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외로워져 버리면 그땐 어쩌지

#일요일 편

by 너무 다른 역할

흔들리는 배처럼


기억이 나서


돌아 나오는 어둠


-시 '초점' 중, 유이우 시집 「내가 정말이라면」 (창비, 2019년)





주말 오후야.

'이렇게까지 잠을 잘 생각이 없었는데 이렇게 돼 버렸네.'라고 혼잣말을 할 즈음의 시간.

저녁이라고는 하지만 주위는 아직 환한, 그래서 찬란함은 찾을 수 없는 그런 시간.

오전에 했던 빨래는 다 말랐어. 마른 바지의 주름을 손으로 쓸어보고 만족해.

볕 좋은 주말의 오후에만 느낄 수 있는 뻣뻣함.



망상망상하지 않고 길게 잤어, 꿈은 잦았지만.

밤의 초원에 있다가, 깊이가 없는 지하실로 갔다가,

바다가 보이지 않는 크루즈를 탔다가, 형광등 가득한 누군가의 입 속에서 잠에서 깼지.

소파에 걸터앉아 습관처럼 우울하다고 생각하다가 거부감이 들었어.

'우울함'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쉽게 긍정해도 되는 걸까.


그 단어를 쓰레기통 삼아 규정하기 애매한 기분을 쓸어 넣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함으로써, 애초에 선명해질 수 없는 우울함이라는 감정을,

억지로 치밀하게 만들어버리는 건 아닐까.



뭉친 왼쪽 어깨 근육을 매만지면서, 이 단어를 홀대해볼까 생각 중이야.

아껴 써볼까 싶기도 하지만 그동안 과한 대접을 받기도 했으니 뭐.

우울하다,를 대체할 단어들을 잘하면 생각해낼 수 있지 않을까.


처진다. 가라앉는다. 멜랑콜리하다. 침울하다.

즐겁지 않다. 가뿐하지 않다. 의욕이 없다.

생각의 정지. 움직임의 둔화. 말수의 적어짐.

찐득한 액체로 가득한 머리. 절정을 잃어버린 안면근육.



저녁이 지나 공기의 밀도가 옅어지고, 텁텁한 공기가 바람에 밀려갈 때면

몇 개의 단어와 표현이 더 생각날 거야.

그러면, 주말 오후의 우울함도 아예 사라지겠지. 밤이 마련해 놓은 새로운 맹지로.

밤의 골목에서, 나와 비슷한 이유로 우울을 잊어버린 사람들 사이를 산책할 수도 있을 거야.



근데 말이야.


밤이 지나고 다시 소파에서 잠이 깰 때,

이제 우울을 잃어버렸다는 걸 알게 되면 어쩌지.


그렇게, 다들 외로워져 버리면 그땐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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