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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Oct 24. 2020

야흔 (夜痕)

나를 넣는 너를 만들었다

초침만 흐르는 밤이었다


뒷모습은 그렇게도 방비가 없어서

너를 기억하기로 했다


걸음의 날숨마다 하나씩의 둥지가 지어졌다


닿는 길은 천박해서 내내

쓰다 버린 소로를 상상했다


밤의 초침을 세며 갈래를 늘리는 건

자신이 알던 사람이 아니라고

나를 담던 네가 말했다


유적을 지우러 다니는 여자의

신발을 꿰맨 적이 있다


바늘을 향한 여자의 발가락은

한숨의 길이만큼 닳아있었다

하는 수 없이 그녀의 활폐를 복기했다


신발이 완성될 때까지 여자는

공들여

숨을 쉬지 않았다


너의 안으로 들어가 몸을 땋는다

잎 뒤에 빛을 숨긴 나무가 가지를 기울인다

주워온 분침을 달궈 입구를 닫는다


밤의 흔적이 남기 시작한다

멈췄던 시간이 흔들리고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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