 1억이 올랐다. 밤마다 '호갱 노노'를 들여다보며 월급이 스쳐 지나간 통장을 위로받는다.
아파트 매매 계약 후 그는 밤새 인터넷을 뒤져 자료를 모아 셀프 인테리어를 공부했다. 그리고 직접 타일과 도배 공사를 했다. 대부분 월세방에서 쓰던 가구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작은 소품들, 예를 들면 무드 등이나 쿠션, 러그 같은 것, 은 직구를 할 정도로 신중히 골랐다. 대출이 많다 해서 돈에 얽매인 채 살고 싶지 않아 노트북과 자전거도 샀다.
"빚이 2억인 거나 2억 오백만 원인 거나 도긴개긴..."인은 카드를 내밀 때마다 이렇게 중얼거렸다. 술 보관용 미니 냉장고 설치를 끝으로 꾸며진 인의 집은 누가 봐도 트렌디한 30대 싱글남의 공간이었다. 요즘 인은 퇴근 후 친구들을 만나지 않는다. 소개팅도 잡지 않는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그의 공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길을 서두른다. 내 취향대로 꾸며진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며 맥주 한잔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고 주말이면 로드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리는 것이 두 번째 행복이었다.
인에게 엘리베이터 공사는 꽤 중요한 일이었다. 한 달 동안 자전거를 못 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무리 젊다지만 자전거를 든 채 16층을 계단으로 오르내릴 수는 없지 않은가. 대신 매일 계단을 오르내리며 하체 힘을 키우고 있다.) 내 집에 새로 설치될 엘리베이터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가 이사 왔을 때는 이미 엘리베이터 교체가 결정된 후였다. 엘리베이터 시공업체 선정 당시 그 어떤 권한 행사도 할 수 없었던 인은 설치될 새 엘리베이터의 사양과 디자인이 무척 궁금했다. 16층 4호의 소유주이니 엘리베이터도 어느 정도, 아마 1/32 정도, 그의 재산인 셈이다. 그는 인터넷에서 선정된 시공사의 국내 엘리베이터 점유율과 새로 설치될 모델명, 그 모델의 기능과 특징을 알아봤다. 이미 같은 모델을 설치한 다른 아파트 입주민의 후기를 읽어보며 사용하기 적당한지 소음이나 속도 등 기능상 문제가 있는 모델은 아닌지 입주민 대표의 중간 장난질은 없었는지 등도 검색했다.
사회 통념상 공사 완료 예정일은 실제 완료일보다 2~3일 늦은 날짜로 공지하기 마련이다. 그는 4주 하고 이삼일쯤 지나면 엘리베이터 공사가 끝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4주 5일째 되는 밤, 집에 돌아온 독고 인은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조기 완공을 굳게 믿고 홈트용 운동기구 세트를 주문했었다. 1층에서부터 폼롤러와 요가 매트, 아령 등이 포장된 택배 상자를 들고 16층까지 올랐다. 그는 층마다 멈춰 서서 '시험 중'이란 글자 외에는 전부 불이 꺼진 채 굳게 닫힌 새 엘리베이터의 전광판을 째려보았다. 엘리베이터가 의식이 있다면 몸 둘 바를 몰랐을 정도로 차가운 눈빛이었다.
조기 종료는커녕 공지일로부터 4일이나 넘도록 공사가 늦어졌을 때 인의 실망은 째려보기를 넘어 분노로 변했다. 그의 기준으로 1주일이 늦어진 셈이었다. 공사업체는 너무나도 쉽고 간단하게, 안내문 한 장을 붙임으로써 일방적으로 약속을 어겼다. 독고 인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실질 당사자이자 공사비의 원천이 된 장기수선 충당금을 지불한 클라이언트다. 하지만 쌍방 합의했던 약속이 깨졌는데도 아무런 사과나 보상을 받지 못했다. 인은 그저 안전상의 이유만을 내 건 공사 연장 공문에 화가 났다. 그들의 무심함과 뻔뻔함에, 그리고 절대다수이자 무명인 주민들은 당연히 닥치고 기다려야 한다는 부당함에 화가 났다. 하지만 눈앞에는 그저 얼음물이 녹아 흐르는 지저분한 택배 상자만 쌓여있다. 그 앞으로 쓰레기와 낙엽 처리만으로도 지친 늙은 경비만 지나갈 뿐이다. '입주자 대표는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 혼자서 중얼거려봤자 엘리베이터는 계단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5주 4일째 저녁, 드디어 독고 인은 운행을 시작한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일 때마다 문틈으로 한 줄기 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실리콘 마감처리가 덜 된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었지만, 곧 문이 열리고 닫힐 때 발생하는 진동을 위한 여유 공간과 공기가 통하는 길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후기에서 본 대로 소음 역시 적었다. 잠귀가 밝은 그는 낡은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릴 때마다 옥상의 도르래가 움직이는 소리에 시달렸다. 공사 연기가 그에게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던 이유다. 엘리베이터가 운행되지 않는 한 달여 동안 그는 최소한 밤에 자다가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소리에 깨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 역시 시간이 지나 시설이 낙후될 경우 다시 소리가 나겠지. 그날이 오기 전에 이사를 나가야겠군. 그때는 반드시 엘리베이터에서 좀 떨어진 집을 사야겠어.'
