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껍질마다 가득한 흰 빛을 피해 걷는다
파도에 다가갈수록 발이 조금씩 깊이 새겨진다
가장 질긴 파도가 올라왔던 선(線)에
뭔가의 부스러기들이 깨금발로 따라와 있다
누구와도 같이 들어본 적 없는 동요(動搖)가 잠시 귀를 채운다
차가움이 고루 밴 망루에 군인은 없다
이 해변에 얽힌 동화는 갖고 있지 않지만
다른 해변에 두고 온 얼굴은 아직 보관 중이다
옅은 색의 에나멜 구두를 벗은 채
뒤꿈치로 모래에 만들던 원(圓)을 기억한다
조개만큼 흰 빛을 내는 이였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파도에서 멀어져 나와
수평이 맞지 않는 나무 벤치에 앉을 때
덜컥, 서랍 하나가 열린다
아무도 몰래 다시 밀어 넣듯
엉덩이를 천천히 등받이 쪽으로 붙인다
몇 개의 음절이 입을 다문다
바람이 겨울을 흉내내서 다행이다
마른 눈을 감은 건, 바다라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