찬찬히 엘리베이터 관찰을 마친 후 집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인의 눈에 구멍 하나가 들어왔다. 천장과 엘리베이터 문틀 사이에 어린아이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있었다.
"저 구멍이 뭐지?"
전에는 못 봤던 구멍이었다. 아무래도 엘리베이터 시공을 하며 실수로 뚫린 구멍 같은데 막지 않은 듯해 보였다. 하얀 천장의 구멍은 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히 까맸다. 까만 구멍은 잠금장치가 없는 문이고 유리 없는 창이며 천장 없는 자동차다. 까만 구멍은 강풍이고 낭떠러지고 바다다. 까만 구멍은 얼음이고 불안이고 공포다. 내일 관리실에 전화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인은 급한대로 주머니에 있던 종이로 구멍을 막아보려 했다. 하지만 편의점에서 만원에 네 캔하는 맥주를 사고 받은 영수증은 그 길이가 구멍을 막을 만큼 충분하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가 흡입하듯 종이는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안 되겠다.'
옆집 현관 앞에 쌓여있는 재활용 쓰레기 상자를 뒤졌다. 신문지를 꺼내 구겨 둥글게 공 모양을 만들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은 크기로 단단히 뭉쳤다. 구멍을 막기 위해 갖다 대는 순간 신문지는 도르르르 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안에서 바람이 부나? 구멍이 옥상으로 연결되어 있나 보군. 좀 더 단단한 것이 필요해.’
인은 집에서 테니스 공과 박스테이프를 가지고 나왔다. 구멍에 테니스 공을 갖다 대고 박스테이프를 붙이려는 순간, 공은 도르르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보았다. 바람이나 물길처럼 공을 빨아들일만한 압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밖에서 보기에는 분명 테니스 공보다 작은 구멍인데, 어떻게 들어간 건지 알 수 없었다. 야구공을 가져왔다. 친구들과 경기를 보러 가서 홈런볼로 받아온 공이었지만, 공이 아까운 마음은 구멍을 막고 싶다는 욕구를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야구공도 도르르르르...
농구공도 도르르르르....
짐볼, 요가매트도 도르르르르....
인은 20kg 짜리 아령을 들고 나왔다. 이어 옆집 남자가 나와 퇴근하시냐 인사한다.
"예, 운동 좀 하고 왔습니다. "
"그동안 힘들었는데 공사가 끝나서 참 좋지요?" 재활용 쓰레기를 챙겨 든 옆집 남자가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말했다.
"예. 편하네요. 그럼 다녀오십시오. " 얼른 현관문 안으로 들어갔다가 엘리베이터가 옆집 남자를 태우고 내려가는 소리에 다시 나왔다.
구멍 안으로 아령을 밀어 넣었다.
쏙, 쏙, 쏙.... 도르르르르르...
두루마리 휴지, 냄비, 식탁, 소파, 베란다 새시...
쏙,
쏙,
쏘오오오옥...
도르르르르르르.
노트북, 러그, 폼롤러, 애플워치, 로드 자전거...
쏙,
쏙,
쏘오오오옥...
도르르르르르.
넷플릭스 계정, 5G, 공기정화 식물, 월든, NIKE...
쏙,
쏙,
쏘오오오옥...
도르르르르르르.
기진맥진해진 인은 배가 고팠다. 치킨을 배달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을 꺼내 배달 앱을 켜는 순간 화면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구멍을 향했다. 아무리 봐도 내 주먹보다 작은 구멍인데, 이상하군 이상해.
인은 구멍에 핸드폰을 넣어 내부 사진을 찍었다. 그저 까맣고 까만 사진이 찍혀 나왔다.
이상하군 이상해.
핸드폰을 주머니에 단단히 넣은 뒤 구멍 속에 왼손을 넣고 또 오른손을 넣어 허잇.
기합과 함께 점프했다.
쏙,
쏙,
쏘오오옥...
도르르르르르르.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